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그렇게 기초 생활 수급자로 혼자 살게 되었다

목놓아 운 적도, 원망도 하였지만 지금은 그때의 내가 너무 고맙다.

by 디지털N잡러깨비

흙수저가 자유로운 12잡스 디지털N잡러가 되기까지 좌충우돌 이야기 1


안녕하세요. 저는 3년 차 12 잡스 디지털 N 잡러 깨비입니다. 지금은 출퇴근, 퇴직 걱정 없이 여행을 다니며 자유롭게 사는 인생이지만 저는 드라마의 흔한 설정의 주인공처럼 흙수저로 태어났습니다. 제 직업에 대해서는 차후 하나씩 공개를 하도록 하고 제가 자유를 찾고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보다 더 힘드신 분들이 있을 수도, 나으신 분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제 이야기를 듣고 여러분도 할 수 있다는 생각과 추후에 나오는 저의 시행착오, 노하우들을 모두 가져가서 자신의 방법으로 바꾸시고 희망을 얻기를 바라며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제 에피소드 3까지는 어릴 때의 우울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이때의 이야기가 가장 큰 밑바탕입니다. 지금의 제가 있게 해 준 가장 중요한 과거로의 여행부터 시작해볼까여?


나는 요즘에는 흔히 볼 수 있는 부모님의 이혼을 7살에 겪은 후 부모님의 손이 아닌 고모의 손에 자라며 초등학생을 보내었다. 그거 아는가? 아이들은 솔직하기 때문에 무섭다는 것을? 고모 손에 맡겨질 당시에 나는 굉장히 밝고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8살의 나이의 나는 이혼이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였었는데, 그렇게 다니던 학교에서 어느 날 친구의 놀림에 크게 상처를 받게 되는 말을 듣게 된다.


“너는 부모도 없잖아, 나는 이거 엄마가 사줬다! 부럽지?”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 그 아이의 이름과는 달리 내 머리에는 그 말이 아직까지도 생생히 새겨져 있다. 부모님 간담회가 있어서 고모가 간 적이 있는데 거기에 참석하신 후에 들었으니 아마 그 부모님들 중 누가 나랑 놀지 말라고 이야기를 했던 걸까? 실제로 그 아이는 나랑 놀던 아이가 아니였으니까.


"무슨 소리야! 나도 엄마, 아빠 있어! 안 부러워!"


안 부럽기는 엄청 부러웠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혼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있어서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저 말 한마디에 난생처음 싸움이라는 것을 하게 되니까. 그리고 싸움에서 그 아이가 상처를 받고 이야기가 고모 귀에 들어가 크게 꾸지람을 들었다. 그때 어떻게 혼났는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 말은 기억이 난다.


“깨비야. 이제는 엄마도 아빠도 만나기 쉽지 않으니까, 어디 가서 엄마 아빠 욕을 들으면 안 돼. 그렇게 욕을 들으면 엄마, 아빠에게 그리고 고모한테 잘못하는 거야, 싸움 나지 않게 참고 피하고 조심해야 해. 우리 조카 잘할 수 있지?”


그렇게 말하며 펑펑 우는 고모를 보며 내가 큰 잘못을 했다는 생각을 했지만, 사실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는 잘 못하고 그냥 우시는 고모의 모습에 항상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그 후로도 조심한다 하였지만, 친구들이 장난 삼아 아무 생각 없이 하는 이야기들에 울컥해서 다투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그게 반복되면서 매번 우는 고모의 눈물에 나의 성격은 그렇게 점점 바뀌기 시작하였다.


'어디 가서도 튀지 않게, 문제가 생기지 않게 조용해져야 해. 난 착한 아이니까'


그리고 그때의 상처 때문인지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게 되었다. 지금에야 어린아이들이 무슨 큰 악의를 갖고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당시의 나에게는 무언가 큰 상처로 다가왔고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여도 큰 충격이었다. 그래도 이 때의 성격으로 누군가에게 말을 할 때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지금도 욕을 하지 않고 항상 이야기를 할 때 한번쯤은 생각하는 버릇이 생기면서 오디오 방송을 하게 될때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말하는 것이 나를 표현한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느꼈으니까


그 후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며 아버지의 재혼이 있었고, 나와 어린 동생이 새어머니와 함께 같이 살게 되었지만, 결국 중학교 2학년 겨울. 경제 불황으로 인해 아버지가 빚을 지게 되면서, 매일 술을 마시는 아버지의 모습에 싸움이 많아지고 결국 돈 때문에 중학교 2학년 겨울 두 분은 이혼을 하셨다.


남들과는 가족의 개념을 가지게 해 준 계기이자 내가 지금 어려운 아이들,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교육 플랫폼과 컨설팅과 마인드에 관련된 플랫폼을 품게 되었던 이유를 만들어준 가장 큰 계기의 시작이였다.

