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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Feb 23. 2016

잃어버린 꽃 향기를 찾아서

장진 연출, <꽃의 비밀>


장진 연출의 연극 <꽃의 비밀>이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3월 11일부터 앙코르 공연을 시작한다. 하여 지난 기고 리뷰를 다시 공유해 본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로 유명한 장 진 감독은 95년 희곡 <천호동 구사거리>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데뷔했다. 그 후로도 <허탕>, <택시 드리벌> 등의 희곡을 무대에 올린 연극인이다. 그로부터 13년 만에 코미디 신작 <꽃의 비밀>을 무대에 올렸는데, 이 연극, 일단 재미있다. 


이태리 북서부 빌 라페로 사에 사는 네 명의 여인, 소피아, 재스민, 모니카, 지나는 전형적인 이태리 북서부 남편을 둔 여인네다. 전형적인 이태리 북서부 남편이란 대개는 가정에 무심하고 가부장적이고 거친 남성임을 연극이 시작하면 금방 알아챌 수 있다. 왕언니 소피아는 “어디 가면 간다, 오면 온다 보고하는 남편은 없다고, 부인에게 전화하는 남편은 존재하지 않는다.” 외치는 동네 최고(古) 언니다. 재스민은 부부관계에 만족하지 못하나 큰 소리 한 번 못 치고 오로지 술에 의지해 사는 동네 주당이다. 모니카는 한때 무대에서 스탈린을 연기한 적이 있지만 이제는 빵 굽기에 열심인 동네 미모 담당. 지나는 공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인재이나 지금은 와인농장을 도맡아서 일하느라 자신을 돌볼 틈이 없는 열혈 농사꾼이다. 


밀란과 유벤투스의 경기가 있는 어느 날 남편들은 모두 축구장으로 떠나고 여인네들은 한자리에 모인다. 그리고 그들 남편이 축구장을 가는 도중 사고(?)에 의해 모두 벼랑으로 떨어져 죽어버렸음을 알게 된다. 그녀들은 잠시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더니 각자의 사연을 끄집어낸다. 누군가는 욱하는 남편에게 매를 맞은 전적이 있고 누군가는 남편의 바람으로 낳은 아이를 평생 길렀으며 누군가는 남편이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릴 준비를 하고 있다는 각자의 비밀을 공유한다. 그리고 그녀들의 사연은 보상받아야만 한다고 결의한다. 다음날이면 남편의 건강보험계약을 완료하는 마지막 왕진 날! 네 명의 여인들은 각자의 남편을 연기해 20만 유로의 보험금을 타내기로 결심한다. 


저마다 꽃다운 시절을 살았을 소피아, 재스민, 모니카, 지나. 그녀들은 각자 꿈이 있었고 그 꿈에서는 향기가 났을 것이다. 작품은 향기가 나지 않는 꽃이 있다고,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고 설명한다. 연극을 들여다보니 소피아, 재스민, 모니카, 지나라는 꽃은 향기가 나지 않는  꽃이라기보다는 향기를 잃어버린 꽃이다. 그리고 잃어버린 향기를 보상받기 위해 그들의 비밀을 공유하고 허물을 덮어주며 연대한다. 


연출은 이탈리아 북서부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극을 썼지만 굳이 이탈리아라는 배경을 강조하지 않는다면, 경기도 아니면 강원도 어느 작은 동네 여인들의 이야기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들 사연들에 집중해 한참을 웃다 보면 마음 한구석이 조금 퍽퍽해진다. 어쩌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인들의 삶을 팍팍하게 하는 남편들은 언제나 존재하며 그 모양새는 어찌도 이리 유사한 것인지. 전형적인 못난 남편들의 모습과 그들에 대처하는 여인들의 모습 속에 관객들은 웃음을 발견하고 함께 웃고 또 웃는다. 그 웃음은 배우들이 마치 자기 자신을 보여주는 듯 딱 맞는 옷을 입고 각자의 배역을 연기하는 모습 속에서, 적절한 무대 활용과 조명, 그리고 적시에 웃음의 코드를 잡아내어 함께 웃는 관객들에 의해서 계속 이어진다. 


여인들 각자의 사연은  하나하나 뜯어보면 격분하고 슬픔에 차야 마땅하나 이 여인들은 함께 나누고 웃으며 자신들의 삶을 이어가는 것을 택한다. 미우나 고우나, 그럼에도 그들을 감싸 안고 살기를 택하는 빌 라페로 사 여인들의 모습에 웃음과 연민이 함께 샘솟는다. 연극은 해결책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으로, 함께 웃는 것으로 만족한다. 남편들의 이름을 이곳에 적지 않는 것으로 나는 무심하게 그녀들에게 상처 낸 남편들에 작은 복수를 전한다. 가정이라는 것이 남편에 의해서, 아내에 의해서, 부모와 자녀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것은 얼마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인가, 하지만 그런 자연스럽고 당연한 영향력이 서로의 삶을 삼켜버리지는 못하게 해야지 하는 마음을 웃음이 지우지 못하도록 꼭 붙잡았다. 


네 여인네들의 완벽 호흡은 물론이지만 이외에도 왕진 온 의사 카를로와 간호사 산드라도 엄청난 웃음 유발자들이다. 꼭 맞는 캐스팅과 무대 연출, 그리고 탄탄한 웃음 요소가 가득한 <꽃의 비밀>은 부부와 오래된 연인이 함께 보면 한바탕 웃고 나와 생각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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