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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Jan 31. 2022

메아리

2021.07.14.





글 이주홍 그림 김동성/ 길벗어린이


돌이에게는 단 하나 사람의 말소리로 대해 주는 동무가 있었다. 그것은 메아리였다.



1. 메아리의 의미

사전에서는 메아리를 ‘울려 퍼져 가던 소리가 산이나 절벽 같은 데에 부딪쳐 되울려오는 소리’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책에서 메아리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누나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을 메아리에 담아 보내니 메아리는 메신저 역할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무엇을  하고 싶었을까? 돌이의 외침을 듣고 나도 얼른 <메아리>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2. 줄거리

돌이의 집은 깊은 산중의 중턱에 있는 이웃도 없는 외딴집이다. 그 집에서 돌이는 아버지, 누나, 새끼를 밴 누렁 암소 한 마리가 함께 살았다. 이웃도 없는 돌이에게 메 아리는 유일한 친구였다. 세 살 때 돌아가신 기억에도 없는 어머니를 대신해 돌이를 살뜰히 보살펴 주던 열다섯 누나는 며칠 전에 고개 너머로 시집을 가고 이제 돌이와 아버지, 누렁 암소만 남았다. 돌이는 누나가 보고 싶어 소를 먹이는 일도, 메아리하고 의 장난도 끊어버리고 울기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돌이는 누나를 찾아 나섰다가 산에서 길을 잃고, 아버지의 애타고 슬픈 목소리가 겨우 돌이를 찾아낸다. 돌이는 아버 지에게 새로 태어난 송아지 이야기를 듣는다. 송아지를 입히고 먹이며 다시 일상을 회복한 돌이는 산마루로 올라가 길게 소리를 지른다. 메아리가 누나 있는 곳에 가서 돌이의 기쁜 마음과 소식을 전해 주길 바라며.

“내 산아----.” “내 산아----.”

“너도 좋니-------?” “너도 좋니-------?”

 


3. 돌이와 아버지

<메아리>  돌이의 삶은 살아가는 때는 다르지만, 희로애락을 겪으며 순환하는 우리 사람들의 인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엄마 대신인 누나가 고개 너머 시집을 가고 혼자 남겨져  죽음 속인 듯했던 돌이의 삶도, 메아리처럼 돌고 돌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으니까 말이다.


돌이의 성장통

돌이가 보기에 ‘이상하게 틀어 쪽찐 머리를 하고 시집을  누나 앞으로 돌이가 만나야 하는 세계와의 이질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같았다. ‘가도 가도  그곳을 돌이 혼자 넘고 넘어 길을 헤매다 돌아오면 송아지로 이어지는 새로운 삶을 만난다. 돌이네 집에서 굽이굽이 고개를 넘어가야만 만날  있는 다른 , 다른 마을, 사람과의 만남 또한 우리가 살면서 숱하게 만나게 되는 고개들일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

횃불을 들고 돌이를 찾아 헤매는 아버지, 돌이가 아버지의 등에서 나는 퀴퀴한 땀냄새를 맡으며 업혀서 집으로 돌아오던 , 어미 소가 갓난 송아지의 등을 핥아주고 있는 모습을 돌이와 아버지가 나란히 서서 흐뭇하게 웃으며 바라보고 있는 모습, 아직 일어서지도 못하는 새끼의 등을 부지런히 핥아주고 있는 모습까지 모두가 돌이의  버지가 묵묵히 돌이에게 주고 있던 사랑의 모습과 닮은 것이었다.

아버지가 외양간 앞에 정화수를  놓고 송아지가  크라고 비는 것도, 아버지가 입던  옷을 송아지에게 입혀준 모습도, 사실은 아버지가 돌이에게   있는 모든 사랑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메아리는 이쪽에서 부르면 저쪽에서 대답한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이쪽에서 부르면 저쪽에 닿기까지 너무 멀어 대답이 더딜지도 모른다. 돌이의 메아리 역시 누나가 떠나고 송아지가 오기까지 공백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언젠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는가.



4. <메아리> 아이와 함께 읽은 

아이와 함께 <메아리> 읽고 나서, 아이는 자기도 산에 가면 야호-하고 싶다고 했다. 자기 목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그렇게 불러서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것이다. 아이의 말을 듣고 나는, 메아리를 통해 듣는  목소리가 ‘ 이렇게 무사히 살아있습니다.’라는 말의 방증이 아닐까 얼핏 생각했다. 누나에게  소식이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과 동시에, 사실은 나도 이제 온전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울림을 자신에게도 전한 것은 아니었을까. 누나가 시집가고  얼마까지도 유일한 친구라  렀던 메아리와 만나는 일이 없다가 이제 겨우 추스르고 새롭게 시작하는 때에 울리는 목소리니까 말이다.

나도 어릴  잠깐 시골살이를  적이 있다. 하루에 차가 겨우 두어  다니고, 생선 파는 아주머니가 광주리를 이고 다니던. 요구르트 하나 살라치면 털털거리는 경운기를 타고 멀리 나가야 하던 산골이었다. 돌이의 산골 집을 보면서, 그만큼은 아니지  즐거웠던  유년 시절 한편을 떠올릴  있어 잠시나마 행복했다. 방학 때면  티나무 아래 누워 매미 소리를 들으며 부리던 여유를 지금  아이는 상상이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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