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앙 폭포
원앙폭포/72.5x60cm /한지에 채색/2016 by.루씨쏜
제주엔 수많은 폭포가 있다. 어쩐지 틀에 박힌 여행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폭포나 동굴에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라오스의 블루 라군 호수를 동경하던 내게 아주 우연히 본 파란 빛깔의 원앙 폭포 사진 한 장은 나를 흔들어 놓기 충분했다. 정수리 꼭지까지 태양빛이 파고드는 무더운 어느 여름날 정오, 시원한 폭포가 보고 싶어 원앙 폭포로 향하였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원앙 폭포가 있었다. 길을 잘 닦아놓은 다른 폭포들과 달리 원앙 폭포로 가는 길은 완만하지 않았다. 마치 소중한 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듯이. 깊고 깊은 숲을 걷고 또 걸었다. 시원하려고 왔는데 더 덥다며 투덜댄다. 아찔하게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자 우거진 녹색 수풀 사이로 시원한 물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마침내 눈에 들어오는 원앙 폭포. 폭포 물이 바다 빛깔 같을 수 있다는 걸 원앙 폭포를 보고 처음 알았다. 투명한 에메랄드빛의 계곡물, 그리고 그 옆을 잔잔하게 흐르는 두 개의 폭포가 보였다. 그래서 원앙 폭포라 불렸나 보다. 그 귀여운 이름에 미소가 물의 파문처럼 조용히 번진다. 세계 3대 폭포인 아프리카의 거대 폭포 빅토리아 폭포를 본 적이 있다. 폭포는 두 국경을 걸칠 만큼 컸고 우리와의 거리는 멀었지만 그 물방울은 온몸을
적실 정도로 억수처럼 쏟아졌다. 소리는 우레처럼 컸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우리는 숙연해졌다.
그것에 비하면 원앙 폭포는 폭포라고 불리기도 어려울 만큼 작디작은 폭포이다. 원앙 폭포는 사이좋은
두 개의 물줄기가 나란히 그리고 고요하게 떨어져 잔잔하게 흐르는, 작지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소박한 폭포다. 그 모습이 어찌나 다정 한지 허덕였던 숨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마음이 편안하다는 건 참 소중하다.
한국이 지겨웠고 늘 새로움을 동경하였다. 그 무언가를 찾아 세계 여러 곳을 누비고 다녔다. 그러다 호주에서 남편을 만났다. 우린 결혼을 하였고 나의 이민 생활은 시작되었다. 어마어마한 대자연을 보았고 수많은 나라의 사람들을 만났다. 행복하고 놀라운 경험들이었지만 어쩐지 편하지만은 않았다. 살기 좋은 호주에 살아서 좋겠다 부럽다 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그곳에서 우리는 늘 이방인이었다.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과 낯섦은 우리의 유일한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우리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누구의 고향도 아닌 제주로 향했다. 거창하거나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제주에선 왠지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천성이 즉흥적이고 죽이 잘 맞는 우리 부부는 그냥 그렇게 제주로 향했다. 이민 가방만 들고 도착한 제주의 첫인상은 낯선 곳이라는 어색함보다는 그저 따뜻했다. 그것이 서울보다 높은 기온 때문일 수도 공항에서 마주한 야자수나 돌하르방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 따뜻함은 곧 편안함으로 다가왔고 우리는 이내 안도하였다.
나의 나라에 돌아왔구나. 그것도 제주에 와 있구나. 여행지의 호텔이 좋지만
지저분한 내방이 더 편한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돌고 돌아 다시 돌아온 이곳에서 알게 되었다.
소중한 것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단 걸.
하늘이 푸른빛을 계곡물에 모두 양보하고 나면 핑크 빛 노을이 하늘에 스민다. 다정한 원앙 폭포엔 혼자인 이가 없다. 새도 고양이도 사슴도 모두 짝꿍이 있다. 공항에서 나를 맞아 반갑게 안아주는 가족처럼 원앙 폭포는 내게 조용한 소리로 환영한다 속삭이고는 그 아름다운 빛깔로 지친 우리를 따스히 안아주었다.
나는 떠날 때부터 다시 돌아올 걸 알았지
눈에 익은 이 자리 편히 쉴 수 있는 곳
많은 것을 찾아서 멀리만 떠났지
난 어디서 있었는지
하늘 높이 날아서 별을 안고 싶어
소중한 건 모두 잊고 산 건 아니었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그대 그늘에서 지친 마음 아물게 해
소중한 건 옆에 있다고
먼 길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했으면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가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