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아빠곁에는 막걸리..
아빠는 막걸리를 만드는 회사에서 다니셨다.
술공장에 다니는 사람치고 술에 쩔어 살지않는 사람이 없었고 그 중에 아빠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때는 음주운전도 돈 몇푼으로 묵인되는 뭐 그런(?) 시절이었고 트럭으로 배달 일을 하는
아빠는 항상 술에 취해있었다.
술마시는 사람들중에 술버릇 없는 사람이 없듯이 울 아빠도 술만드시면 집을 찾아오시질 못하는
술 버릇 때문에 엄마는 매일같이 아빠가 들어오실때까지 잠을 못주무셨고
과한 술이 그러하듯 아빠의 간에 이상이 오기시작했다
처음에 내가 기억하는건 중학교 어느 일요일 저녁..
욕실에서 씻고있는데 엄마의 고함소리와 남동생의 울음소리에 뛰쳐 나와보니
아빠의 몸은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엄마는 바늘로 손과 발을 찌르고 계셨고
우리는 아빠의 몸을 눈물과 땀으로 범벅될때까지 주물렀고 약 5분여만에 깨어나셨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기나긴 병과의 싸움이..
술을 끊으시면 다 해결이 되었을텐데
아빠는 이미 알콜중독이었고 쉽게 끊지를 못했다
약도 먹어보고 기도원에도 가보고
쓰러져서 병원으로 실려가고 퇴원하시기를 반복하시다가
1998년 내가 고3때 아빠는 회사차로 음주운전으로 회사에서도 퇴직당하고
합의금에 벌금에.. 우리집은 주저앉고 말았다 그야말로 악몽같았다
고3 첫 모의고사를 1등한 성적표를 보여드렸는데
엄마는 내 성적표를 쳐다 보시지도 않으셨고
대학은커녕 직장을 잡아야했다.
동생들이 다들 어렸기에 엄마와 난 주 수입원이 되어야했다.
아빠를 많이 원망했다.
매일같이 집에서 술만 드시고 건강은 계속해서 악화가 되어가고 있었고
고등학교 졸업후 병원에 취직이 되었는데
아침마다 울면서 출근하던 기억이 난다
피를 위로 아래로 쏟아내는 아빠를 싣고가는 119차안에서도
응급실에서 그 피를 받아내면서도 울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렇게 몇년이 지나 난 결혼을 했고 아빠가 또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지긋지긋해.. 병원에 입원한 아빠를 보러 아니 간병하는 불쌍한 엄마와 동생을 보러 울산으로 내려갔고
아빠는 여전히 나에게 이번에 나가면 절대 술 안마시겠다고 약속 하셨다
그 약속이 마지막 약속이 되어버렸고 10년동안이나 지겹게 병원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쪽잠자가며
간병과 의미없는 약속에 지쳐가는 일은 이제 끝난샘이었다.
해방.. 그러나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매일같이 울었다
퇴근해서 집으로 가면서 아빠가 생전에 즐겨 들으시던 현철의 내마음 별과같이 노래를 들으며
엉엉 오열수준으로 울면서 다녔다
이렇게 가실거 그냥 좋아하는 막걸리 내손으로 따라 드릴걸..
술 드시고 싶어서 냉장고 열었다 닫았다 하는 아빠에게
악을 쓰며 그것도 하나 못끊고 당신이 무슨 아빠고 가장이냐고...
상처되는 말들을 퍼붓지말걸..
많은 음주로 골반뼈가 다 녹아 없어져서 양쪽에 인공관절수술을 하시고도
어린 자식들 학교라도 보내겠다고
절둑거리는 걸음으로 버스타고 일하러 나가셨던 아빠..
술이 진절머리 난다며 쳐다도 보지않았는데 지금 나를 돌아보니 나를 이만큼 키운게 8할이 술이구나..
우리를 키우기 위해 마시던 술이.. 그 술로 얼마나 깊은 외로움에 지내셨을까
그 술때문에 돌아가시는 날까지 얼마나 아팠을까..
요즘 힘들때마다 아빠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아 본다
나를 키운게 8할이 술이었지만 그래서 이세상에 내곁에서 나를 지켜보지는 못하지만
아버지 인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드리기 위해
엄마에게 잘하고 자식들 잘키우며 형제간에 우애있게 지내겠다고
아빠의 사진을 보며 약속드린다 아빠처럼 말만 하는 약속이 아닌 진심으로..
아빠.. 아빠의 아픈손가락이 되지않을게요
나 잘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신거죠? 보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