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행복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된다. 행복은 추상적이고 명확한 실체가 없다. 명확하지도 않은 것에 매어서 그것을 추구한다면, 자기 눈 앞에 있는 한 순간 한 순간을 바라보고 성실히 살아가기 힘들다. 다른 추상적인 개념들도 그렇다. 자유, 평등, 공정성, 형평성 같은 추상적인 개념들을 이루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것을 맹목적으로 추구하지 않을 때 이뤄진다.
나아가, 무언가를 하겠다고 하는 것보다, 그 반대되는 것을 하지 않는다는 자세로 사는 것이 인생을 가장 의미 있게 사는 것이다. 즉, 자유로워지자고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지 않은 것을 하지 말자는 태도가 더 좋다. 행복하자라고 하기보다 행복하지 않게 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다른 사람에게 잘 하자라고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말자는 것이 더 나은 태도이다. 하고 싶은 말을 하자고 하기보다는, 하고 싶지 않은 말은 하지 말자라는 태도가 바람직하다.
무언가를 추구하기보다, 그 반대되는 것을 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도 예수님이나 부처님도 십계나 오계 등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만들어 두었지,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하라는 건 하지 않았다. 모로 가도 서울에만 가면 되는 것이다. 다만, 하지 말아야 할 것만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요즘 세상은 올바른 것을 추구하려는 마음이 너무나 강하다. 올바른 것을 추구하려다 보니, 그 반대되는 것에 대해 혐오하고, 갈등하게 된다. 이게 맞는 것일까? 올바른 것을 추구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상대를 혐오하지 않는 것. 그것이 더욱 좋은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행복에 대한 추구는 우리에게 본래적인 압박감을 준다.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은 오히려 불행을 초래하기 쉽다. 행복은 순간적인 감정일 뿐 지속적인 상태가 아니며, 어떤 물질적인 목표나 상태에 도달한다고 해서 영구히 유지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행복을 추구하지 않고, 현재의 순간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작은 기쁨들이 모여서 결국 행복한 삶을 만들어 준다.
자유, 평등, 공정성, 형평성 같은 추상적인 개념들도 비슷하다. 이 개념들은 우리가 사회적으로 바라는 이상적인 상태를 나타내지만, 그 자체로는 구체적인 형태가 없다. 이런 개념들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다 보면 오히려 현실에서의 작은 갈등이나 불평등을 더 부각시키게 된다. 자유를 추구하려는 강한 의지가 오히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으며, 평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개개인의 차이나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인생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이를테면, 자유로워지겠다는 목표보다는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나 행동을 피하려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행복해지겠다는 다짐보다는 불행을 초래하는 행동이나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더 유효하다. 예수님이나 부처님도 이러한 진리를 일찍이 깨달았다. 십계명이나 오계는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지침을 제공함으로써,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현대 사회는 올바른 것을 추구하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는 옳은 일을 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지만, 이는 종종 상대방에 대한 혐오와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추구하는 올바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올바른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상대를 혐오하지 않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이는 상대방의 관점을 존중하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진정한 인생의 의미는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에 달려 있다. 우리는 삶에서 다양한 선택을 하게 되지만, 어떤 선택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라, 우리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지키기 위한 적극적인 선택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