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는 재능이 없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처음에는 아니라 부정해도 자꾸 들으면 정말로 그렇게 믿게 되었지

by 디지털N잡러깨비

흙수저가 자유로운 12잡스 디지털N잡러가 되기까지 좌충우돌 이야기 2


디부디부! 반갑습니다 저는 12잡스 디지털N잡러 깨비입니다. 이 이야기는 흙수저 깨비가 자유를 얻기까지의 인생 이야기입니다. 누군가의 희망이 되고 할 수 있다는 생각과 추후에 나오는 저의 실전 노하우와 팁을 얻어가시길 바라며 이렇게 오늘의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아버지의 두 번의 이혼과 중3 때부터의 이야기에서 나왔듯이 나는 자의 반 타의 반 혼자 살게 된 케이스다. 그러다 보니 혼자 어떻게 살아야 될지도 모르고 중3 때 도움받은 친구의 교회에서 살면서 집사님 중 한 분의 가게에서 알바도 하면서 조금씩 돈을 모았었고, 인문계는 장학금 받기 어려워 선생님의 추천으로 공고를 가면서 생활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내가 날짜를 착각해서 입학 식날 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오전 알바를 나가려고 준비하던 중에 전화가 울려받았는데


"깨비 학생. 오늘 입학식인데 오지 않아서 연락했습니다"

"네? 네 에에에? 어 아... 날짜를 잘못 봤어요 입학식 못 가면 학교 못 들어가나요?"

"그건 아니고 등교날에는 늦지 않게 학교에 등교하세요"


졸린 상태 입학 안내서를 잘못 봤었고 그렇게 입학 날 학교를 빠진 유일한 학생이 되었다. 아마 나의 학교 생활이 평탄치 못할 거라는 계시였을까?


그렇게 교회에서 고등학교 1학년을 살다가 내가 당시 살던 곳은 구로역 근처. 학교는 발산역 근처 이다 보니 거리가 너무 멀었고 그렇게 자주 지각을 하게 되면서, 당시 고등학교 선생님의 도움으로 친구 집에 얹혀살게 된다. 그렇게 생활과 학업을 동시에 하다 보니 친구들이 다니는 학원을 부럽게 쳐다보고 자유롭게 노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물론 나도 쉬는 날이 생기면 가끔 놀기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곤 했지만 그래도 돈을 아껴야 하다보니 자유롭게 마음껏 노는 친구들이 부럽고 그냥 지금 생활이 지쳐가기만 하는 나날의 반복될 뿐이었다.


'이렇게 졸업하고, 취직하면 생활이 과연 나아질까?'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에 여러 방법을 통해 공부 할 방법을 찾을 수 있고 나만의 무언가를 찾을 수 있었겠지만 생활에 지쳐, 학업에 지쳐, 주변의 부담에 지쳐갔다. 그 당시에는 성공을 하려면 당연히 공부를 잘해야 된다는 이야기들을 주변의 지인들과 할머니, 그리고 선생님들에게 자주 듣고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곳을 취직하여야 된다는 말만 계속 들었으니까. 이때의 기억을 통해서 지금 N잡러로 살면서 로드맵 컨설팅을 할 때 항상 하게 되는말이 생겨났다


"실수해도 되고, 멈춰도 되요. 대박이 나면 좋지만 그걸 위해서 목메이면 도리어 조급해져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니 우리 천천히 갈까요?"


내가 다니던 공고는 4가지과가 있었는데 그중 내가 속한 과는 디자인과였다. 그리고 거기서 어찌어찌 공부를 하여 장학생의 기준인 상위권을 유지하였지만, 알바를 늘리기 시작 후로는 점점 피곤함이 쌓여,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하였고 문제는 그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습득이 굉장히 느린 편이다. 실제로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야 내 이름을 쓰기 시작하였고, 그 후로도 무언가를 배울 때 집중력이 떨어진다거나 조금만 실수해도 눈치를 보면서 혼자 잘못했다는 생각하다 보니 실력이 느리게 상승되었다. 잠자는 시간도 줄여가며 그렇게 상위권 유지까지는 어떻게 되었지만 내가 원하는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가기에는 성적도 실습도 조금씩 부족하였고. 사실 내가 고1 때부터 하고 싶던 것은 음악인지라 돈을 모아 악기를 사고 배웠지만, 그 역시도 습득이 느려 그걸로 뭘 어떻게 돈을 벌 거냐며 주변의 만류에 고민을 하던 중 악기가 부서지는 상황에 다시 살 여유는 없어 포기를 하게 된다.


