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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치아 lucia Mar 23. 2024

미니멀 라이프 Minimal Life 2

나는 손발이 차다. 남편은 연애 때부터 15년 가까운 세월 동안 내 손을 잡았음에도, 한겨울이 되면 얼음장 같은 차가운 손이 도무지 적응 안 된다며 늘 화들짝 놀란다. 그 찬 손으로 성당에서 오르간반주를 하려면, 손이 시리다. 손이 시려우면 손가락이 자꾸 뻣뻣해지고, 아마추어인 나는 자꾸만 실수를 한다. 남편이 핫팩이라도 사서 조물조물하면서 반주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핫팩은 일회용품, 온전히 100% 쓰레기다. 화학물질이라 소각이나 매립과정에서 유해물질이 배출된다고 한다. 나에게 과연 핫팩이 꼭 필요할까. 한겨울 영하 15도의 날씨에 외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핫팩은 생존과 연결된 필수아이템일 것이다. 티켓 한 장에 수십만 원에 달하는 공연을 책임져야 하는 피아니스트에게 핫팩은 그 책임의 무게만큼 중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 같은 아마추어 오르간반주자에게 꼭 핫팩이 필요할까. 미사 중 반주를 하지 않는 남는 시간 동안 나는 장갑을 끼고 미사를 본다. 그리고 열심히 손끝을 주무른다. 주무르다 보면 이내 따듯해진다. 그렇게 미사 1시간 동안 내 손을 귀하게 여기며 미사를 본다. 그거면 되지 않는가.     


꼭 필요한 일회용품이 있다. 의료현장에서는 정말 많은 일회용품을 사용한다. 엄마가 백혈병으로 격리실에 있을 때, 수많은 일회용품을 보았다. 그뿐이겠는가. 수술실, 처치실 곳곳에 일회용품 천지다. 이는 필수불가결하다.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 식당 혹은 식자재가공공장 같은 곳에서 사용되는 일회용품 또한 위생과 안전에 꼭 필요하다. 이것들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저 인간의 편의를 위한 일회용품이 생활 속에 정말 많다. 젓가락 빨대 종이컵뿐만 아니라 한번 쓰고 버리는 부직포청소포 물티슈 등등 많아도 너무 많다. 이것들은 다 어디에 있는가. 어디로 가는가.      


물론 인간의 노동을 줄여주고, 편리하게 해주는 것은 분명 중요하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는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이런 것도 지구에 유해하니 다 내 다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 살아야 하게 된다. 현실적으로 우린 그런 삶을 살고 싶지도 않고 살 수도 없다. 하지만 줄일 수는 있다. 꼭 필요한 것인지 생각해 볼 수는 있지 않은가. 부직포청소포를 알뜰히 사용하는 방법을 생각해 본 뒤, 3장 쓸 거 1장만 쓰면, 그만큼 매립과 소각에서 발생되는 유해물질은 줄어들 것이다. 궁상맞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렇게 까지 살아야 되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살 땅이다. 내가 마시는 공기이고, 내가 먹는 물이다. 나는 이것들을 아끼고, 귀하게 여기며 살아야 하는, 지구의 일원一員이다.      


30대 때, 면생리대가 제법 쓸만하게 출시되어 구매해 보았다. 세탁과정은 당연히 귀찮지만,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근데 어느 날 친구에게 면생리대를 권했더니, 친구가 말했다. ‘근데, 세탁과정에서 물을 사용하고, 세제를 사용하는데, 그건 괜찮은 거야?’ (친구는 딴지 걸듯 말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궁금하고 고민하는 말투였다.) 아 그렇지. 그렇다면 일회용품으로 폐기되는 것과, 세탁과정에서 물과 세제를 사용해야 하는 것, 중에 뭐가 더 환경에 유해한 것일까. 나는 과학자가 아니라서 정확한 분석은 어려웠다. 하지만 연결되어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일회용품 규제정책이 생겨나면서, 덕분에 텀블러가 필수아이템을 넘어서 유행이 되었다. 집집마다 대여섯 개는 기본이고, 굿즈 모으듯이 사 모으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에코백이나 장바구니도 홍보상품으로 여기저기서 나눠준다. 이것들은 과연 친환경적인가. 텀블러를 생산하면서 생겨나는 유해물질, 재활용여부 등등을 생각해 보면 종이컵과 다른 것은 무엇일까. 에코백이나 장바구니를 만들려면 염색과정에서 매우 많은 물을 사용해야 하고, 염색공장에서 나오는 폐수는 당연히 하천을 오염시킬 것이다. 자세한 수치나 전문용어들은 내 영역밖이니 넘어가겠다.      


