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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품쟁이 May 14. 2020

[2화] 얼마나 줄 수 있는데요?

송혜교가 아니어서 미안하다 

처음 일 시작했을 땐 '시켜만 주시면'이었다. 내가 얼마 받는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방송작가아카데미 다닐 때 많이 들었던 말이 "너네는 돈 받으면서 일도 배우니 얼마나 좋냐 고맙게 생각해라" 였기 때문이었다. 뭐, 예를 들자면 삐약삐약 햇병아리가 키워주는 사람한테 "내 사료 얼마짜리임?" 그러면 안 된다는 거였다. 말 잘 듣는 병아리였던 나는 질문하지 않았고, 한달 후 통장에 찍힌 숫자로 내 월급을 알게 됐다. 반올림해서 최저임금이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나도 참 바보였지만 그 말도 헛소리다. 일을 하면 돈을 받는 건 당연한 거다. 그건 고마워해야할게 아니라 요구해야할 권리다. 심지어 최저임금을 배우는 값으로 퉁치는건 좀 아니지 않나. 그런 말 하는 선배님들, 후배한테 공짜로 가르쳐주시나요? 우리 다 같이 일하는 거잖아요. (라떼이즈홀스는 하지 맙시다)


엄혹했던 막내시절을 지나자 연차에 따라 돈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오예! 조금씩이어도 오르긴 오르니까 일할 맛 났다. 신난 김에 투잡도 뛰었다. 나는야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프리랜서니까. 말그대로 프리하게 더 뛰어볼까? 쓰리잡도 뛰었다. 통장이 아이 신나! 외쳤다. 어이구, 그동안 많이 배고팠지? 많이 먹어. 


청약도 들고 적금도 들고 엄마아빠한테 소소한 효녀놀이도 했다. 아, 이제 나도 사람답게 사는구나, 평범한 삶이란 이런 건가? 이런 웃기지도 않은 생각을 했던 거 같다. 결혼생각은 없는데 나 혼자 살 수 있을까? 이런 쓸데없는 걱정도 했던 거 같다. 여튼 세상은 희망차고 내 일자리는 무궁무진하고 나는 프리하게 뛰어다니고 내 통장은 둠칫둠칫 춤추고,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철딱서니 없는 나는 배떼기 부른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얼마 주실 건데요?" 


프리하게 시작한건 프리하게 끝날 수 있다는 걸 그땐 몰랐다. 하고 싶은 프로만 하고 관심 없으면 안 하는 '있어 보이는' 작가 생활은 길지 않았다. 연차가 두자리 수를 넘기자 슬슬 자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프로에 따라 메인도 서브도 할 수 있는 연차까진 그래도 자리가 많았다. 하지만 일년 또 일년이 지날수록 관리메인 자리만 남기 시작했다. 20년차 선배들도 이미 포화상태인데 나 따윈 갈 데 있음 다행이었다. 게다가 전처럼 돈이 오르지도 않았다. 일정 연차 이상이 되면 페이가 멈춘다. 상한선이 유리천장처럼 있다는 거다. 방송국놈들은 정규직 피디 연봉은 따박따박 올려주면서 작가는 어지간해선 올려주지 않는다. 어떻게든 깎으려하는데, 서럽지만 아쉬운 건 나고 절실한 것도 나다. 배떼기 고픈 나는 슬픈 눈으로 묻는다. "얼마나 주실 수 있는데요?" 내가 송혜교였다면 "저... 돈 필요해요..."까지 했을 거다. 아아... 아무리 예뻐도 송혜교는 되지 말자...  

 

가끔 생각해본다. 삐약삐약 햇병아리 시절, "나 닭 안될 거임!" 하며 양계장을 뛰쳐나갔다면? 그랬다면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송혜교 말고 원빈이 될 수 있었을까. "얼마면 돼? 얼마면 되겠어!" 폼나는 재벌2세가 되......려면 다시 태어나야겠구나... 계란후라이나 해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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