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님 그러지 마시고 이번 기회에 멋진 몸 한 번 만들어보세요."
올 것이 왔다. 30분 가까이 과한 친절을 베풀던 그는 미끼를 문 나를 이렇게 낚아챈 것이었다.
어쩌면 좀 더 빨리 알아챘어야 했다. 나는 그 미끼를 물어븐 것이라고. 새로 옮긴 헬스장에서 선뜻 "회원님, 새로 오셨으니 저희 짐에서 OT를 받아보시겠어요?"고 했고, 가볍게 운동 자세 따위를 알려주는 걸로 생각하고 "오 네 할게요" 한 게 그들의 밑밥이었다는 걸.
OT를 하겠다고 한 이유는 단순했다. 웨이트트레이닝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는 2년 남짓 됐는데, 한 번도 제대로 된 자세를 배워보거나 가르침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다. 2년 전 십자인대 파열로 '나 정도면 나름 스포츠만-이지' 했던 근거없는 자신감이 무너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 못 차리고 혼자 재활을 했다. 얼마 전 검진 차 찾아간 병원에서 여러 테스트 후 "마치 수술을 안 한 것처럼, 아니 그보다 더 좋아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첫날같이 기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상 두려움은 떠나지 않았다. 수술한 양쪽 무릎이 뜨끔할 때마다 어딘가 잘못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에 위축됐고, 그런 날엔 어김없이 꿈에서 병원 침상에 누워 오줌조차 제대로 누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을 마주했다. 무릎 뿐 아니라 어깨, 고관절, 허리엔 빨간불이 들어왔다. 이러다 툭, 하고 또 끊어질 것만 같았다. '2년 동안 혹 잘못된 습관이 들어버린 건 아닌지' 하는 걱정이 들었고, 그러던 찰나 "회원님 OT 스케줄 잡아드리려 전화드렸어요~" 하는 그의 전화는 횡단보도 파란불같이 반가웠다.
무릎에서만 느껴지던 뜨끔함이 퍼뜩 머릿 속으로 날아든 건 그가 스쿼트를 끝내고 데드리프트 자세를 알려줄 때였다. 넘치면 모자르니만 못하다는데, 그는 모자른 것만도 못한 넘치는 친절을 보여줬다. 어딜보나 그의 친절에는 과시가 깃들어있었다. "확실히 운동 하시던 분이라 습득이 빠르시네요. 한 10번만 더 받으시면 금방 좋아지시겠어요" "나쁘진 않은데 좀만 더 만져주면 훨씬 자세가 나오겠네요" "지금 무게도 충분한데 자세를 좀 더 교정하시면 좀 더 드실 수 있어요."
어느 순간 그의 입발린 과시는 전혀 내 고막을 통과하지 못했다. '하 이러고 PT 받으라고 하면 어떡하지?' '만약 그러면 어떻게 거절해야 하지?' 어느새 OT 시간은 월요일 출근 후 점심을 기다리는 마음만큼 끔찍한 시간이 됐다. "하 이제 그만하고 빨리 그냥 끝냈음 좋겠다"하는 마음 뿐이었다. 헬스장을 다녀온 지 몇 시간 채 되지 않은 지금 뭘 배웠는지도 잘 기억 안날 정도다.
PT 가격표를 내민 그의 표정에 나는 절망했다. 이 얼굴에 어떻게 침을 뱉는단 말인가. 그의 친절이 민망하지 않도록 뱉어낸 수많은 '오'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오 너무 좋네요' '오 하나도 안 아파요' '오 이렇게 하는거였네요' '오 뻠삥이 엄청나네요' 10회라도 끊을까... 하는 마음이 순간 번뜩하고 스쳐갔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존재감은 엄청났다. 마치 아파트 단지를 휘젓는 불법개조 배달 스쿠터처럼.
나에게 필요한 건 2년 동안 몸에 익은 운동 자세를 돌보는 게 아니었다. 30년 동안 박혀버린 '거절 못하는 병'을 고치는 게 더 급선무였던 것이다. 백화점에서도, 여행지 기념품 샵에서도, 하물며 식당에 가서도 나는 미끼를 덥석 덥석 물어대느라 바빴고, 통계적으로 약 7할의 확률로 패배했다. 눈탱이는 쓰디썼다. 하물며 의뢰한 도안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음에도 이걸 몸에 새기고 난 뒤 레이저 제거 중인지가 어언 2년이다. 망친 머리를 두고 미용실에선 '마음에 든다'하고 혼자 전전긍긍하는 건 일도 아니다.
자본주의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건 인간의 욕망이나 수요공급 곡선 따위가 아니다. 나 같은 호구들이다. 그렇다. 나는 자본주의의 수호신인 것이다. 지역경제 활성화의 참 일꾼이며 수많은 판매왕들의 어버이이다.
신은 잠들지 않는다지만 오늘은 빨리 자야겠다. 내일은 OT가 아닌 PT를 받는 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