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아이(天気の子,2019)

날씨, 마음

by 레인메이커



사람의 마음이란 게 그렇다.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마음이 늘 어려운 건 노력과는 별로 관계가 없기 때문. 우울의 늪에 빠져 무거운 돌덩이처럼 심연 아래로 가라앉았을 땐 어떤 밝은 생각을 해도 마음은 쉬이 움직이지 않는다. 어른이 되면 더한데 경험이 쌓이고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 속에서 이미 탄력을 잃을 데로 잃어버린 마음은 딱딱하게 굳어져 성공이나 연애, 혹은 여행처럼 자극적인 일이 아닌 이상은 다시 말랑말랑해질 일이 잘 없다.
그래서 비가 내리면 도시는 더욱 무거워진다. 딱딱한 콘크리트 위를 탄력을 잃은 수많은 무거운 마음들이 시체처럼 돌아다니는 그곳에 눈물같은 비마저 내리면 온통 슬픔으로 가득 차게 된다. 더 큰 문제는 낮인데도 세상은 온통 어둑어둑하다는 것. 그렇게 비 오는 날의 도시는 우울이 빗물처럼 옷에 스며든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아무리 대도시라 해도 하늘만은 콘크리트로 덮이지 않았다는 것. 비가 그치고 먹구름이 걷히면 이내 밝은 태양과 파란 하늘이 모습을 드러내며 세상을 온통 화사하고 영롱하게 만든다. 그 순간, 우울로 닫혔던 도시인들의 마음도 비로소 활짝 열리게 된다. 해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날씨의 아이>에서 호다카(다이고 코타로)도 이렇게 말한다. "날씨라는 건 신기하다. 그저 하늘 모양일 뿐인데도 이렇게나 '마음'이 움직이니까."
사실 호다카는 '맑음 소녀'인 히나(모리 나나)의 친구다. 히나는 우연한 계기로 비를 멈추고 하늘을 맑게 만드는 힘을 얻게 돼 사람들로부터 '맑음 소녀'로 불리게 됐다. 당시 도쿄는 끝이 없는 여름 장마로 다들 맑은 날을 고대하고 있었고, 히나의 기도만이 비를 잠시 그치게 한 뒤 맑은 하늘을 만들었다.



가출 소년인 호다카와 소녀 가장인 히나는 맑은 날을 원하는 사람들의 의뢰를 들어주면서 돈을 벌었고, 그러면서 호다카는 자연스럽게 히나를 좋아하게 됐다. 하지만 히나의 능력 뒤에는 커다란 세계의 비밀이 숨겨져 있었고, 그 비밀이 드러나면서 호다카와 히나는 헤어질 위기에 처하게 된다.
마음과 날씨는 닮았다. 둘 다 종잡을 수가 없다. 마음에도 기상도가 있다. 맑은 날이 있으면 흐린 날이 있고, 아침엔 분명 맑았는데 오후에는 흐리고 비가 내리는 날이 있다. 가끔은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내리는 날도 있다. 또 차가운 눈이 내리거나 우박이 떨어지는 날도 있고, 아침 일찍부터 서리가 끼기도 한다. 간혹 태풍이 상륙해 난장판이 될 때도 있다. 이런 게 인간의 마음이다.



해서 행복은 그저 '맑음'이다. 흐린 날, 비 오는 날,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내리는 날, 서리가 끼고 눈이 내리는 날, 태풍이 상륙한 날에 비하면. 또 맑음은 '괜찮음'이다. 행복이란 건 그리 크거나 대단한 게 아니다. 흐린 날엔 괜히 우울해지고, 비 오는 날엔 비에 젖고,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내리는 날엔 무섭기까지 하다. 눈이 내리는 날엔 걷기가 힘이 들고, 태풍이 상륙한 날이면 밖에 나가는 것 자체가 무섭지만 맑은 날은 아무 일 없이 괜찮아 우린 모두 행복을 느낄 수가 있다. <날씨의 아이>에서 하늘을 맑게 만드는 히나의 마법에 사람들이 온통 환하게 웃음 짓는 이유가 아닐까.
하지만 괜찮음은 타인의 희생이 늘 필요하다. 지금의 나는 나를 지탱해주는 이들이 있어 감히 괜찮을 수가 있다. 또 사람 때문에 늘 힘들지만 사람 때문에 다시 살게 된다. 괜찮을 수 있게 된다. <날씨의 아이>에서 히나의 희생으로 인해 사람들이 맑음을 누릴 수 있었듯이. 전체를 위해서는 소수는 희생해도 된다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오랜 파시즘적 근성을 꼬집는 정치적인 영화라고도 하지만 내겐 이 영화가 이렇게 보이더라. 왜? 신카이 마코토 감독 작품답게 이번에도 영화가 너무 예쁘니까. 정치는 그닥 예쁘지 않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 작품은 늘 엔딩곡이 예술이다. <초속 5센티미터>가 그랬고, <언어의 정원>이 그랬고, <너의 이름은>도 그랬다. <날씨의 아이>도 마찬가지인데 이번엔 특히 가사가 좋다. 영화 속에서 호다카는 끝내 히나에게 고백을 못한다. 그래서 엔딩곡은 마치 호다카의 고백 같은데 그는 노래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이 너의 작은 어깨 위에 얹혀 있는 게 나에게만은 보여서 건넬 말을 찾았어. 너의 괜찮음이 되고 싶어. 너를 그저 괜찮게 해주고 싶은 게 아니라 너의 '괜찮음(맑음)'이 되고 싶어." 2019년 10월30일 개봉. 러닝타임 1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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