중학교 3학년 어느 여름. 아버지가 빚으로 인해 행방불명되면서 어린 동생은 할머니의 손에, 나는 서울에 남으며 혼자 살아가게 된다. 간혹 친구들이 왜 그때 동생이랑 같이 가지 않았냐고 묻곤 할 때면 이야기한다


"동생 하나만 해도 할머니가 힘들 텐데, 나까지 가서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갑자기 혼자 살게 된 청소년이 무엇을 알까? 그 당시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전단지 알바를 소개받아서 종종 하면서, 가을에 친구를 통해 나의 사정을 알게 된 학교 선생님의 도움으로 행방불명 신고를 하고 기초 생활 수급자가 되었다. 아마 선생님이 없었으면 나는 굶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가을과 겨울 의사이니 10월쯤에 1개월은 밥과 김치로만, 1개월은 라면으로만, 1주일은 물로만 버티던 때가 있는데, 그때 선생님이 선물해주신 라면 1박스에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 가끔 나를 키워준 고모가 걱정되어 찾아오시곤 했지만 나 때문에 희생하시는 고모에게 미안하여 최대한 티를 안내며 살았다.


'힘든 모습을 절대 내보이면 안 돼'


그때의 나는 그런 마음을 항상 품고 있을 때니까. 라면과 김치 이 두 가지가 그렇게 소중하고 고마울 수가 없었던 때. 지금도 먹는 것에 민감한 이유가 저 때의 기억 때문이지 않나 싶다. 하지만 국가에서 나오는 소정의 지원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월세에 결국 보증금은 다 없어지고 거기에 가스비조차 끊겨서 차가운 겨울을 보내던 어느 날 집 안이 답답하여 창문을 열어놓았는데 잠깐 연다는 것이 기력이 없었는지 잠이 들게 된다. 왜 추운 날 잠이 더 잘 올까? 그렇게 나는 잠이 들었고 하루가 지나고 일어났을 때는 약해진 몸에, 겨우 기어서 냉장고 문을 열고, 안에 있는 김치와 몇 안 남은 참치를 그냥 물에 부어서 우걱우걱 먹었던 게 생각난다. 아마 삶이 힘들었을때 생겼던 독기가 이때부터 생겼던걸 아닐까.


'살아야 해. 내가 죽으면 동생은 어쩌고? 아파도 먹어야 해. 움직여야해'


그렇게 겨울방학에 몸살이 걸려버리고 우연히 그 당시 중학교 친구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지금도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 친구가 와서 나는 병원을 가 친구 어머니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게 되고, 그 친구의 어머니께서 기독교인이셨는데 어머니의 도움으로 다니시는 교회에 있는 집사님들 쉬는 방에서 살게 되며 나는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었다. 학교 그리고 고1의 나이에 알바와 학업을 병행하며. 돈을 벌기 시작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배우려고 할 때마다 나는 어린 시절의 경험들이 트라우마로 작용하여 포기를 하는 나날들이 늘어만 갔다.


이 이야기는 다음 두 번째 에피소드 나는 재능이 없었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에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누군가는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을 할 것이고, 동정을 할 수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괜찮습니다. 지금의 저는 주변에서 인정하는 현실적인 긍정러이니까요.


친한 사람들에게 어릴 때처럼 잘 웃고 장난도 잘 치는 지금의 모습을 보고 깊게 인연을 맺은 지인들 중 과거의 이야기를 들으면 깜짝 놀라곤 합니다.


지금은 어디에도 그런 모습이 없이 즐겁게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힘든 그때의 상처와 경험들이 사실 지금의 저를 만들어 준 것도 있습니다. 어딘가에 계실 부모님들이 우연히 내 이야기를 들으면 찾아오시지 않더라도 잘 살아줘서 고맙다고 생각하며 살고 싶었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원망을 한 적도 있습니다. 왜 날 낳아서 이렇게 살게 했냐고 울부짖은 적도 있어요. 독기를 품은 적도 있습니다 성공해서 복수할 거라고.


하지만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습니다.


낳아주셔서 감사하고 비록 저에게는 가족과의 기억이 유치원 때의 희미한 기억을 제외하면 친어머니는 2년 친아버지는 4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소중한 추억이고 저를 아껴주시던 모습에 감사하다고 이야기하고 싶네요. 그리고 항상 이름을 말하면 쑥스러워하시는 저의 중3 때의 담임선생님, 나를 구해줬던 네모와 어머니, 그리고 가장 중요할 때 저를 맡아서 길러주고 그 이후에도 혼자 살 때 저를 자주 찾아와 주시던 고모까지 너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어주신 모든 분들에게도 너무 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포기 하지말고 도전하는 것. 여러분께 제가 추천하는 만들 수 있는 가장 큰 재능입니다.


저는 그럼 다음이야기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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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디부디부!(디부디부는 디지털 부업으로 디지털부자 되자라는 저의 외침이자 인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