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세담 Jan 03. 2019

아줌마! 응? 누구? 나?

햇살이 따뜻한 2010년 5월의 봄날,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찬 놀이터...


"아줌마~ 아줌마~ 아줌마~~~"


한 어린 남자아이가 애타가 한 아줌마를 부르고 있었다.


"아줌마~ 아줌마~ 아줌마~~~"


'아이고 그 아줌마 누군지 몰라도 대답 좀 하시지, 애가 저렇게 부르는데 대답을 안 하냐...'


나는 몇 번이고 애타가 아줌마를 부르는 아이 목소리를 등 뒤로 들으며 '그 아주머니 참 야속하시네. 아이가 저렇게 애타가 부르면 대답 좀 하지.'라고 생각하며 가던 길을 계속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등 뒤로 다가온 낯선 손길...

 

"아줌마~~ 아줌마~~"


헉, 역시나 불안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아까부터 애타가 한 아줌마를 찾던 그 아이가 내 옷깃을 잡으며 "아줌마"를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설마, 날 부른 건가' 하는 생각에 고개를 획획 돌려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이 작고 평화로운 놀이터에 아줌마라고 불릴 수 있을만한 연령대의 여자는 나뿐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극도의 혼란에 빠지게 되었.


설마...

설마...

설마...

지금 나보고 아줌마라고 한 건가?

 


"아가, 누구 부른 거야, 지금?"

"아줌마요! 여기 아줌마가 아줌마 말고 누가 있어요!"


아이는 당혹스러워하는 내가 오히려 더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나를 가리키며 확인사살을 했다.


"아, 그... 그래... 아줌마 왜 불렀어?"

"지금 몇 시예요?"

"응? 잘 모르겠는데? 시계가 없어서 말이야."

"휴대폰 없어요? 휴대폰에 시계 있잖아요. 몇 시예요 지금?"

"응 아. 줌. 마. 휴대폰 없어. 집에 두고 왔어. 시간을 모르겠네 아. 줌. 마. 가.... 미안~"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아줌마라고 불린 충격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나는 겨우 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아이에게 괜히 심통을 부렸다. 휴대폰이 어디 있는지 생각할 틈도 없이 휴대폰 없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가 툭 튀어나 버렸다.


아이는 다 큰 어른이 휴대폰도 없이 외출했다는 것을 전혀 믿을 수 없다는 의심쩍은 표정을 나를 쳐다봤지만, 내가 너무 태연하게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하자 "어쩔 수 없죠" 라며 다른 사람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아이가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 나는 재빨리 집으로 돌아왔다. 뭔가 할 일이 있어서 나왔던 나는 그 할 일이 뭐였는지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냥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그런데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나 스스로 참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유모차에 돌이 안된 우리 첫째를 앉혀서 산책 중이었던 것이다. 놀이터에서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하는 엄마. 누가 봐도 명백한 아.줌.마.가 아닌가.


그런데 아줌마라는 말이 뭐라고 그렇게 당황하고 우왕좌왕하다가 그 어린아이에게 휴대폰이 없어서 시간을 모르겠다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까지 했던 걸까.


아이를 낳고 모유수유를 하는 엄마이자 아줌마가 되었지만, 스스로 '아줌마'라는 인식이 전혀 없었던 나는 그날 놀이터에서 만났던 그 아이 덕분에 덕분에 내가 아줌마가 되었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인지하기 시작한 것 같다. 아줌마라는 말이 나쁜 말이 아닌데 아줌마는 억척스럽다는 선입견을 나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타인의 시선으로도 스스로의 인식으로도 아줌마가 된 지 어느덧 10년 차가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아줌마라는 말이 참 어색하다. 그래도 이제 아줌마라고 부르는 꼬마 녀석들에게 대답을 안 해주는 일은 하지 않으니 많이 성숙해졌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니 생각하지 않았던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 아이와 관련된 경이롭고 행복한 경험도 많지만 육아를 하고 회사를 다니면서 상처 받는 경우도 많다. 육아 10년 차이자 초등학교 학부모가 되었지만 아직도 육아는 매 순간 어렵다. 특히 동네에서 엄마 친구가 없는 워킹맘이다 보니 그 고립감에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문득 아직 진행 중이긴 하지만 나의 이 여정을 다른 사람들과 나눈다면 나도 덜 외롭고, 나의 경험이 이제 막 이 길을 걷기 시작한 분들에게 조금은 도움과 위안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막 임신하여 걱정과 설렘이 가득한 분들, 아이 단유는 언제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분들, 기저귀는 언제 어떻게 떼야할지, 어린이집 적응은 어떻게 시켜야 할지 고민하는 분들,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하면서 회사와 육아를 동시에 한다는 것이 정말 가능은 한 것인지 의구심이 드는 분들, 아이만 키우다 보니 정작 나는 없어지는 것아 아닌가 두려운 분들 등 엄마가 되고 아줌마가 되어 열심히 살고 있는 모든 분들과 행복했지만 힘들었고 힘들지만 행복했던 나의 30대 이야기를 차근차근 나누어 보고자 한다. 


오늘도 열심히 아이와 하루를 보내지만 내가 정말 제대로 있는 건지, 잘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하고 있을 모든 엄마들과 예비 엄마들에게 힘이 되길 진심으로 바라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