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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유수집가 Aug 12. 2017

일곱살 가을, 육아휴직을 쓰다

일곱살의 육아휴직

일곱살 봄, 퇴근 후 식탁에 놓여있던 딸의 편지

2011년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유난했던 입덧이 임신 8개월까지 이어져 출산 직전의 몸무게는 7.8kg 증가에 그쳤다. 출근 마지막 날, 마지막 회의에서 출산휴가에 들어간다는 내게 타부서 직원은 임신을 했었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출산예정일 1주일 전 출산휴가는 시작됐다. 아이는 예정일을 1주일 넘겨 태어났고, 다행히도 3.18kg으로 건강했다.


출산휴가에 들어가기 전 선배님들 중 누군가 한 명쯤은 육아휴직에 대해 물어볼 줄 알았다. 그 당시 회사는 직무에 따라 육아휴직을 쓰는 분위기와 쓰지 않는 분위기가 나뉘어있었고, 나는 쓰지 않는 분위기의 직무에 근무하고 있었다. 동기들은 내게 잔다르크를 권했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내가 묻지 않았기 때문인지 부서에서는 아무도 내게 육아휴직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당시 나는 사내 지식iN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고, 모바일 시스템 도입을 앞두고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내가 주도하는 프로젝트도 처음, 내가 의도하는 대로 시스템과 제도가 만들어지는 것에 대한 의욕. 그 일하는 재미를 놓치기 싫었다. 게다가 출산휴가 전 기획대로 출산휴가 기간에는 개발이 진행되고, 복직하면 테스트와 수정을 할 수 있도록 일정을 조정한다는데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출산휴가 기간이 끝나자마자 복직. 아이는 친정부모님께서 키워주셨다. 사람들이 물었다. 육아휴직이 아깝지 않으냐고. 그럴 때마다 당당하게 대답했다. 아이 초등학교 들어갈 때 쓸 거라고. 당시에만 해도 그렇게 육아휴직을 쓰는 사례는 없었기에 모두들 가능할까 의심을 품었다. 그때가 되면 일 욕심이 더욱 커져 그러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임신 기간 중 읽었던 한 신문기사가 잊히질 않았다. '워킹맘, 우린 슈퍼우먼이 아니에요'라는 제목이었다. 차장 승진을 앞두고 사표를 워킹맘의 사례가 나왔다. 학교 청소에도 못 가고 숙제를 도와주지 못했더니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너무 자주 벌을 받더란다. 교실 쓰레기 줍기 등 작은 벌이었지만 아들에게는 상처였고, 결국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그만두지 않을 방법, 나는 육아휴직에서 답을 찾았다.


아이가 세 살 즈음되었을까. 한 대학 선배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이 일곱살 가을, 육아휴직을 썼단다. 왜 하필 여덟살이 아닌 일곱살이냐는 질문에 아이랑 충분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고 했다. 온전히 아이에게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고 싶었단다. 유치원 땡땡이를 치고 여행을 다닌다는 이야기. 내 생각은 한 발 더 나아간다. 나도 그래야겠다고. 아이 일곱살 가을부터 초등학교 1학년 1학기까지 휴직을 쓰겠다고.


그때부터 아이랑 여행을 다니는 부모들이 쓴 책을 읽었다. 박선아의 '일곱살 여행'과 '착한 성장 여행', 다카하시 아유무의 '패밀리 집시', 김정주의 '아이와 함께 제주도 배낭여행 하기'가 그랬다. 그리고 나만의 계획을 세웠다. 나는 어디로 여행을 가야겠다. 나는 무엇을 해야겠다. 아이가 내 손길을 그리워하고, 내 시간을 아쉬워하는 순간마다 생각했다. 일곱살 가을에는 충분히 넘치게 네 곁에 있어주겠다고.


아이는 일곱살이 됐다. 새로 바뀐 업무 2년 차. 이제 조금씩 적응이 될만하고, 적응이 될만하니 이것저것 새롭게 하고 싶은 것도 생긴다. 그러다 보니 욕심이 나고, 걱정은 는다. 일 잘하는 후배들은 계속 늘어가는데 휴직 후 내 자리는 그대로일까. 지금의 일을 다시 할 수 있을까. 그 당당했던 목소리는 어디 가고 자꾸만 새가슴이 된다. 휴직을 묻는 남편의 말에 하겠노라 대답을 할 때마다 마음이 점점 작아진다. 커다랬던 풍선이 점점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어떤 날에는 휴직해야지, 어떤 날에는 그냥 다녀야지. 갈팡질팡을 반복하던 즈음 남편의 발령이 도화선이 됐다. 이제껏 아이 유치원 등하원을 담당해온 남편. 내가 야근을 마음 편히 할 수 있도록 평일 육아를 적극 지원했던 남편의 발령이 화두에 오른 것이다. 이른 출근을 해야만 하는 부서, 새로운 일에 적응을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야근들. 평일 육아의 공백을 채워줄 누군가가 새로이 등장해야 했고, 내 육아휴직 밖에 답이 없어진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갈팡질팡. 조금 이른 여름휴가로 떠난 스위스에서 결심을 하게 된다. 아이와 온전히 일주일을 보내며, 느긋하게 여행을 하며 확신이 생긴 것이다. 내 시간의 방향을 아이에게로 향해야겠구나. 조금 느리게 간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겠구나. 어쩌면 또 다른 행복의 시간들을 채울 수 있겠구나. 내 인생의 방향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겠구나. 지금 아이 곁에 내가 제일 필요하겠구나. 그렇게 일곱살 가을의 육아휴직은 현실이 됐다.


예상하지 못했던 휴직을 꺼낸 내 이야기에 부장님은 당황하셨고, 정말 확실한 거냐 다른 대안은 없느냐를 몇 번 물으셨다. 하지만 본인도 맞벌이 부부. 내 결심이 확고함을 확인하시고는 흔쾌히 잘 충전하고 오라고 하시더라.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여기는 똑같을 것이라며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과 함께. '[완결] 휴직신청서' 메일을 받고, 마음이 덜컹 내려앉기는 했지만 복잡 미묘한 감정에 잘 한 선택인지 주저하기는 했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8월 28일부터 나는 유아휴직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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