"그냥... 하지 말란 건가... 하... 겨우 모아서 산 건데 우선 일부터 익숙해지자"


그리고 그렇게 반년 간의 방황을 잠시 하다가 마음을 잡아가던 찰나 고2 때 초반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었다. 부모님보다 더 자주 뵙고 아껴주시던 할아버지가 치매로 고생하시다가 하늘나라로 가신 거여서 그런지 나는 큰 충격을 받았는데, 결국 겨우 잡던 마음은 무너져 내렸고 주변을 볼 여유가 사라지면서 그렇게 더욱 심한 방황을 하기 시작하였다. 지금도 그 당시의 담임선생님에게 감사한 게 내가 170일 가까이 학교를 가지 않았는데도 퇴학을 당하지 않았던 것은 선생님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면서, 학교를 제대로 다시기 시작하였지만 그때는 그걸 몰랐고 단지 먹고는 살아야 한다는 것과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것에 휩싸이면서 무언가를 도전하여도 금방 늘지 않는 실력과 주변에서 반복되는 말들에 점점 지쳐간다


"너 그거 해서 뭐 먹고살려고?"

"공부나 잘해. 딴 거 하지 말고. 그렇게 해서 돈은 되겠냐?"


꿈과 현실 그사이에서 매번 고민을 하게 되고 그래도 요리, 디자인 등 도전을 하였지만, 무언가를 익히고 습득이 느릴 때마다 나는 매번 같은 말을 듣곤 했다


“너는 재능이 없는 거 같아. 그렇게 배워서 어디다 써먹겠어? 차라리 돈 되는 기술을 배워서 바로 취업을 해”


물론 그게 나에게 더 도움되는 일을 배우라는 말이였겠지만, 그 당시 나는 그 말에 점점 자신감이 떨어지게 되고 바닥을 찍게 된다. 아마 내가 노력으로 재능을 만들고 싶었던게 이 때 기억이 가장 크게 남아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베스트가 되지 못한다 하여도 재능을 만들 수 있고 그 재능을 이용해서 돈을 벌 수 있다고. 꼭 베스트여야지만 성공하고 돈 버는 것이 아니라고. 내 마음 한 켠에는 그 마음이 남아 있어서 후에 3년동안 재능을 만들려고 노력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더욱 문제가 되기 시작한 건 기술을 배우려고 해도 어릴 적 트라우마들 때문인지 어느샌가 심리적 불안감으로 손을 떨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혼자 살다 보니 요리를 자주 해 먹게 되고 그걸 좋아하게 되었는데 주변의 도움으로 요리를 배울 기회가 생겨서 도전하였지만 그때 나는 알게 된다. 약간의 긴장감에도 손을 엄청 떠는 것을. 조그마한 실수에도 겁을 먹는 나는것을.

요리도, 추천받은 정비 일도, 하고 싶던 음악과 그림도, 주변 눈치를 자주 보던 당시의 내게는 긴장감은 항상 같이 오는 친구 같은 존재였고 그렇게 모든 것을 배우기가 더욱더 어려웠다. 그렇다고 손 떠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이미 동정 어린 시선을 많이 받다 보니, 창피하고 검사해봤자 심리적이라는 말만 들으니 정신병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웃기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사실 현대인에게 마음의 병은 누구나 하나쯤은 품고 있었거나 있는 건데도 그때에는 그런 나 자신이 싫고 부끄럽기만 했다. 지금에야 가끔 지인들과 친해져 술자리를 하거나 음료수를 따라줄 때 가끔 손을 떨면


“오랜만에 보고 술을 주려니 손이 긴장한다야 ”


이러면서 웃으며 넘기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까.

그렇게 재능 없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다 보니 자신감은 점점 떨어지게 되고, 자연스레 나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에 빠져서 살게 된다. 그리고는 그냥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는데. 학교를 잘 안 나가는 것을 할머니께서 알게 되어, 그 당시 시험기간에는 학교를 나가던 나를 할머니가 찾아왔다.


"잘 지내고 있었는지 알았는데, 왜 이래... 학교는 졸업해야지..."


할머니는 말을 하며 학교 정문 앞에서 엄청나게 우셨다. 사실 그때쯤 자퇴를 고민하던 중이라 솔직하게 내 생각을 이야기하였지만 할머니는 내가 제발 학교만 나와달라며 그렇게 매달리셨다. 그런 모습을 보면 아무리 불효손이지만 어찌 내가 학교를 안 나갈 수 있겠는가?

당시 얹혀살던 친구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사는 친구의 모습에 많은 부러움을 느끼며 다정하게 대해주시지만 왠지모를 소외감을 느꼈고, 가뜩이나 힘든 마음에 빨리 나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결국 주유소 알바와 새벽 알바를 하여 돈을 모았다. 다시 마음을 잡고 3학년이 되기 전 학교 근처로 이사를 하게 되는데 우연히 방을 구하러 간 부동산에서 남편을 잃으시고 조카와 사는 할머니가 방을 내놓고 있을 때 내 가 그곳을 방문하게 된다. 학생인 것을 알아보신 할머니는 보증금도 받지 않고 대신 조카에게 포토샵을 알려주지 않겠냐면서 그러기로 하고 10만 원이라는 월세와 함께 그 집에서 살 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이거 남편이 쓰던 건데 쓸래?"


