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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Aug 06. 2022

비평은 언제나 조심스러운 것

영화 <비상선언>의 비평에 대한 논쟁에 대하여


최근 개봉한 영화 #비상선언 에 대한 #이동진 평론가의 리뷰 영상을 내리도록 요청한 제작사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나도 한마디 보태본다면.


마침 휴가였고 어마어마한 게스트에 혹해서 엄마를 모시고 <비상선언> 개봉 첫 날, 극장을 방문했다.

영화 초반은 꽤나 흥미로웠다. 임시완이 연기하는 테러리스트 진석이 등장하는 내내 긴장감이 넘쳤고 기대를 가지게 했는데, 막상 뒤로 갈 수록 갸우뚱하게 되는 부분이 많았다. 눈물이 많은 나는 보면서 울었지만 뭔가 모르게 불편했는데, 이동진 평론가의 리뷰 캡쳐를 보고 나서 무릎을 탁 쳤다. 그 찜찜함이란 것이, 이 영화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내겐 너무 폭력적이었기 때문이었구나 싶었다. 엄마는 너무 나이브한 전개라고 평했고, 설득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우는 나를 의아해할 정도... ㅋ 또, 너무 좋은 배우들이 연기를 할 시간과 공간을 충분히 주지 않은 기분이었다. 각각 역할을 맡았지만 그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설명만 하고 영화가 끝난 기분이었달까.


많은 사람이 수고한 영화에 대해서 평가를 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다. 어마어마한 예산이 들고, 어마어마한 사람들의 수고가 한편의 영화에 담겨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치만 예산과 수고에만 방점이 찍히면 어떠한 평가도 불가하다. 영화의 평가는 그 수고에 대한 평가이기 보다 영화를 통해 전하고자 한 메세지와 그 메세지를 표현하는 방식에 대한 관객과 비평가의 이해의 노력이다. 날이 갈수록 비싸지는 관람료와(참고로? 박진감을 느끼고자 나 역시 스크린X로 관람했다) 휴가 중 일부의 시간을 내어 극장을 찾는다는 것은, 타인의 시간을 온전히 점유한다는 것, 그 시간을 내어주기로 선택한 관객에게는 평가할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박찬욱 감독의 어느 인터뷰에서의 한토막이 기억난다. 한국 관객들은 만족시키기 어려운 관객이라고. 그만큼 좋은 작품에 대한 욕구와 요구가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결국 그런 욕구와 요구가 감독들로 하여금, 제작사들로 하여금 더 좋은 작품을 만들게 하는 동력과 동기가 되는 것같다.


이번 논쟁을 보며, 내가 겪었던 지난 경험이 하나 떠올랐다. 평소에 미술관가는 것을 즐겨하는데, 오랫동안 기다린 전시가 하나 있었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작가의 작품전이었고, 국내에 처음들어오는 전시여서 손 꼽아 기다렸다. 관심을 가지다 보니, 우연히 VIP티켓까지 얻을 수 있게 되어 주말을 할애해 한껏 들뜬 마음으로 전시장을 방문했다. 너무 기대하면 실망도 큰 법이라, 내가 기대했던 방향과 너무 다른 방식의 전시 구성과 설명들에 작품의 여백과 의미에 도달하기 어렵다고 느꼈다. 그런 기대와 실망을 담아 인스타그램에 제법 긴 비평을 전시 태그와 함께 남겼다.


어느날, 해당 기획사의 대표가 아주 아주 정중한 글로 우리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당신은 다음엔 우리가 기획하는 전시를 피해는게 좋겠다는 댓글을 달았다.  댓글을 읽고  읽었다.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았고 상처를 받았다. 그리고 나름의 사과의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아직도 내게  정중한 글은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관객에게, 초대권이긴 했으나, 과로로 피곤한 시즌임에도 집에서 꽤나  거리를 운전해서 전시를 관람하고 돌아가며 속상해하는 관객에게, 설령  평가가 야속했다 해도, 다신 우리 전시를 보러오지 말라는 말을 하는 기획사의 대표의 태도가 너무 두려웠다.  자신이 너무 작게 느껴진 기분이었다. 기획사와 대표의 이름을 밝히고 싶지만 참기로 한다.


내 진실한 감정이나 생각을 남기고 교환하기 위해 사용하는 SNS에 자기검열이 잔뜩 된 글을 올리는 건 아무래도 편하지 않다. 나 역시 기회가 주어져 지면에 글을 기고할 때는 사실 좀 더 신중한 편이다. 되도록 좋았던 점 위주로 적고, 기획의 노고에 더 무게를 준다. 혹시라도 내 짧은 소견이 영향을 줄까봐서이다. 기고하는 매체의 격을 고려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하지만 내 개인계정까지 검열한다는 것은 너무 슬프다.


게다가 이럴 줄 모른 터라, 언제 또 전시가 오겠나 싶어 굿즈도 구매했던 나를 탓했다. 그들 기획사의 전시를 찾아보니, 이전에 내가 좋아했던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었고, 일반적으로 전시를 고를 때 기획사를 보고 걸러보지는 않아서 그 기획사의 전시를 또 보고는 속상해한적도 있었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비평이 너무 두려워졌다. 식당에 별점을 줄 때 조차, 배달앱의 식당들을 평가할 때 조차 평가하기를 주저하게 되었다. 좋을 때, 맛있을 때는 여과없이 좋은 댓글을 달지만, 만족스럽지 않을 때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 습관이 들었다. 다신 같은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럼에도 다른 이들이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평가해주는 이들을 여전히 참고하는 나 자신이 이율배반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타인의 노력을 허무는 태도는 분명 문제지만, 여전히 비평과 평가의 영역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도 분명 필요한 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비평이 두렵다. 가장 좋은 글은 시의적절한 글이라길래 몇자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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