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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체 Apr 10. 2021

강릉은 마음이 놓인다

두부와 커피가 있어서

다시 여행을 떠나려고 마음을 먹은 건 정동진으로부터 4년이 지난 겨울이었다. 그동안 난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편입을 했다. 애초에 정이 안 가는 학교였다. 성적과 무관하게 단지 더 이상은 공부가 하고 싶지 않아서, 왠지 여기라면 적당히 해도 괜찮을 것 같아서 왔던 학교였고, 학과였다. 어차피 특별히 곁을 준 친구도 없었다. 일주일 정도의 고민 끝에, 나는 자퇴서를 제출했다. 곧 졸업인데 자퇴까지 할 필요 있냐는 부모님의 만류가 있었지만, 나는 후퇴할 곳이 있다면 끝없이 후퇴할 사람이니까.


다 알고 시작했던 거지만 공부량은 예상보다도 훨씬 많았고, 어려웠다. 난 항상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번엔 어떻게든 될 것 같지가 않았다. 편입에 성공하지 못하면 나는 나이만 먹고 변변한 기술도, 학력도 없는 사람이 된다. 매일이 바빴고 감상은 사치였다. 그 좋아하던 영화도 보지 않고, 공부와 관련되지 않은 거라면 책도 읽지 않았다.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깨어있는 시간은 내내 영어공부였다. 그렇게 1년을 꼬박 영어공부만 했다. 그리고 합격 발표가 있던 날 정오에, 난 웃었고 엄만 날 끌어안고 울었다.


편입이 결정된 건 좋았지만, 조금 고민되는 게 생겼다. 여전히 인간관계엔 영 자신이 없다. 심지어 이번에는 편입이다. 그건 이미 다들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끼어들어서 어떻게든 적응해내야 한다는 걸 뜻한다. 마음이 급해졌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조금 여유가 있었다. 원하던 걸 이뤄낸 사람 특유의 자신감이었겠지. 아니면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여유였거나. 그 덕분이었을까. 그렇게 걱정하던 인간관계가 생각보다 잘 풀려갔다. 편입생이다 보니까 학생회에서 신경을 많이 써주었는데, 그들과 친하게 지내다 보니까 얕고 넓은 인간관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이런 인간관계는 그다지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다. 적당히 즐거웠고, 적당히 편안했다. 누가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별로 서운하지 않았다. 내가 누군가를 알아줄 필요도 없었으니까. 어느새 나는 과 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존재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새로운 학교, 새로운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까 내가 무슨 신입생이라도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내년이면 졸업반이다. 저번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해보고 싶어서 선택한 전공이었고 그 선택엔 만족스러웠지만, 안타깝게도 취업과는 거리가 멀었다.


앞으로 뭘 해 먹고살아야 하지?




편입 공부로 바빴던 것도 있었지만, 사실 그동안 내가 여행을 가지 않았던 건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 정동진에서의 경험으로, 스스로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게 두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들여다볼 시간이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노력은 할 수 있다. 목표가 정확할수록 노력은 하기 쉬워진다. 그런데 나는 지금 뭘 하고 싶은 건지를 모른다.


동기들처럼 이런저런 스펙을 준비해야만 하는 걸까?

어떤 스펙을 준비해야 하지? 영어? 한국사? 자격증?

자격증이라면 무슨 자격증? 전공 관련 자격증은 이렇다 할 게 없는데.

일단은 영어를 해야 하나? 뭘 위해서?


마구잡이로 그저 남들을 따라가는 게 내가 원하는 삶은 아니었다. 마구잡이로 달려가는 게 싫으면서 나는 자신에 대한 탐구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잘하는 게 뭔지도 몰랐다. 내가 재밌어하는 건 뭐였더라. 나는 나니까, 당연히 모든 걸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당연할 리 없는데도. 


자연스럽게 정동진이 떠올랐다. 두려웠지만 좋든 싫든 이제는 피할 수 없었다. 지금의 나라면, 어쩌면 예전보다는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나는 전보다는 훨씬 신중한 마음으로 강릉으로 가는 고속버스에 올랐다. 왜 하필 강릉이냐고 하면, 초당두부가 먹고 싶었으니까. 나는 두부가 좋다. 하얗고 포슬포슬한, 따끈한 두부를 한 입만큼 떼어 간장을 찍어 입에 넣었을 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부드러운 두부의 맛을 좋아한다. 조금 심심하긴 하지만 그런 심심한 점이 좋다. 자극적이지 않아서. 두부를 먹고 속이 불편한 사람을, 나는 아직까지 만나본 적이 없다.