정말 인연처럼 돌아가신 남편분께서 사진작가셨다며 나에게 남은 필름 카메라를 한대 주셨는데 학교를 돌아가서도 이제 와서 뭘 해야 할지 모르고 고민하던 때라 마침 학교에 사진반 있다는 생각이 나면서 감사하다며 사진을 받았다. 그리고 1개월 뒤 3학년이 되었고 학교에 갑자기 사건이 터져서 2학년 들로 이루어질 사진반에 공백이 생기게 되고 3학년 중에 혹시 들어올 마음이 있는지 묻는 사진 담당 선생님의 말에 나는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손을 들고 그렇게 사진반이 되게 된다.


'이건 운명이야 사진기가 들어왔는데 들어갈 곳이 생겼어'


그리고 그때가 내게 몇 번의 긍정적인 변화 중 한 번의 계기가 되었다. 사진반을 들어가서 알았던 사실 중 하나가 사진반은 대회나 특별 공모전을 나가는 경우에는 수업을 빠질 수 있었고, 사실 오랜만에 학교를 나가고 할머니가 우는 사건을 계기로 집안 사정을 아는 친구들이 늘어나면서 수업이 불편했던 나에게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였다. 그렇게 스스로 좀 더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면서 사진을 배워나가던 중에 사진대회가 열리게 되었는데, 아직 사진을 배운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선생님의 권유로 여주대학 배 전국 고교생 사진대회를 나가게 되었고 전국에 약 500명의 학생들이 모여 여주대학의 축제를 주제로 사진을 찍게 된다.


'나야 3개월밖에 안됐는데 미친 듯이 찍어보는 거지 뭐'


그때는 큰 기대 없이 그냥 나는 실력이 부족하니까 미친 듯 찍어 보자는 생각에 필름만 거의 30통을 넘게 쓰면서, 누워서, 나무에 매달려서, 어딘가에 올라가서 사진을 촬영을 하였는데 그렇게 찍었던 사진 중 하나가 은상을 타게 된다.


“내가 상을 탔어? 내가? 재능이라곤 없다는 소리를 듣던 내가? 가능하 거야? 어... 진짠가?”


이 말만 반복하면서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리고 나도 무엇인가를 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더욱 열심히 사진을 배우고, 손떨림 심해 사진이 흔들리는 게 더 많았지만 사진은 셔터스피드를 조절하면 되고 총을 쏠 때처럼 숨을 잠시 멈추면 떨림이 줄어들거나, 삼각대를 이용하면 되기 때문에 안정감 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손떨림 때문에 직업으로 하려고 상담했던 선생님도 만류를 하였지만 내가 어떻게 해서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같이 방법을 찾고 알려주시던 작가 선생님 덕분에 점점 자신감이 붙기 시작하면서 깨닫게 된다.


'안된다고 했던 모든 것들이 나는 단지 방법을 찾고 있지 않았구나. 그냥 안되는다는 말에 해야 될지 안 해야 될지만 고민하고 그냥 포기했던 거였어'


그렇게 더욱 열심히 사진을 배우고 대회도 나가면서 입상을 하면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자격증도 따고 희망을 품게 된다. 하지만 너무 큰 기쁨에 젖어 대비를 하지 않아서일까? 졸업이 가까워지고 수능이 끝난 날 나는 뼈아픈 현실을 마주치게 된다. 내가 대학을 가버리면 그 비용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가면 동생은 자칫하면 대학을 못 갈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렇게 나는 장학생으로 갈 수 있는 몇몇 서울권과 서울 근처의 대학을 을 포기하여야 하였다. 너무나 꿈꾸고 꿈꾸던 대학 캠퍼스보다 나보다 더 소중한 동생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취업전선으로 뛰어들게 되고, 사회에서 느낀 것은 고졸에 대한 차별과 현실의 벽과 빚이라는 무서움이다.


이 이야기는 다음 세 번째 이야기 취업하고 빚이 늘어났다 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끝까지 들어주신 분들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저에게 노력으로 재능을 만들 수 있는 기초를 만들어주신 작가 선생님, 기회를 만들어 주셨던 사진기를 주셨던 할머니와 사진 담당 선생님, 장학생이 되게 도와준 중학교 담임 선생님, 쉴 수 있게 도와주셨던 친구와 친구 어머니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여러분들도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있거나 재능이 없다고 느끼실 수 있습니다. 저 또한 주변에서의 만류와 늘지 않는 실력 때문에 많은 포기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12 잡스를 하며 영상, 이모티콘, 글쓰기 등등 다양한 기술을 알게 되고 누군가에게는 재능 부자란 소리를 듣는 제가 할 수 있는 말이 있습니다. 하루에 5분이라도 꾸준히 해보세요. 하는 방법을 찾아보세요.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하다 보면 1년 뒤의 나는 누군가보다 잘하고 있는 재능을 가지고 사람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면 언제든 물어보세요. 이제는 누구보다 프로도전러인 제가 최대한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포기 하지말고 도전하는 것. 여러분께 제가 추천하는 만들 수 있는 가장 큰 재능입니다.


저는 그럼 다음이야기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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