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히 물들기

잊지 않으려고 씁니다.

by 임루시아


지난한 여름이 가는 중, 그렇게 가실 것 같지 않던 여름밤의 더위는 점점 고개를 숙이고 있다. 지글거리는 한낮의 아스팔트 열기는 여전하지만 아침 저녁 선선한 바람이 주는 여유가 그래도 숨 고르고 주변을 둘러볼 짬을 만들어 낸다. 내가 내쉬는 숨도 버겁게만 느껴졌던 긴 여름이었다. 그래도 늘 웃으며 지낼 수 있던 긍정의 기운은 나를 행복에 머물게 했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에 기뻐하라는 말에 일희일비했지만 정작 예전만큼 사소한 것에 눈길을 돌리진 못했었다.


오늘 잠시 드라이브를 하며 바라본 차창 밖 풍경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자연의 채색법을 보았다. 내가 유난히 좋아하는 남해의 익숙한 길을 따라 오르며 층층이 펼쳐진 논 뷰가 나를 사색으로 이끌었다. 같은 시기에 심었을 저 벼들도 같은 볕을 쬐고 함께 비를 맞으며 컸지만 또 한편으로 어떤 땅에서 자랐는지 따라 저렇게 계단식 논을 따라 다르게 물들었구나. 하며 내가 살아가며 디디고 있는 많은 것들을 되돌아 볼 기회를 주었다. 언 땅 마른 땅 할 것없이 고르지 못한 땅 위에서 내 생각, 내 마음의 바탕에 따라 내 삶의 주도권이 이쪽에서 또 저쪽으로 옮겨지려 할 때마다 내가 뿌리 내린 곳의 습성을 잘 살피며 하루하루를 지내야겠단 생각이 언뜻 들었다.


가는 여름 아쉽고 아쉬운 마음보다, 단단한 자리에 머물며 나도 예쁘고 가지런하게 물들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지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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