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일기
11월12일 토요일 오전 9시. 창덕궁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기사님이 묻는다. "시내로 가세요?" 창덕궁으로 간다는 우리의 말에 기사님이 난색을 표하신다. 통제가 시작돼서 밀린다고. 창덕궁까지만 갈 거라며 거기까지는 괜찮을 거라는 우리의 설득에 택시는 출발했다. 출근하며 늘 지나가는 길. 기사님의 예상대로 분주한 아침 출근길보다 느긋한 토요일 아침길이 더 밀렸다.
꽤 오래전 계획된 가족 모임이었다. 50여 명 남짓의 참석자가 있었고, 쉽게 갈 수 없다는 창덕궁 후원도 그 숫자만큼 방문 예약을 해둔 상태였다. 게다가 남편은 모임의 총무. 시국이 시국이라며 빠질 수가 없었다. 무거운 마음의 발걸음이었지만 늦가을의 고궁은 환상적이었다. 새빨간 단풍잎, 250년이 됐다는 은행나무, 흙길을 가득 덮은 낙엽, 거기에 가을의 깊이보다 더 깊은 세월의 깊이를 담고 있는 건물들. 춥지 않은 적당한 날씨까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가을이었다.
바깥세상과는 단절된, 시간의 흐름도 잊게 만드는 고궁에서의 가을을 누리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와 처음 마주한 풍경은 길가에 쭉 앉아있는 의경들이었다. 그리고 실감했다. 오늘이 바로 민중총궐기의 날이었다. 저 젊은 청년들은 무슨 잘못이 있어 저 무거운 옷을 입고 저렇게 길바닥에 앉아있어야 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이런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가. 한탄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묵과할 수 없는 문제 앞에 우리도 우리의 생각을 행동으로 드러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게 바로 눈 앞의 찬란한 가을을 두고도 길바닥에 의미 없는 표정으로 앉아있는 의경들의 짐을 벗게 해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는 여섯살. 데리고 나가자니 100만이라는 인파가 걱정이 되었다. 효순이와 미선이 그리고 광우병 사태 때 이미 경험한 적이 있었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사람의 물결을. 그리고 키 작은 내게 키 큰 앞사람의 등이 때로는 너무도 견고해 나를 짓누를 것같이 느껴짐을. 그때보다 더 많은 100만의 인파, 그리고 훨씬 더 작은 아이. 무리가 되리라 생각되었다. 나의 욕심은 조금 접어 두기로 했다. 우리 가족 대표로 남편만 길에 서기로 한 것이다.
창덕궁 맞은편에서 나와 아이는 버스를 탔고, 남편은 우리에게 손을 흔든 뒤 광화문으로 향했다. 창덕궁에서 집으로 오는 길도 쉽지는 않았다. 버스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고, 대학로를 지나며 차로는 절반이 줄어들었다. 남은 절반에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흔들리는 깃발, 붉은 종이를 들고 앉은 사람들, 그리고 한 목소리의 외침. 아이에게는 낯선 광경이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창 밖을 보던 아이가 묻는다. "하야가 뭐야?" "박근혜가 뭐야?" 창 밖의 광경에 몰입한 내게 질문은 갑작스러운 잽과 같았다. 잠시 심호흡을 가다듬은 뒤 대답했다. 우리나라의 반장이 박근혜라고. 반장이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친구들에게 나쁜 행동을 하고, 친구들을 속상하게 해서 친구들이 이제 반장 그만해라고 말하는 게 하야라고. 얼마나 이해를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이는 대답한다. "아~ 그렇구나~"
아이가 좋아하는 동화책에도 나온다. 연필 학교의 뾰족이 반장이 친구들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고, 친구들을 놀려서 결국 아무도 따르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 6살 아이가 읽는 동화책도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고 알려준다. 상식인 것이다. 그래, 지금 우리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를 상식이 통하도록 바로잡고 있다. 가장 상식적인 국민이 가장 상식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시간이 흘러 아이는 이 날의 일을 이렇게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친구들을 속상하게 한 반장은 더 이상 반장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그리고 그다음의 새로운 반장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친구들이 속상한 일들을 잘 해결해주는 사람이었다고. 그리고 나는 바란다. 무엇보다 상식이 지켜지는 사회가 되기를. 돈과 권력 그 무엇 앞에서도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기를. 나 그리고 아이가 사는 세상이 지금보다는 더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