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_악마판사

by 새나

2021.08.24

'악마판사'를 보고


​악마 판사는 법을 근거로 재판을 하는 현대 사회에서도 정의가 실현되지 않고 있음을 반증하는 존재이다.

악마판사의 행동이 정당하진 않지만 그의 행동에 공감하게 되는 이유이다.

악마 판사가 악인을 모두 죽게 만들었지만, 정당한 재판을 통해서 적법한 절차를 걸쳐서

벌을 받게 한 것이 아니고 악마 판사 개인의 판단에 따라서 즉결심판을 한 것과 같다.


마치 전쟁이 일어났을 때, 내 편은 살리고 저 편은 재판도 없이 모두 죽인 것과 비슷한 모습이 아닐까 한다.

악마 판사는 마치 본인의 모든 판단은 올바른 것이라는 전제 하에 행동한다.

시청자도 악마 판사의 행동을 이해하고 납득할 만한 수많은 근거들을 나열한 채 드라마는 악인을 모두 죽이면서 끝난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결국엔 악마 판사 개인의 복수를 한 것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일부 악인을 죽인다고 모든 악인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욕망은 민정호 판사와 같이 대의를 따르고 진정 국민이 주권자임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도

악인과 같은 선택을 하게 만든다.

악인은 타인의 생명과 재산은 먼지처럼 여기고 나의 생명과 재산만을 중요시 여긴다는 공통점이 있다.

악마 판사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디스토피아 사회에서의 악마 판사의 살인이 정당화될 수 없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그 누구도 악마 판사에게 악인들을 벌할 권리는 준 적도 악인이라는 이유로 살인해도 된다고 허락한 적이 없다.

법치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도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에 일면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돈과 권력이 있는 자들이 자기 뜻대로 돈과 권력이 없는 자들을 농락하며 이 사회가 돌아가고 있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사회의 화두가 '공정'이 되었을 것이다.

악마 판사는 우리 모두가 처단하고 싶은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악인들을 마음대로 처단하였다.

그래도 된다라는 마음이 들 정도로 치졸하고 잔인한 악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하고 나를 희생하면서 다른 이들을 돕고 돌보는 많은 이들이 있다.

그래서 사회 정의가 실현되고 우리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일들이 전해지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사회 곳곳을 밝히면서 정의를 실현해주길 기대하기보다는 내가 살아가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선택을 할 때마다 나만 생각하지 말고 우리를 생각한다면 악마 판사와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고 느껴질까?

나 대신 손에 피를 묻힐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할까?


더 원이라는 영화를 예전에 참 인상적으로 봤다. 한 사람의 작은 움직임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면서

참 많이 감동하고 나도 더 원과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그때의 내 생각이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아 콤플렉스의 발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현실에서 더 원과 같이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한 이기적인 선택, 너도 하고 싶은데 기회가 없어서 나처럼 못하는 거잖아라는 비겁한 선택보다는 나와 이웃을 위한 선택을 한다면 전 세계는 지금보다 훨씬 살아가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우리 아이들이 태어나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래도 살아갈 맛이 난다는 말을 하게 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악마 판사와 같은 존재, 복수심과 분노에 타오르는 존재가 필요 없는 세상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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