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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Jun 04. 2024

모든 과거는 아름답지

셀린 송, 패스트 라이브즈, 2023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는 뉴욕의 한 바에 있는 세 사람을 비추며 시작합니다. 이들을 지켜보는 두 사람이 이들의 관계를 추측합니다. 이들이 어떤 관계 같은지, 누가 연인일지 누가 친구일지를 말이죠. 


이하 이미지 출처 : 와챠피디아 https://pedia.watcha.com/ko-KR/contents/mWLy3o0


해성과 나영은 서로가 12살일 때 첫사랑입니다. 나영은 부모님을 따라 캐나다로 떠났고 페이스북으로 한창 친구찾기를 하던 24살 그들은 그렇게 우연히? 다시 온라인상에서 만납니다. 멋있게 성장한 그들은 밤을 새며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에게 더 흠뻑 빠지지만 그들의 여건이, 그들 사이의 거리가 그들을 점점 지치게 합니다. 시차로 인한 피로함, 필요할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해 느끼는 외로움, 그럴 수록 더욱 애절해지는 마음이 점점 견딜 수 없어집니다. 그렇게 서로 각자의 시간을 갖기로 한 이들은 서로와는 무관한 각자의 삶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그들은 이제 각각 새롭게 만난 인연들, 곁을 지켜줄 수 있는, 마주보고 대화할 수 있는 지금 이순간 한 공간에 있는 사랑과 일에 집중하며 각자의 삶을 일구어갑니다. 결혼을 앞둔 해성은 문득 여름휴가로 뉴욕에 날아가 나영을 보기로 다짐합니다. 그렇게 뉴욕에서 24년만에 마침내 해성과 나영은 만나게 됩니다. 이제 나영 곁에는 그녀의 남편 아서가 있습니다.



해성에게 나영은 언제나 떠나는 사람이었습니다. 12살 마음을 미처 다 키워보지도 못했는데 그녀는 훌쩍 먼나라로 가버렸고, 24살 갑자기 이별을 통보한 것도 나영입니다. 그래고 36살에 다시 만났을 때, 해성은 여전히 그녀는 먼 곳에 있는 자신이 함께 할 수 없는 존재 같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언제나 그리운 닿을 수 없는 사람.  


나영에게 해성은 12살에 자신을 먼저 좋아해준, 내가 울때마다 내 곁에서 지켜봐주던 친구이고, 24살에도 나영을 먼저 찾으려 해준, 그리고 자신이 흠뻑 빠졌던 친구이지만 그를 향한 마음이 너무 크고 괴로워서, 그것보다는 나 자신을 나의 꿈이 더 간절해서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사람입니다. 결혼 즈음 서울에서 그를 한번 보고 싶었지만 결국엔 보지 못했죠. 어느 여름 그가 불쑥 뉴욕에 온다는데 조금은 설레는 마음입니다. 


아서의 입장에서는 문득 자신의 부인 노라를 찾아온 해성이 부담스럽기만 합니다. 누구나 내가 나의 짝꿍에게는 운명의 상대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어긋나기만 했던 부인의 첫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이 뉴욕에 온다니 마치 방해꾼이 된 기분입니다.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아서와 나영은 어느 밤 둘이 나란히 누워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영과 해성이고, 그 둘의 사랑이야기에서 자신은 둘을 갈라놓는 사악한 남편 역할인거냐며 우수개 소리를 하지만 그 농담 속에 그의 불안이 녹아 있습니다. 늘 한국어로만 꿈을 꾸는 자신의 아내를 보며, 자신이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있는 사랑하는 이를 보며, 온전히 그녀를 다 알 수 없는 것 같은 두려움이 늘 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사랑이야기가 그저 시시한 이야기일까봐, 꼭 내가 아니었어도 그 자리에 있는 누군가가 너의 짝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


나영은 알맞은 때에 알맞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것이 인연임을 말합니다. '당신은 나를 알잖아,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라 고백하며 아서의 마음을 다독입니다. 



나영과 해성은 뉴욕의 곳곳을 함께 둘러보며 못다한 시간을 함께 보냅니다. 그리고 아서와 세사람이 함께 만나 처음의 그 바 장면으로 돌아옵니다. 그들 사이에 대화가 오가고 아서는 해성에게 와주어서 고맙다고 이야기 합니다. 해성은 아서를 보며 좋은 사람과 함께 있는 나영이라 다행이라 여깁니다.


이제 다시 해성은 한국으로 떠나야 합니다. 콜택시를 부르고 택시를 기다리며 그들은 다음 생엔 스치지 말고 인연으로 만나자고 이야기 합니다. 그렇게 해성을 보내고 나영은 돌아와 아서의 품에서 눈물을 펑펑 쏟아냅니다. 


나영의 눈물에 함께 본 친구들의 마음은 술렁였습니다. 아서를 가여워하는 마음들. 아서는 확실히 멋있는 남자입니다. 나영의 눈물은 아마도 24년을 묵혀둔 감정과 작별하는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혹 선택하지 않은 삶에 대한 아쉬움일지라도 그것은 그것이 더 나은 삶이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버리고 무언가를 얻는 삶이라는 여정의 아픔으로 인한 눈물일 것입니다. 


필름 카메라로 촬영했다는 이 영화는 그래서인지 화면의 색감이 바랜듯 아날로그 향이 물씬 납니다. 주인공들의 독백 사이로 도시를 비춰주고 비오는 도시의 풍경, 물웅덩이, 물에 비친 도시의 어른거리는 모습들을 비춥니다. 의도적으로 삐뚤어진 화면들도 곳곳에 보입니다. 그 삐뚤어진 화면은 나영이 아서에게 돌아와 펑펑 울때 수평을 되찾는데, 무언가 이제 꿈에서 깨어 현실로 돌아온 것 같은 안정감을 줍니다.




스펙타클하고 시각효과가 뛰어난 웅장한 영화가 익숙한 우리에게, 모처럼 찾아온 사랑이야기라 마음이 더 말랑했졌습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담담히 담아내는 단순한 구조임에도, 화면의 색감과 분위기가 형언하기 어려운연애의 감정들을 되살려냅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던 감정들이지만 굳이 꺼내보지 않고 미루어둔, 잊혀질 뻔한 그런 소중한 기억들과 감성을 두드려 주는 영화였습니다.


- 자원봉사 봉씨네 멤버들과 함께 본 영화 <패스트라이브즈> 후기로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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