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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Feb 23. 2016

Come and See  me!

김광림 연출, <날 보러 와요>

올해로 20주년을 맞는 연극 <날 보러 와요> 가 지난 21일을 막을 내렸다.  앞으로 3월부터 4월까지 청주와 경주 주 등지에서 만나 볼 수 있단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 추리극 <날 보러 와요>는 1996년 2월 초연으로부터 만 20주년을 맞이했다. 20주년을 기념하여 초연 당시의 배우와 스텝들이 다시 뭉쳤다.


연극은 실제 1986년부터 90년까지 10차례의 끔찍한 살해가 이어진 화성의 연쇄살인사건을 바탕으로, 범인을 잡기 위해 용의자들과 씨름하는 형사들과 수사 현장을 통해 진실을 마주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전한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그 소리, 우거진 갈대숲, 어지러운 수사 현장이 무대 위에 재현된다. 서울에서 사건을 위해 자원하여 발령을 받은 김 반장, 시인 지망생 엘리트 김 형사, 화성 토박이이자 땅 꽤나 있다는 박 형사, 그리고 무술 유단자 조 형사는 용의 선상에 오른 세 명의 인물을 취조한다. 정신이상자에 관음증까지 있는 이영철, 술김에 살해를 했다는데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남현태, 사건이 있을 때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신청한 정인규가 용의 선상에 선다.



단 한 명의 배우가 세 명의 용의자를 모두 연기하는데, 이로써 형사들은 물론, 관객들 역시 용의자를 혼동하며 진짜 범인을 가리는 일이 얼마나 모호하고 불투명한 것인지 체험한다. 취조와 수사의 과정은 때론 지난해 보이며, 때론 공격적이다. 용의자들의 야릇하면서도 오묘한 진술은 웃음을 유발한다. 무대 위의 언어들이 점점 거칠어지고, 거친 언어와 언어 사이의 공백이 길어질 때, 관객은 그토록 잡기를 소원하는 범인이라는 존재가 정말 이들 사이에 있는 것인지, 과연 잡을 수 있는 것인지 엎치락뒤치락하며 불안과 긴장을 느낀다. (물론 우리는 범인이 잡히지 않았음을 이미 알고 있지만 말이다.)



초연 당시의 관객과 평단의 호평, 유수의 수상경력, 초연부터 함께한 이대연, 손종학, 권해효, 유연수, 김뢰하, 류태호, 황석정 등 쟁쟁한 배우들의 연기, 20년의 세월 동안 끊임없이 이어진 대본에 대한 분석과 이해, 작품을 보다 완벽하게 하기 위한 지속적인 보완 작업이 연극 <날 보러 와요>의 작품성을 담보한다.


지난 사건이 끊임없이 현재로 불려 나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사건으로 부터는 30년, 연극의 첫 무대로 부터도 20년이 지난 영구미제사건을 계속해서 현재로 끌어오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수사 환경은 급속도로 발전했고 사람들도 더 많이 알고 더 많은 방법을 제시하지만, 진실은 여전히 도달하기 어려운 곳에 있다. 사람들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분탕질을 한다. 분탕질이 심하면 심할수록 시야는 더 흐려지고 앞이 보이지 않는 것만 같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연극의 소재가 된 것은 우연의 산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사건이 무대와 스크린으로 계속해서 호출되는 것은 진실이 진실로 명확하지 않을 때에 대한 불안과 모호함, 그것을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한 사람들의 끊임없는 분투가 인간의 한 속성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분탕질이 심해서 시야가 가려질지언정 분탕질 가운데 전진하며 우연과 깨달음의 축복을 얻기도 하니 말이다. 그리고 종국에는 분투의 반복이, 진실에 대한 욕망이 해방을 선물로 얻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건은 미제로 종결되었지만 연극은 계속해서 30년 전 범인을 호출한다. 진실을 드러내라고, 여기에 와 당신이 저지른 일을 보라고 말이다.   



연극의 제목이 <날 보러 와요>가 된 것은 관객들에게 연극을 보러 오라는 권유와 더불어, 범인에게 공연을 보러 와 진실을 알리라는 메시지가 담겼다고 한다. 아마도 연극 <날 보러 와요>는 우리가 그 진실에 닿게 되는 그날까지 앞으로 10년, 20년, 50년  계속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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