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주도의 한식세계화, 과연 옳은 방향인가?
(2014년 작성)
이명박 정부 당시 '영부인 프로젝트'라고도 불리는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주관한 '한식세계화 사업'은 현재 실패한 사업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식세계화 사업에 들어간 예산은 2012년 233억 5000만 원, 2013년 150억 8000만 원에 달했다. 이 사업은 지난 5년간 1천억 원, 사업추진을 위해 설립한 한식재단은 지난 4년간 400억 원의 막대한 예산을 집행했으나 그들이 남긴 결과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사업에서 홍보비율이 50%에 육박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 없는 단발적 홍보 및 전시행정, 그리고 방만한 운영과 각종 비리로 얼룩진 총체적 부실 사업이라는 냉혹한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국가주도의 한식세계화 정책은 한식의 세계화라는 목표가 식문화 그 자체의 확산 보다 경제적 이익창출에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한식세계화 공식홈페이지를 보면 정부는 세계 식품시장에서의 성장가능성을 논하며 한식의 사업화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자칫 한식자체의 고유한 가치를 알린다는 본질적인 목적을 망각하고 한식세계화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치부하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물론, 성공적인 한식세계화를 통해 경제적 수익을 얻고자 함은 지극히 납득할만한 태도이다. 그러나 우리가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한식이라는 식문화를 알리기 위해서는 음식은 상품이기 전에 문화임을 알아야 한다. 상품에 우열판단은 있어도 문화에 우열판단은 없다. 고로 음식은 경제적 가치에 앞서 문화로서의 가치를 존중받아야 함을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한식세계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하지, 경제적 이익을 위한 수단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세계화를 외치는 사업주체 즉, 정부는 음식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통찰이 현저히 부족하다. 한 예로 세계화하고자 하는 음식에 있어서 지나치게 정통성을 강조하는 경향을 들 수 있다. 사실 된장, 고추장 등 맵고 짠 자극적인 식자재가 주로 사용되는 한식의 특성상 보편적 시각으로 세계화하기에 용이하다고는 보기 힘들다. 즉, 발효의 미학으로 정의되는 한식이 세계인의 보편적인 입맛에 크게 벗어나는 독특한 특징을 가진 것이다. 미각은 오감 중 가장 보수적인 기관이다. 이처럼 세계인의 기준에 상당히 어렵게 받아들여지는 한식을 원형의 형태로 고집하는 상황에서 10년도 못 되는 짧은 기간에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겠다는 포부는 비현실적이다. 한국의 위상 상승, 한류열풍을 통해 이미 많은 문화가 세계로 퍼졌지만 음식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김치, 비빔밥에 그치는 사실이 이를 대변한다. 더욱이 그나마도 아직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고 말하기는 무리인 실정이다. 우리에게 비빔밥은 영양가가 풍부하고 음양오행이 깃든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음식이지만, 세계인에게는 단지 여러 가지 채소에 맵디 매운 한국식 소스가 듬뿍 얹어진 밥에 지나지 않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화된 여러 음식들을 살펴보면, 음식 그 자체로서 사랑받아 널리 퍼진 것이지, 국가가 직접 개입해 세계화를 이룩한 경우는 전례가 없다. 또한 세계화된 음식들을 보유한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 여러 국가들은 전통적으로 자국 식문화의 가치에 대한 고찰과 요식업계에 대한 대우가 유독 남다르다는 사실을 반드시 인지해야 한다. 뿌리 없이는 열매 또한 있을 수 없다. 음식은 상품이기 전 문화이기에 안에서 존중받은 후에야 타인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내년에도 이 사업에 올해와 같은 규모의 예산 배정을 요구하며 한식세계화를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사업 등 한식세계화의 직접적인 경로는 정부가 아닌 민간 기업이 맡는 것이 비용대비 효과적이다. 한식세계화에 있어서 국가의 역할은 요식업계 전반에 관한 사회적 대우 개선 등 내수산업의 잠재력인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즉, 국가는 민간기업이 한식세계화라는 열매를 수확할 수 있도록 한식이라는 토양에 내수산업이라는 튼튼한 뿌리를 제공함으로써 그 목표에 충실히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글은 정확히 10년 전, 대학교 4학년 졸업반 시절 술 마시느라 재수강했던 작문 수업에서 냈던 과제다. 일부러 단 한 글자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올렸다. 최선을 다해 진지하려 했을 텐데도, 새어 나오는 어설픔과 미숙함은 어쩔 수 없는 법인가 보다.
지난 10년간, 경영대 학생이었던 나는 졸업 후 뜬금없이 국제선 승무원으로 일하며 전 세계를 여행(?)했고, 이후 세계 미식의 흐름을 주도하는 스페인(페루를 위시한 남미가 패권을 슬슬 가져가고 있으며 앞으로는 아시아권으로 넘어갈 것이라 예상한다.)에서 새롭게 요리를 전공으로 컬리지와 석사를 마쳤다.
지난 10년간 한국은 유튜브와 비트코인 열풍을 겪었다. 이제는 말하기도 진부한 BTS와 기생충 오스카 작품상 수상 등에서 보듯 한국의 위상은 특히 문화, 콘텐츠 분야에서 절정에 올랐다. 동시에 한국은 국가 소멸위기의 역사에 없던 저출산율을 기록함과 동시에 MZ라는 신인류를 배출했다.
10년 새 나도 한국도, 천지가 개벽하는 변화를 겪었다.
한식도 마찬가지로 산업적, 문화적으로 큰 변화의 바람을 겪었다. 이제 식당에서 우리는 태블릿으로 주문을 하고 가끔은 로봇이 서빙까지 하는 풍경에 익숙하다. 무엇보다, 스페인 가기 전 한 그릇 6000원 하던 단골집 순댓국이 두 배가 뛰었다. 파인다이닝 영역에 관해서는 언젠가 한국에 미슐랭 가이드가 들어오더니, 몇 년이 지난 작년 드디어 사건이 터졌다. 바로 뉴욕의 아토믹스가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전 세계 8위에 성큼 오른 일이다. 게다가 제임스 비어드 상까지 수상했다. (세계 미식 씬에서 기생충이 오스카 작품상 받은 것과 똑같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해당 분야를 공부한 입장으로써 가슴이 웅장해지는, 너무나 뿌듯한 성취가 아닐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의 언론들은 이 소식에 다시 "한식 세계화" 타이틀을 빼놓지 않고 기사를 써댔다.
이처럼 10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는 동안, 한식은 다양한 방면에서 몇 개의 문장으로 요약할 수 없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런데, 그 한식을 바라보던 나도 그만큼 많이 변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묻고 싶다. 10년 전 치기 어린 그때와 다르지 않은 질문이다.
우리 한국인의 식탁(한식), 진정 안녕한지?
"무엇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 모두가 변화를 이야기한다.
시간이 갈수록 강하게 느끼는 건 한국은 그게 뭐가 됐건 변화의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것이다. 한국이 정말 유달리 그렇다. 무언가에 적응할 여유가 없다. 다이내믹 코리아의 이면엔 잠시 한눈팔면 도태되고, 사장된다는 공포감이 서려있다.
나도 앞으로 무엇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그럼에도 나의 삶을 통틀어 언제나 관심을 끌었던 것은 "무엇이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인가"라는 본질에 관한 고민이다. 나는 이 변화의 시대에 역설적으로 더욱 중요해지는 질문이라고 믿고 싶다.
이런 나에게 음식은, 변하지 않는 그 무언가에 관한 이야기이다.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본질에 묻고자 한다.
이 생각을 바탕으로, 앞으로 한식을 포함한 음식에 대한 거친 의견을 풀어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