강릉에 도착한 건 네 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저녁을 먹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었으므로 커피를 한 잔 마시기로 했다. 강릉은 커피의 고장이다. 왜 강릉이 커피로 유명한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도 유명한 테라로사가 있고, 박이추 선생의 커피가 있다.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커피를 좋아한다. 커피에 우유가 들어가면 커피 본연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는 것 같아서. 누군가는 씁쓸한 맛 때문에 블랙커피를 마시지 않는다지만, 나는 그 씁쓸한 맛 때문에 블랙커피를 마신다. 씁쓸한 맛을 일단 견디고 나면 그 뒤에 다양한 향과 맛이 찾아온다. 어쩐지 커피와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 들어, 나는 블랙커피를 좋아한다. 느긋하게 커피랑 대화를 해야겠다. 커피는 뭔가를 판단하는 법 없이, 그저 들어줄 것이다.


안목 해변에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성수기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왕이면 바다를 바라보면서 커피를 마시면 좋을 것 같아 커다란 통유리가 있는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원두를 볶는 특유의 냄새가 익숙하다. 핸드드립이 메뉴에 있어, 그걸 주문했다. 빠르게 내리는 에스프레소에 물을 섞은 아메리카노도 매력적이지만, 역시 다양한 향이나 맛을 느끼려면 핸드드립이 좋다. 바리스타의 수고가 조금 더 들어간다는 점에서 어딘가 정성스럽게 느껴진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낯선 곳에서 조금은 불안하던 마음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아아, 이 곳은 안전하구나.




나는 열심히 살았나?


무엇을 위해서 쌓아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라는 핑계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펙을 쌓지 않은 게 특별함이 되진 못했다. 오히려 게으르고 무능한 사람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남들 다 하는' 걸 안 한 사람에게, 세상의 시선은 그다지 따뜻하지 않다. 아무리 뭔가를 열심히 해왔다고 해도, 그걸 보여줄 지표가 없다면 열심히 살았다고 말해도 좋은 걸까. 정성스럽게 뻘짓을 했다고 비치진 않을까. 나만의 특별함이 있을까? 뉴스에서는 연신 청년실업률에 관해서 떠들고 있었다.


남들에 비해서 특별한 점이라면, 언어적 감각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아기 때 처음 말을 뗀 것도 남들보다 빨랐다고 했다. 학창 시절에도 언어영역과 외국어영역만큼은 줄곧 1등급을 놓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일본 음악을 접하면서 일본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일본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어를 학습해 나갔다. 주변에서는 왜 중국어를 하지 않고 일본어를 하느냐고 물었다. 앞으로는 중국이 뜰 텐데, 중국어를 하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는 얘기였다. 그렇지만 나는 일본어를 특별한 스펙으로 생각하고 관심을 둔 게 아니었으므로, 왜 그들이 일본어를 공부하려는 것을 스펙을 쌓기 위함으로 생각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언젠가 일본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15살의 나는 했던 것 같다.


별 생각을 다 하네.


주위가 어둑해진 걸 보니 어느덧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초당마을로 향하던 길에서, 나는 허름한 노포를 발견했다. 한 번도 와본 적은 없었지만 어쩐지 정겨운 마음이 들어 그곳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날씨가 추워서 순두부를 주문하려고 했는데, 오늘 모두부가 정말 맛있게 나왔다며 추천을 했다. 그럼 양이 많을 것 같아 절반만 팔아줄 수는 없겠느냐고 했더니 그러겠다고 했다. 우리는 바닷물로 간수를 해요. 주인장의 설명을 들으며 따뜻하고 포슬포슬한 두부를 원 없이 삼켰다. 추운 날씨였고, 뜨끈한 두부는 커다란 위로가 돼주었다. 부드럽게 나를 어루만져주는 느낌이 드는 게 눈물겨울만치 따뜻했다.


숙소는 미리 예약해두었다. 지난 정동진에서 급하게 잡았던 허름한 모텔방의 충격이 작지 않았던 모양이다. 혼자서 묵는 것도 좋지만 이번에는 게스트하우스를 가보고 싶었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기도 했거니와 사람들이 많으니까 오히려 덜 위험할 것 같았다. 이 곳의 외관은 일견 허름해 보였지만 내부는 무척이나 깔끔했다. 부부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였는데, 이제는 운영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두 분이 유유자적 여행을 다니면서 살고 싶어 게스트하우스를 정리했다고 했다. 또 그러다가 언젠가 훌쩍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두 분 답다고 생각했다.


나는 게스트하우스에 가면 보통 샤워 후  다이닝에서 책을 읽곤 한다. 방에서 쉬어도 되고, 다이닝에서 쉬어도 좋다. 누구도 눈치를 주지 않는다. 책을 읽는 중에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어색하지도 불편하지도 않다. 게스트하우스는 어울림이 자연스럽다. 음식을 사서 먹으면서 옆자리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권하기도 하고 술을 나누기도 한다. 보통의 한국 문화에서는 쉽게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사람 냄새가 나서 좋다. 나는 이것 때문에 게스트하우스를 무척 좋아하게 되었다.


