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생각의 벽에 서다

워킹맘의 일기

by 여유수집가

아이를 무섭게 혼내야 할 때,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해보라며 생각의 벽에 세운다. 그리고 잘못한 내용에 따라 내가 정해준 숫자까지 세도록 한다. 움직이면서 대충 세면 다시 1부터 세는 것의 반복이다. 얼마 전 분리수거를 하러 간다는 아빠를 따라가겠다며 재킷을 손에 든 아이. 감기에 걸렸는데 날씨마저 추워서 안 되겠다고 설명했으나 막무가내로 떼를 썼다. 그래도 안된다고 하자 재킷을 아빠에게 던지더라.


다정다감하게 아이가 분리수거를 하러 갈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나는 무서운 엄마가 되겠노라 선전포고를 했고, 생각의 벽에 서라고 했다. 자신의 뜻대로 안 된다고 무언가를 던지는 것은 매우 잘못된 행동이기에 50까지 세라고 했다. 여름만 하더라도 가만히 서 있는 것 자체가 힘들어 이리 꿈틀 저리 꿈틀 하느라 1부터 다시 세기를 반복하던 아이가 이제는 컸다고 가만히 그리고 한 번에 50까지 세었다.


아이,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는 길. 아이는 주로 자신이 좋아하는 영어 노래 CD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는다. 이번에도 차를 타자마자 어김없이 마더구스 CD를 틀어달라고 하는 아이. 남편의 졸리다는 말에 우리는 마더구스가 아닌 라디오를 듣게 됐다. 아빠가 운전하다 졸면 차가 삐뚤빼뚤 움직이게 되어 사고가 날 수 있다고 설명하니 아이는 더 이상 CD를 듣겠다고 요구하지 않았다. 다만 입이 툭 나와있을 뿐이었다. 나 삐졌어를 온 얼굴로 드러내며.


아이의 표정에도 내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아이가 말한다. "엄마, 이따 집에 가서 생각의 벽에 서 있어. 생각의 벽에서 14까지 세." 아이의 얼굴은 무척 진지했는데 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생각의 벽에 서 있으라는 예상 하지 못했던 말도 나의 웃음을 부추겼지만 다른 숫자도 아닌 우리가 사는 아파트 층수 14를 이야기하는 것도 웃음을 참지 못하게 했다.


20161105_231747.jpg 아이가 내게 남긴 편지

나의 말을 똑같이 따라 하는 아이. 갑자기 마음이 묵직해졌다. 내가 사는 모습을 아이가 따라 하겠구나 생각하니 내 인생에 대한 책임감이 무겁게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아이의 엄마로의 인생과 동일한 비중으로 나 자신으로의 인생도 즐겁게 살고자 한다. 내 아이가 지금의 내 나이가 되었을 때, 우리 엄마는 참 즐겁게 살았었다며 자신도 그렇게 살아야겠다 결심하는 그런 거울이 되어주고 싶다. 이게 지금 내가 워킹맘으로 나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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