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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카미노 Apr 11. 2024

시바견과 피레네 산맥을 넘다

생장부터 부르게테까지

산티아고 순례길의 모든 구간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피레네 산맥은 많이 들어봤다. 첫날 프랑스 생장에서 국경을 넘어가는 코스이며, 고도와 날씨 때문에 제일 힘든 구간이라고 한다. '나폴레옹 루트'가 정식으로 열리는 4월 1일부터 순례자가 늘어나는 추세를 보인다. 날씨운이 없으면 4월 오픈 이후라도 우회길을 이용해야 되는데 다행히 우리가 계획한 날에 (바람은 미쳤지만) 기온은 적당했다. 

나폴레옹 루트를 걷고 싶지만 첫날부터 무리하고 싶지 않다면 중간 지점까지 Express Bourricot 셔틀을 타는 방법도 있다. 이메일 또는 사무실 방문으로 사전예약이 필수다.  
첫째 날, 첫 일출

초반부터 급경사를 만났고 30분 정도 걸은 후 뒤돌아보니 이런 풍경이 펼쳐졌다. 우리가 묵었던 에어비앤비는 동떨어져 있어서 순례길에 합류하기 전까지 루카랑 조용히 걸을 수 있었다. 알베르게는 비슷한 시간에 우르르 출발해 단체 관광인 느낌이 들 때도 있고, 등산스틱 소리가 은근 신경 쓰인다.

빠르게 몰려드는 구름

송베리아라고 불리는 송도 주민이라 강풍에 단련되었다 생각했는데 구름도 그렇고 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아직 고도가 낮아서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루카는 새로운 장소라 신이 났는지 의외로 놀라지 않고 앞장서며 잘 걸었다. 

오리손 산장

오전 9시, 마지막 '샌드위치 스톱'이라는 오리손 산장에 도착했다. 나폴레옹 루트에 다른 식당이나 카페는 없어서 샌드위치를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스페인식 샌드위치인 보까디요(bocadillo)는 바게트 사이에 하몽, 치즈, 토마토 등을 끼워 먹는 형태다. 나는 에스프레소 한잔을 쭉 들이키고 포장한 샌드위치를 배낭 옆주머니에 넣었다.

펫프렌들리 식당이라고 명시되지 않아도 대부분 야외석은 반려견을 허용한다. 마트 앞에는 도그파킹 공간이 있기도 하다. 반려견을 함부로 만지지 않고 사진 찍는 것도 허락을 받는 분위기라 도그파킹을 애용했다. 정 불안하다면 다른 순례자에게 잠시 부탁하는 방법도 있겠다. 
동물적 균형감각

바로 앞 순례자의 배낭에는 덜 마른 양말과 침낭이 바람에 휘날린다. 배낭 무게가 있어서 나도 휘청거리며 걷고 있었다. 이 와중에 루카는 마킹을 포기하지 않고 완벽한 균형감각을 뽐냈다. 더 생생한 피레네 정복기는 유튜브 '루카미노'에서 볼 수 있다. 

바람에 휘날리는 꼬리

고도가 높아질수록 바람이 거세져 바위 뒤에 루카를 대피시키기도 했다. 땅에 코를 박고 있어서 잘 숨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말똥 냄새를 맡는 거였다. 과장하는 게 아니라, 이 정도 강풍이라면 루카가 날아갈 법도한데 멀쩡히 걷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작은 주삿바늘은 그렇게 무서워하면서 대자연 앞에서는 꽤나 대담했다. 

줄어드는 산책 거리

첫날이 그렇게 힘들다던데 우리는 오히려 바람 때문에 그런 생각할 겨를 조차 없었다. 여기저기 휩쓸려 걷다 보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765km 남았다는 표지석이 눈에 들어왔다.

4월에 만난 가을과 겨울

기온은 영하로 떨어지지 않았지만 잔설이 조금 남아있었다. 4월 초 피레네는 가을과 겨울 사이를 오갔고, 봄날의 따사로움은 하나도 없었다. 사실 바람에 정신을 뺏겨 어딜 어떻게 걸었는지 몰랐는데 사진으로 그나마 되살릴 수 있었다. 

대피소에서 먹는 점심

오리손 산장에서 구입한 햄&치즈 샌드위치는 12시쯤 대피소에서 먹었다. 무언가 먹을 때 루카는 보채지는 않지만 빤히 쳐다본다. 여기까지 잘 따라와 준 것만으로 대견해서 여행 중에는 사람 음식도 나눠먹는다. 바람 소리가 위협적이라 또 나가기 두려웠지만 새로 들어오는 분들을 위해 자리를 내주었다. 

노란 화살표와 누렁이

까미노를 대표하는 노랑과 파랑은 강아지 눈에 제일 잘 보이는 색깔이다. 표지석 외에도 나무, 벽, 바닥 곳곳에 보이는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걸으면 된다.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리드해 주면 천재견 소리를 들을 텐데 아쉽게도 그냥 직진 본능으로 앞서나간다. 

견주만 신난 포토타임

여행 중에는 고프로를 이용해 둘이 나온 사진을 남기고 있다. 10초 타이머 설정하면 지나가는 분들한테 부탁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건질 수 있다. 같이 찍는 과정이 재밌고 생존신고용으로 내 얼굴도 가끔 비치면 좋다. 

헤밍웨이가 방문했던 마을

대부분 순례자들은 첫날을 론세스바예스에서 마무리한다. 론세스바예스에는 펫프렌들리 숙소가 없어서 다음 마을인 부르게테로 향했다. 헤밍웨이가 송어 낚시를 위해 1924~1925년 방문했던 곳이고,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배경 중 하나이다. 

부르게테 성당과 호텔

마을에 도착하면 멋스러운 건물들의 건축 양식을 보는 재미가 있다. 성당 내부는 반려견을 허용하지 않아 제대로 보고 싶을 때는 숙소 체크인 후 루카를 두고 혼자 마을 탐험에 나선다. 4~5시간 연속으로 산책을 했으니 루카는 기절하듯 금방 잠들고 돌아올 때까지 꿈쩍도 안 한다. 

펫프렌들리 숙소에서 반려견 추가 요금은 평균적으로 €5, 많게는 €10 발생한다. 숙소에 따라 반려견을 혼자 방에 두고 가면 안 된다거나, 침대에 재우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을 수 있다. 
호캉스

부르게테의 호텔로이수는 1박에 €60, 반려견 추가 요금은 없었다. 이메일로 예약 후 현장에서 카드 지불했다. 론세스바예스와 부르게테를 통틀어 반려견과 묵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 다른 선택지는 없었지만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웠다. 조식이 잘 나오는 편이라 여유가 된다면 추가하는 것도 좋겠다.  

Hotel Loizu
주소 : Calle San Nicolás 13  31640 Burguete (Navarra)
이메일 : reservas@loizu.com
사이트 : 
https://loizu.com/
비용(2024년 4월) : 1인 1견 기준 €60, 조식 
€10
첫날 이동거리

태풍급 바람이 부는 날, 루카와 피레네 산맥을 무사히 넘었다. 제일 힘들다는 날이 겨우 이 정도였나? 아무튼 열심히 걸은 후 이렇게 수치로 보니 더욱 뿌듯하다. 


더 생생한 기록은 아래 영상에서 4K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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