그날도 다이닝에서 책을 읽는데, 몇 사람이 들어와 말을 걸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다들 비슷한 나잇대의 사람들이었다. 어쩐지 공감대가 생겨 다 같이 맥주를 사 와 마시기로 했다. 몇몇은 과자를 사 오기도 하고, 낮에 시장에 들러 사 왔다며 닭강정을 내놓는 이도 있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인데 어딘가 마음이 편했다. 다들 비슷한 고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이곳에 찾아온 사람들이다. 시끌벅적한 파티형 게스트하우스가 아니라 일부러 조용하고 허름한 이곳을 찾아 들어온 사람들이다. 처음으로 세상에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았다. 


나만 힘들고 나만 고민이 많은 줄 알았다. 남들은 다들 하고 싶은 일들을 척척 찾아서 잘만 해나가는데 나만 도무지 지향점을 잡을 수가 없어 표류하는 뗏목 위에 있는 줄 알았다. 세상 어딘가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도 있겠지만 어디에 있는지 몰랐고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할 때는 정말로 날 것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일이 없었으니까. 내가 솔직하게 모든 걸 다 보여주면 분명히 그게 약점이 되어 돌아올 것 같았으니까. 어쩌면 내 친구들 중에 한 둘 쯤은 나와 비슷한 친구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들도 내가 이런 고민을 하며 사는 줄은 모르겠지. 때로는 낯선 이들이 편할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어차피 나와 일상을 공유할 사람이 아니니까 과감하게 솔직해질 수 있었다.


그들 중에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사람이 있어, 그때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낯선 땅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아 고생도 많이 했지만 어딘가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다른 나라에서 일을 하면서 살아보는 경험은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그의 삶이 부럽게 느껴졌다. 문득 아까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던 15살의 꿈이 떠올랐다. 나도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두려움이 앞섰다. 한 번도 한국을 떠나본 적이 없으면서 무턱대고 나가서 살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당장 취업에 대한 고민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어릴 적의 꿈을 아직도 잡고 있다는 게 철없이 느껴졌다. 


이런 꿈은 이제 그만 포기하자. 어차피 잊고 살아왔던 꿈이잖아.


그렇게 강릉에서의 밤이 깊어갔다. 




다음 날은 날씨가 화창했다. 오늘은 꼭 방문해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다름 아닌 허난설헌의 생가다. 나는 허난설헌의 시를 무척 좋아한다. 어린 난설헌의 눈에 비친 풍경이 예뻐서 뭘 보고 자랐기에 저런 시를 쓸 수 있을까 알고 싶었다. 그곳에는 난설헌의 시가 몇 가지 소개되어 있었고, 그녀의 불행했던 생애가 적혀있었다. 하필이면 조선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남편과 결혼한 것이 한이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했다. 그저 아름답고 예쁜 것만 보고 살았을 줄 알았는데. 그녀의 시가 뒤로 갈수록 슬퍼지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넓지 않은 공간이어서 금세 둘러보고 나왔더니 근처에 찻집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열어둔 한옥 창문을 통해 보이는 바깥 풍경이 그림처럼 예뻤다.


운명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삶이란 어떤 걸까. 적어도 나는 나의 길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직업을 고를 수 있고, 결혼을,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다. 물론 그 선택이 반드시 성공적일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선택권이 있고 없고에는 큰 차이가 있다. 문득 어제 나눴던 워킹홀리데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왜 겪어본 적도 없으면서 지레 겁부터 집어먹었을까. 난설헌 앞에서 문득 부끄러워졌다. 나는 하고 싶을 걸 해봐도 괜찮은 시대에 태어났다. 그것에 대한 책임은 나의 몫이겠지만, 책임을 질 기회조차 얻지 못한 사람이 이곳에 있었다.


이토록 순수하게 뭔가를 원했던 적이 있었나. 15살의 내가 가지고 있던 꿈을 그저 철부지 어린애의 희망사항쯤으로 치부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도록 허락할 의무가 있다. 적어도 한 번쯤은 과감하게 여행이라도 다녀오자. 어쩌면 여행의 결과, 그곳에 살아보고 싶었던 것은 미디어가 만들어낸 환상이었다는 걸 알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을 것이다. 처음 일본어를 공부했던 때를 떠올려보면 무슨 뚜렷한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니었다. 그냥 하고 싶으니까 했고 그게 재미있었으니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스스로에게 가장 충실했던 시절이었다. 


하고 싶은 걸 무조건 참고, 하기 싫어도 억지로 해내는 것만이 제대로 사는 삶인 줄 알았다. 뚜렷한 이유 없이 하고 싶은 건 그저 욕망이고 미련인 줄 알았다. 스스로를 엄격하게 통제하는 것만이 정답인 줄 알았다. 이제 내 삶을 따뜻하게 안아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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