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er me.
가톨릭 전례 안에서 11월은 위령성월 慰靈聖月이다. 말 그대로 죽은 이의 영혼을 생각하고 위로하는 달이다. 11월 중에서도 11월 2일은 위령의 날로 정해져 있어, 각 본당마다 위령미사를 봉헌한다. 세상을 떠난 가족, 친지, 지인들의 이름을 미사예물로 올려 다 함께 위령미사를 드린다.
미국의 할로윈데이가 10월 31일이고, 멕시코에서도 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죽은 자들의 날’이라 이름을 붙여 크게 축제를 하는 것을 보면, 그즈음의 날짜에 죽은 영혼들을 위로하는 풍습이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듯하다.
11월 2일 수요일, 나는 가까운 성당에 가 엄마의 이름을 미사예물로 올리고 위령미사를 봉헌했다. 엄마뿐만 아니라, 불과 며칠 전, 이태원에서 있었던 끔찍한 사고의 피해자들을 위해 함께 기도했다. 눈물이 났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자그마치 약 160여 명의 사람들이 길 한복판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깔려 갈비뼈가 부러지고 숨을 못 쉬다 죽었다. 서울 도심 한복판이었다. 대부분 젊은이들이었다. 10대도 있었다. 죽은 이들의 혼을 달래고 악령을 쫓아내는 축제의 날, 그 축제의 인파 속에서 그들은 목숨을 잃었다. 이것이 과연 무슨 일인가. 축제의 날 사람이 죽다니.
멕시코의 ‘죽은 자들의 날’ 축제를 배경으로 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가 있다. 어쩌다 실수로 ‘죽은 자들의 세상’에 가게 된 소년 미구엘의 이야기다. 그저 평범한, 그저 따듯한 만화영화인 줄 알았는데, 소중한 이를 잃어본 사람들은 이 만화영화를 보고 대성통곡을 한다. 나 역시 그랬다. 그 영화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은 세 번 죽는다
심장이 멎었을 때
땅에 묻혔을 때
사람들 마음에서 잊혀졌을 때
이승에 있는 가족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죽은 자들의 세상‘에서조차 사라질 위기에 처한 고조할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미구엘은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증조할머니에게 ’remember me'라는 노래를 들려준다.
참사의 슬픔속에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내 어머니의 육신은 한 줌의 재가 되어 추모관 유리상자 안에 있지만, 내 어머니의 영혼은 천상세계에 도착해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내 어머니를 세상 다하는 날까지 기억하고 있다가, 엄마를 만나러 가면 될 일이다. 오래오래 엄마를 잊지 않는 것, 엄마가 하셨던 말들, 엄마와 행복했던 기억들, 투닥거리며 싸우고 토라지고 화해하던 그 모든 순간들을 잊지 않는 것이, 이승을 사는 내가 할 일이다.
이승의 사람들이 죽은 자를 잊으면, 그는 ‘죽은 자들의 세상‘에서조차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또다시, 떠들썩한 축제의 날 소중한 사람들을 잃게 되는 끔찍한 사고를 되풀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기억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와 응급처치를 하던, 소방관과 경찰관들의 지도부가 피의자 신분이 되어 조사를 받는다. 그 현장에 매우 늦게, 뒷짐 지고 느긋하게 걸어오던 더 높으신 분들은 왜 아무런 조사도 받지 않는가. 왜 대통령은 머리 숙여 사과하지 않는가. 이 모든 것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앞으로의 할로윈데이는 이제까지와는 분명 다를 것이다. 할로윈데이, 죽은자들의 날, 위령성월의 진짜 의미를 되새기며, 그들의 영혼이 사라지지 않도록 기억하고 마음을 모아야겠다. 트라우마의 현장에서 생계를 이어가야 할 이태원 거리의 상인들, 그 현장을 겪은 수많은 사람들, 그들이 건강히 회복하길, 회복하여 앞으로 나아가길, 살면서 수없이 떠오를 그 참사의 기억 속에서 살아내길, 살아내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주님,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이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그들의 영혼이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아멘.
Know that I'm with you
The only way that I can be
Until you're in my arms again
Remember me
-영화 코코 OST 'Remember me'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