나는 전 남편과 소개팅을 통해 만났다. 당시 나는 35살로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빨리 결혼을 해야 한다는 조바심을 느끼고 있었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많이 낮아져 있던 상태였다. 그러던 중 그를 만났다.
그는 외모가 훌륭했고,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스스럼없이 본인이 20대 초반에 어떤 여자에게 속아서 혼인신고를 했다가 몇 개월 만에 이혼했다는 이야기와 그동안 만난 여자가 300명 정도는 될 거란 이야기를 했다. □□대, △△대 등 총 3개 대학교 안에 카페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처음 만난 날부터 보여준 그의 허영심 가득한 이야기들을 왜 자신감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의 외모와 화려한 언변,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끌려 처음 만난 날부터 교제를 시작했다. 그는 나와 거의 매일 만나고 싶어 했다. 내가 운동을 가야 한다, 다른 친구랑 약속이 있다고 얘기하면 "본인보다 운동이 중요하냐, 친구들이 중요하냐"라고 했다. 나는 그때 그가 나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다고 생각했다.
한 번은 그의 SNS 계정에서 다른 낯선 여자와 서로 flutting 하는 듯한 댓글을 발견하고 누구냐, 왜 모르는 여자랑 그런 댓글을 주고받느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그는 본인 가게 홍보하려고 그런 건데 너는 왜 그런 거 가지고 본인한테 스트레스를 주느냐, 나보고 돈 벌지 말라는 말이냐며 오히려 화를 냈다. 그날 그 일로 크게 싸웠으나 결국 헤어지지는 못했다. 그때 헤어졌어야 하는 건데..
그때는 몰랐다. 그는 지극히 본인만 생각하는 지독한 나르시시스트라는 걸.
나르시시스트란 자기애성 성격 특성이 강한 사람을 뜻하는데, 그 자기애적 성격이 정신병적인 수준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과장된 환상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내가 경험한 나르시시스트인 남편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와이프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을 불편해한다.
2. 양심의 가책 없이 바람을 피운다. (이성으로부터 끊임없이 본인의 이성적인 매력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지금도 전 남편은 본인이 바람을 피워서 이혼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3. 본인의 잘못된 행동의 원인을 와이프에게 돌린다. ("네가 나를 열받게 했기 때문에 내가 소리를 지른 것이므로 네가 문제다")
4. 와이프를 본인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통제하고 싶어 한다.
5. 정당한 이유로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와이프에게 겁을 주기 위해 화를 낸다.
내가 좀 더 배려하면, 내가 좀 더 위해주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하고 참아왔던 것들이 오히려 독이 되어 나에게 돌아왔던 것이다.
얼마 전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에코이스트라는 개념을 알게 됐다. 에코이스트란 나르시시스트와 반대되는 성향으로 경청과 공감을 잘하면서 자신의 의견과 생각보다는 타인의 의견을 들어주는 특징이 있단다. 아래는 에코이스트 체크리스트이다.
1. 주목받는 것을 싫어한다.
2. 문제가 발생하면 내 탓부터 한다.
3. 유독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다.
4. 남에게 폐 끼치는 걸 싫어한다.
5. 타인과의 갈등을 회피한다.
6. 생색낼 줄 모른다.
7. 경쟁을 싫어한다.
8. 눈치가 빠르다.
9. 확신이 없는 표현을 사용한다.
10. 경계선이 분명하지 않다.
나는 이 중에 9개나 해당된다. 완전한 에코이스트인 거다. 남에게 부탁도 잘 못하고, 폐 끼치는 것을 극히 싫어하고, 어떤 문제가 생기면 일단 나에게서 원인을 찾는..
문제는 이런 에코이스트가 나르시시스트의 훌륭한 먹잇감이라는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에코이스트는 나르시시스트의 자신감에 끌리고, 그가 불평할 때 연민을 느끼고, 에코이스트는 상대방의 장점을 보려고 하고, 나르시시스트는 가스라이팅을 잘한다.
이런 나르시시스트를 영원히 입 닥치게 만드는 방법은 "No"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미안한 표정 없이, 눈치 보지 말고, 단호하게 거절하기.
나는 이제 나를 먹잇감으로 괴롭히고 싶어 하는 나르시시스트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 앞으로 내 인생에 또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나는 무조건 피하고 무시할 것이다. 또한 내 전 남편이 나를 더 이상 먹잇감으로 삼을 수 없도록 단호하게 "No"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