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시절 집에 내려가는 기차를 타러 가는 날은 정말 하루 종일 설레었었다. 학교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느라 방학 때에도 학교 기숙사에 있었기 때문에 집에는 거의 명절 때나 되야 내려갈 수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지금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KTX나 SRT를 타고 가기 때문에 한 시간 반이면 갈 수 있지만 요금이 3배에 가까운 KTX 비용을 내고 기차를 타기에는 너무 떨렸던 스무 살의 나는 매번 무궁화 기차를 타고 집에 갔었다.
학과 수업에 동아리 활동에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꽉 찬 일정을 소화했던 나는 집으로 가는 기차를 타는 순간 긴장이 풀려 잠이 들곤 했다. 혹시라도 기차역을 지나칠까 하여 내리는 시간 15분 전에 알람을 맞춰놓고 3시간은 푹 잘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달콤한 잠에 빠져 드는데... 그럴 때마다....
꼭 미친듯이 울어대는 아기들이 있었다.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있었고, 의미 없는 계속 소리를 질러대는 아이들도 있었다. 참고, 참고, 또 참아 보지만 아이들은 제자리에 앉을 생각도, 소리 지르는 것을 멈출 생각도 없어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도저히 아이들에게는 뭐라고 할 수 없어서 부모님들은 어디 계시나 살펴보면...
웬걸 그 부모는 당신 아이들이 그렇게 시끄럽게 소리 지르며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들의 잠을 다 깨우고 있는데 그 와중에 코까지 골며 숙면 중이시다.
세상이 이럴 수가...
이런 무식한 부모들을 봤나.
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을 봤나.
이런 예의범절도 없고 공중도덕도 안 지키는 어른을 봤나...
온갖 원망을 다하며 꿍시렁댔었고, 그런 생각은 그 후로도 10년 동안 계속되었다. 내가 아이를 낳기 전까지 말이다.
아이를 낳아보지 않았으면 절대 몰랐을 것들 중에 하나가 자기 아이들이 미친 들이 소리 지르고 떠들고 뛰어다니는데도 태연하게 잠을 자는 무식한 부모들의 정체다.
그들은...
그들은...
사실...
그런 소리 따위 들리지도 않을 만큼 미친 듯이 피곤할 뿐인 것이다.
그렇다, 그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불편함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철면피도 아니고, 아이들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칠 생각이 없는 무식한 부모도 아니다.
그냥 등과 머리를 기댈 수 있는 의자에 앉는 순간 몸이 의자로 녹아들어 가며 눈꺼풀이 감기고 의식이 흐릿해지며 잠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언제 어디서든 잠만잘 수있다면, 선 채로, 눈 뜬채로도 잘 수 있는 저질체력이 되어버린... 극도로 피곤한 엄마 아빠일 뿐인 것이다.
나는 첫째를 낳기 전까지 30년 동안 내가 아침잠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일요일에도 늘 아침 7시 전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했고, 늦잠을 자거나 시간을 허투루 쓰는 사람들은 그냥 게으른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아이를 낳고 모유수유를 하면서 밤에도 숙면을 1시간도 취하지 못하는 생활을 몇 달간 하고 나니, 아침에는 아이가 깨지만 않으면 나도 아이를 않은 채로 9시고 10시고 늦잠을 자게 되었다.
그렇게 자는 아침잠이 얼마나 달콤하던지...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아이가 밤중 기저귀를 완전히 떼기 전까지는 이런 반수면 상태가 몇 년간 계속되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살짝 놓는 순간 혹은 극도로 편안한 의자에 기대는 순간 눈이 감겨버리는 그 현상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나는 기차를 타고 내려가다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불러서 물어본다
"아가, 엄마 어디 계셔?"
역시나 십중팔구 엄마는 민망함도 모르는 채 입까지 벌리고 잠에 빠져들어있다. 그 엄마의 모습에서 불과 몇 년 전의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나는 조용히 아이에게 말한다.
"아가, 이거 줄테니까 자리에 가서 먹고, 또 먹고 싶으면 다시 와. 대신 위험하니까 뛰지는 말고. 그리고, 엄마 피곤하니까 엄마 깨우지 마, 알겠지?"
온라인상에서 맘충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무식하게 민폐를 끼치는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엄마들을 부르는 말이지만, 그렇지 않은 엄마들에게도 그 말은 상처가 된다. 물론 아이를 키운다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갑질을 하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좋은 모범이 되고자 노력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어쨌든 그것도 민폐 아니겠냐는 말도 물론 일리가 있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 중에 한 명이었고, 지금도 늘 조심하려고 하고 있다. 다만 아이를 키우는 일은 생각보다 너무나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고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가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해 좀 더 이해하게 되고, 나만 생각하던 내가 주변 사람들의 사정을 둘러보는 조금은 더 큰 마음을 가지게 된다. 여전히 기차에서 크게 울거나 떠드는 아이들은 나를 힘들게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짜증이나 화보다는 안타까움과 약간의 불편함 정도로 느껴지니 이런 마음의 변화가 결국은 나에게도 좋게 작용하는 셈이다.
아이를 함께 키운다는 생각으로 조금씩 더 이해하고 배려하는 내가 나는 참 좋다. 엄마가 되어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이렇게 진짜 어른이 되어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