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즉시공, 공즉시색 - 엔딩스 비기닝스(2019)

by 레인메이커


<엔딩스 비기닝스>에서 주인공 다프네(쉐일린 우들리)는 운명처럼 여겼던 남자친구 아드리안(매튜 그레이 구블러)과 헤어진 뒤 이별의 아픔 속에서 연애종식 선언을 하게 된다. 당분간 술도 끊고 금욕적인 생활을 다짐한 그녀지만 두 명의 남자가 한꺼번에 다가오면서 그 다짐은 오래가지 못 한다.
섹시한 눈빛의 프랭크(세바스찬 스탠)는 저돌적으로 다프네에게 다가서며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놓았고, 다정다감한 잭(제이미 도넌)은 안정감을 주며 그녀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하지만 깊이 사랑했던 아드리안과의 이별의 상처로 다프네는 사랑이 두려웠다. 허나 외로움은 더 싫었던 그녀는 어느 쪽에도 마음의 전부를 주지 못한 채 시쳇말로 양다리를 걸치게 된다. 그러니까 표면적으로는 다정다감한 잭의 여자 친구였지만 섹시한 프랭크의 저돌적인 대시에 흔들려 잭 몰래 그와 여러 차례 몸을 섞게 된다. 그러다 덜컥 임신까지 하게 되는데 둘 중 누가 아이의 아빠인지 알 수도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 무슨 개막장 스토리냐고 하겠지만 사랑, 아니 사람이란 게 그렇다. 살다 보면 한번 쯤 막장으로 치닫지 않는 인생은 없다. 굳이 이유를 대라면 행복은 1t을 가져도 늘 부족하고, 고통은 1g에도 다들 몸서리치기 때문이 아닐까. 삶의 균형을 찾기란 쉽지 않다는 뜻. 상처를 이겨내기 위해 금욕적인 생활까지 결심한 다프네였지만 원하지도 않았는데 두 명의 멋진 남자가 접근해왔고, 이별의 찌꺼기인 외로움과 공허함이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면서 막장 행각을 벌이게 됐던 거다. 어떡하리. 둘 다 좋은 걸. 아이러니하게도 분명 자신의 몸에 공존하는데도 정작 이성과 본능의 화학적 결합은 어려워 잭과는 영혼(이성)의 대화를, 프랭크와는 육체(본능)의 대화를 나누게 됐던 거다. 얼마 전에 끝난 <부부의 세계>라는 TV드라마에서도 주인공 태오(박해준)는 자신의 아내인 선우(김희애)를 두고 어린 다경(한소희)과 몰래 바람을 피면서 친구에게 이렇게 해명한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하나가 아니잖아. 결혼했다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차단되는 게 아니라고. 선우를 사랑하는 감정과 다경을 사랑하는 감정은 다른 색깔인데, 내가 미치겠는 건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한다는 거야."



아시다시피 인간은 단색이 아니다. 누구든 최소한 두 가지 색은 다 갖고 있지 않을까? 바로 이성과 본능, 그러니까 화이트와 레드. 아니다. 때론 악해지기도 하는 만큼 블랙도 바탕색이겠다. 솔직함으로 묻어가려는 게 아니다. 그러기엔 이 영화는 지나치게 철학적이다.
불가(佛家)의 가르침 중에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란 게 있다. ‘색(色)이 공(空)이고 공(空)이 색(色)'이라는 뜻인데 의역하자면 '있는 게 없는 거고 없는 게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를 나름의 개똥철학으로 좀 더 쉽게 풀이하자면 내가 무언가를 갖게 됐거나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다고, 혹은 내가 지금 고통을 겪고 있다고 그게 '있는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다는 거다. 어차피 흐르는 시간은 막을 수가 없고, 해서 언젠가는 가진 걸 잃게 되거나 이별도 하게 된다. 또 언젠가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돼 결국은 '없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런 일련의 과정들은 지나고 나면 시간의 흐름이 뒤엉킨 채 과거에 파묻혀 모조리 찰나(순간)가 되어버린다. 그 즈음엔 가진 게 잃는 거고, 만남이 곧 이별이 아니겠는가? 또 고통도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되곤 한다. 반대로 행복이 끝이 나는 것도 고통이다. 그러니까 그 무엇도 '있거나 없는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다는 것. 바로 '색즉시공, 공즉시색'인 셈이다. 그리고 불가의 이 가르침은 '끝이 시작(Endings, Beginnings)'이라는 이 영화의 제목과도 맞닿아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다프네의 마음 속 깊은 어둠은 엄마에게서 비롯됐다. 이미 여러 남자와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던 엄마였는데 다시 또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면서도 엄마는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모두 널 위해서였어." 예전 같았으면 기가 찰 노릇이지만 자신의 삶도 이제 막 막장으로 치닫던 때여서 그녀는 엄마의 말을 이해하게 된다. 없는 줄 알았는데 이미 있었던 거다. 엄마의 사랑이. 아이를 가져보니 알겠더라는 것.
다프네는 뱃속의 아기를 낳기로 결심한다. 막장의 끝은 새로운 시작이었고, 아이를 가짐으로써 존재 자체가 이미 행복임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 불가에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려는 것도 사실은 그게 아닐까. 어차피 있어도 없는 것이고, 없어도 있는 것이니 결국은 존재 자체가 이미 행복이라는 것. <엔딩스 비기닝스>도 마치 뱃속의 아이와 관객들이 들으라는 듯이 다프네의 이런 독백으로 끝이 난다. "가끔은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될 수도 있어. 하지만 괜찮아. 넌 니가 있어야 할 곳에 정확히 있으니까. 넌 이미 사랑받고 있어." 2020년 6월24일 개봉. 러닝타임 1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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