종이컵과 텀블러, 비닐봉지와 에코백, 무엇이 더 유해한 것인지, 무엇이 최선이고 차악일지 전문적인 판단은 어렵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최대한 아껴 쓰는 것이다.

종이컵을 써야 한다면 한번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회에 걸쳐 사용한다. 에코백도 옷처럼 깨끗이 관리하며 사용하고 시접이 뜯어지면 수선하고 리폼해서 사용한다. 일회용이든 다회용이든 아껴 사용하고 꼭 필요한 것인지 생각해 보고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 그 무엇도 한번 쓰고 버리지 않아야 한다.    

 

가죽이나 여우털 오리털 양모 등등 살아있는 동물에게서 얻어지는 재료로 만든 의류들에 대해 비판하는 글들을 어렵지 않게 본다. 저 재료들을 얻기 위해 동물들을 비정상적으로 사육해야 하고, 죽여야 한다. 당연히 잘못된 것이다. 해서, 요즘엔 인조가죽 페이크퍼 웰론패딩 등등 새로운 소재들로 만들어진 의류들도 시중에 흔하다. 그런데, 동물을 괴롭히지 않고 인간이 만들어냈다고 해서, 소비가 당연시되어서는 안 된다.


패션산업은 점점 재앙이 되어가고 있다. 매년 1천억 벌의 의류가 만들어지고 그중 70%는 쓰레기로 버려진다.


천억벌 만들어 70%는 쓰레기로…지구재앙된 패션:동아경제 (daenews.co.kr)


 의류는 분명 재앙이 맞다. 인간을 편리하게 하고 노동에서 해방시켜 주는 수많은 아이템들은 도무지 줄이고 아끼기 어려울 수도 있다. 내가 그만큼 불편해야 하고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옷은 다르다. 5벌을 1벌로 줄인다고 해서 불편하지 않다. 우리는 옷이 없어서, 필요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예뻐서 사고, 기분 나빠서 쇼핑을 하고, 기분이 좋아서 쇼핑을 한다.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채우려고 소비한다.     


따듯한 오리털잠바는 한 벌이면 된다. 지금도 충분한 외투를 더 이상 사지 않으면 된다. 인간이 만든 소재들은 동물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만들어졌지만, 지구에는 분명 해를 끼치고 만들어졌을 것이다. 패션산업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반으로 줄일 수만 있다면, 반의 반으로라도 줄일 수 있다면, 대기오염을 줄이고 뜨거워지는 지구를 멈출 수 있지 않을까.     


미니멀라이프를 다짐하는 나의 목표 ‘올해는 옷 사지 않기’는 이미 실패했다. 2월부터 운동을 시작했는데, 반팔티를 하나 샀다. 케이크를 사러 주말에 백화점에 갔는데, 아*다스 특별전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운동할 때 땀배출이 슝슝 잘되는 스포츠웨어를 매우 저렴한 가격에 집어왔다. 고작 두 달 만에 나의 목표는 실패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하지는 않는다. 오래오래 두고두고 입을 것이다. 이런 아이템은 유행 타는 것도 아니고, 60살 돼서도 입을 수 있는 옷이니, 즐겁게 운동하면서 감사히 입어야겠다.     


종이컵이든 텀블러든, 오리털이든 웰론패딩이듯, 일회용이든 다회용이든, 모두 지구에 유해하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편리하게 살고 싶고, 예쁜 옷을 입고 싶고, 최신 유행템을 가지고 싶다. 하지만 너무 많이는 갖지 말자. 욕심을 없앨 수는 없지만, 줄일 수는 있다. 열 가지를 한두 가지로 줄일 수만 있다면, 지구는 나아질 수 있다. 생명과 위생에 직결된 꼭 필요한 일회용품에게 그 자리를 양보해 주자. 그래야 이 땅도 살 수 있고, 나도 살 수 있고, 다른 생명들도 살 수 있다.     


실패했지만 포기하지 않는 나의 미니멀라이프.  

keep g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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