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우먼의 체력이 필요하다
몸으로 무언가를 해본 적이 없는 나는 쉽게 피로를 느낀다. 20대에도 허구한 날 인생이 피곤하다고 느꼈지만 20대의 피로감과 20여 년이 지난 현재 느끼는 피로감은 질적으로 다른 거 같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나도 젊었으니까 아이 둘을 챙기면서 일하고 지내는 것이 그럭저럭 할 만했다. 일하는 재미가 있어서 다른 어려움을 다 감당했는데 요즘은 일이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의미를 가지게 되어서 그런지 지루하고 재미도 없다.
직장인이 직장에서 자기 효능감이나 업무만족감을 갖기 어려워지니까 직장살이가 더더욱 지루하고 피곤한 거 같다.
책 읽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물멍이랑 하늘멍을 하고 싶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나의 꿈은 한량이다. 시간 많은 한량의 삶이 내 꿈이라니 20,30대 내가 보면 깜짝 놀랄 거 같다.
일하면서 즐거워하고 더 잘하려고 노력하던 나인데 일하면서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전에는 막연하게 공감했던 ’ 밥벌이의 지겨움‘을 제대로 알게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매일매일 돈 버는 기계처럼 공장 톱니바퀴처럼 출근하고 내 자리에서 역할을 하고 퇴근하는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는 우리 모두의 모습인가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세적으로 회의적인 길로만 향하려는 나에게 주말의 여유와 파란 하늘 그리고 햇살의 반짝임이 위로의 손길을 내밀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스스로 재수를 결정하고 6개월째 하루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아이가 기특하고 예쁘다. 재수라는 고독한 길을 묵묵히 감당하는 아이가 자랑스럽다. “엄마, 오늘은 학원 안 갈래.” 그러면서도 꼬박꼬박 일어나서 학원에 가는 우리 아이를 보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스스로 살아갈 힘을 갖는 날까지 곁에서 아이를 응원하는 게 내 몫이니까 나는 나대로 하루하루 긍정적으로 살아보려고 한다. 오늘이라는 선물에 감사하며 생명의 경이로움에 찬사를 보내며 말이다.
엄마가 편찮으셔서 병원에 입원한 아빠 대신 엄마를 돌보는 중이다. 이제 겨우 삼일째인데 무척 긴 시간처럼 느껴진다. 눈을 뜨고 있으나 머리가 안 돌아간다. 책을 읽어도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고 생각이 멈춘 것만 같다. 사실 생각이 그리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다.
시간이 되면 아이 기저귀를 확인하고 분유를 타서 먹이는 엄마와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우리 집 큰 아기는 자고 눈을 깜박이다가 다시 잠들곤 한다. 그래서 아빠가 백설공주라고 별명을 지었다. 백마 탄 왕자가 언제 올지 모르겠는데 우리 집 백설공주는 아직도 긴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그래도 백설공주보다 나은 건 가끔 눈을 뜨고 눈도 마주친다는 것이다. “내가 누구예요?”라고 질문하면 이름을 말하거나 딸이라고 한다.
몸은 말을 듣지 않지만 귀도 밝고 사람도 알아본다. 다행이다. 이 또한 감사한 일이다.
아빠가 입원하면서 엄마를 돌보는 방법을 네 페이지 적어두셨다. 몇 시에 물을 넣어드리고 무슨 약을 드리고 뉴케어를 타서 드려야 하는지 상세하게 적혀 있다.
욕창을 예방하기 위해서 기저귀를 교체할 때마다 욕창방지쿠션의 위치를 바꾸고 몸의 방향을 바꿔드린다. 아빠가 지극정성으로 돌보셔서 엄마는 욕창이 없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나는 오늘도 비몽사몽 중에 엄마를 돌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주말에 엄마를 돌볼 시간이 되니 다행이다. 아이들이 커서 스스로 챙길 수 있으니 이 또한 가능하다. 많이 자란 아이들을 보면 시간의 흐름이 아쉽기도 하지만 든든하다.
이렇게 한 세대가 가고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것이겠지.
중간 세대인 나는 이 시대의 허리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 것일까?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어떤 사회일까?
부자는 갈수록 부자가 되고 빈곤층은 갈수록 빈곤해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패하더라도 삶의 기본은 유지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할 텐데 참 걱정이다.
토요일 한낮에 혼자 졸면서 이 생각 저 생각을 적어본다.
중간세대의 넋두리라고 해 두자.
자도 자도 졸리다. 아. 졸려.
#간병중 #중간세대 #마음일기 #피곤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