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일기
아이는 네 살 때 스스로 한글을 깨쳤다. 처음에는 더듬더듬 단어를 읽더니 점점 문장을 읽었고, 어느 순간 술술 읽기 시작했다. 일곱 살인 요즘은 대화체에는 연기를 하면서 책을 읽는다. 역할을 나눠서 마녀는 내가 공주는 아이가, 엄마는 내가 딸은 아이가 읽는다. 내가 성의 없이 같은 톤으로 책을 읽어주면 어김없이 지적을 한다. 할머니처럼 읽어라, 귀엽게 읽어라, 무섭게 읽어라. 물론 기분 좋을 때는 한 시간은 너끈하게 혼자서 책을 읽는다. 책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주는 것도 좋아한다. 이런 아이를 보고 주변에서는 말한다. 발달이 빠르다고.
아이는 스스로를 꼬마 화가라고 말한다. 별칭이 의미하듯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다고 했던가. 아이의 그림 실력을 보면 딱 그 말이 떠오른다. 그림을 그리는 것만 그럴까. 술술 글씨를 읽는 것과는 반대로 쓰는 것은 많이 서투르다. 글씨는 못 읽어도 자기 이름은 다들 쓴다고 할 때도 아이는 자신의 이름을 동그라미 두 개로만 표현했었다. 이제는 글씨를 쓰기는 하나 들쑥날쑥 제멋대로이다. 정기적으로 받는 영유아 건강검진에서 아이는 늘 소근육 발달이 늦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아이는 18개월이 되어서야 스스로 걷기 시작했다. 소근육뿐만 아니라 대근육 발달도 늦었다. 늦게 떼어진 걸음은 달리기도 뜀뛰기도 모두 남들보다 늦되게 했다. 남들은 모두 소파에서 뛰어내린다고 걱정할 때 한 번만 뛰어내렸으면 좋겠다고 바랐었다. 66개월 이상의 영유아 건강검진 발달 검사지에서는 닭다리 자세를 하고 3번 이상 뛸 수 있는 지를 묻는다. 아이는 고작 한 번을 뛰었을 뿐이다. 초등학교에 가면 줄넘기를 잘해야 한다는데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역시나 영유아 건강검진에서 아이의 대근육 발달도 늘 늦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국가가 지원해주는 마지막 영유아 건강검진을 받던 오늘, 의사 선생님은 이야기를 하셨다. 소근육과 대근육 발달에서 추적 검사를 한 번 받아보면 좋겠다고.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으면 더욱 좋을 것 같다고. 어릴 적부터 아이를 진찰하던 선생님이시고, 그동안 영유아 건강검진도 맡아서 해주시던 선생님이셨기에 그냥 하시는 말씀은 아닌 듯했다. 늦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 막상 추적 검사를 권유받으니 마음이 이상했다. 조금 늦는 것인데 종일반 유치원 생활도 척척 잘하고 있는데 굳이 받아야 할까 하는 마음과 선생님 말씀처럼 받아서 부족한 부분을 확실하게 아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마음이 교차한다.
늦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은 모두 각기 다른 속도로 자란다. 빠른 부분이 있으면 느린 부분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 모든 사실을 다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학교라는 문제 앞에서는 이 사실이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평균적인 잣대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학교. 평균보다 잘하면 학교 생활이 수월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힘들어지는 것을 나 역시 12년을 거치며 터득했기에 마음이 쓰인다. 느린 것을 기다려 주는 것보다 평균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야 아이가 마주할 경쟁이 조금은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
고민이 된다. 정말 아이에게 맞는 답은 무엇인지. 진정 아이에게 더 좋은 답은 무엇일지 말이다. 느린 것을 검사를 통해 얼마나 느린지 확인을 해야 하고, 그 점수를 평균 점수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무엇인가 하기를 권하는 사회. 아이에게 더 나은 답을 사회가 알려주고 있는데 내가 괜히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경쟁이라는 틀 속에서 사회는 더 좋은 아닌 더 편리한 답을 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참 부모가 되기는 정말 어렵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어쩌면 나 역시 남들보다는 느리게 부모가 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