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영역이 어두운 이유는 우리가 온갖 어두운 것을 무의식의 심층에 쫓아 보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부당함을 인정하지 않는다. 즉 무의식으로 하여금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어둠을 흡수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에 무의식이 어둡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행동한다. 눈을 감아버리면 그림자의 문제를 피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악과 대화하기를 거절한 나머지 악을 무의식으로 몰아낸다. 악을 방종하도록 내버려 둠으로써 철저한 악마가 될 능력을 악에게 준다.
우리는 정신의 무의식적인 면을 무시해 왔기 때문에 현재 우리를 극도로 억압하는 문제의 해결점을 찾지 못한다. 꿈이 우리에게 계속 구원의 메시지를 제공해 주는데도 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 마음에 내재해 있는 상반되는 요소들을 화해시키는 것, 즉 의식과 무의식을 정신적 원리로써 똑같이 받아들이는 것이 기독교인의 근본적인 과제이다.
인간 내부에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방해하는 것은 인간 자신의 무의식이다.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자신이 악마적인 충동과 타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인간이 자기 자신과 자신의 무의식을 살피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인간이 자기의 영혼을 부인하게 하고 악마적인 것에 굴복케 하는 상황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서워하는 무의식 세계의 모든 이면에는 위대한 사랑이 존재하고 있다. 사랑은 우리 자신의 영혼에서 분출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러한 사랑은 매우 강렬하고 요구하는 것이 많으므로 우리는 그 사랑과 관계 맺기를 주저한다. 우리 속에 새겨진 하나님의 모습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의식적 마음은 자기의 보다 높은 권위를 수용하고 심사숙고해야 한다. 꿈은 더 높은 권위를 가진 자, 즉 인간에 내재하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무의식과 꿈속에서 얘기하시는데 우리가 듣는 것을 거부하기도 하고 듣지 못할 때도 많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들으려고 하지 않고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무의식 속에 있는 나의 그림자를 만나고 그림자도 나의 부분임을 용납하며 나의 부족함도 모두 용납하고 사랑해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