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괜찮은 걸까

D-2 <내리막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를 읽고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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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오년간 회사생활을 돌이켜보면 이렇다. 입사하고 육 개월 뒤에 다른 회사와 합병을 한다는 발표가 난다. 맨 처음에는 한 법인 내 두 개의 다른 회사처럼 운영한다고 하여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한 두 달 뒤쯤일까, 전면적으로 한 회사로 합병을 하는걸로 결정이 바뀌었다. 급하게 준비를 했다. 합병식이 있던 날 시스템을 담당하시는 분들은 행사에 오지도 못하고 밤을 새워 일했다. 합병 첫 해에는 보상 테이블을 통합하기 위한 평가를 해야 했다. 부족한 부분에 대한 지적을 받았고 다음 해 평가는 많이 달라졌다. 올해는 작년보다 평가등급 단계가 하나 더 생겼다고 한다. 내가 속한 조직은 일년 전에 여섯 명이었는데 올해가 끝날 때는 두 명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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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기간에 망할 리 없는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사실 회사는 나에게 아무것도 담보해 주지 않는다. 나도 회사로부터 안정된 미래를 바라지 않았다. 내가 원한 것은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경험이었다. 아니, 도움보다도 그냥 내가 갖고 싶은 경험이라고 해야 옳겠다. 풀어야 할 문제, 그리고 거기에 열중하는 환경. 다른 회사와는 뭔가 다른 우리 회사만의 엣지를 만드는 그런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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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생 케바케라는 진실이 있듯이.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또 다른 진실이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 내 생활을 받아들여 나가볼 것인지 고민하던 중에 눈에 띈 책이 있다. 제현주 대표가 쓴 <내리막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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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의 일에 대한 고민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저자는 좋은 대학을 나와 고소득의 직업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회의감을 느낀다. 경제활동을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협동조합 설립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선택한다. 물론 협동조합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한 일도 병행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회사원이 아닌 대안적 방식의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월간 잉여를 발행하는 잉집장 최서윤 씨, 뉴스페퍼민트를 만든 이효석 씨. 또 5년 이상 근무하면 지분을 갖고 회사의 소유주가 되는 사우스 마운틴이라는 회사도 알게 되었다. 흥미로운 이야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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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그래서 어떤 안내를 따라가면 된다는 이정표는 없었다. 그래도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세상에 많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할 수 있었다. 나만 힘든 건 아니구나. 그리고 한 편으로는 지금의 사회가 달려가는 곳이 어디일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책에 소개된 <하류지향>의 우치다 타츠루에 의하면 소비하는 일로 사회활동을 시작 한 아이들은 인생의 아주 초판부터 '돈의 전능성'을 경험한다고 한다. 이를 통해 '사는 사람'의 위치를 선점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이제 아이가 일생에 걸쳐 수행할 경제활동은 등가교환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타츠루에 의하면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로 아이들은 교실에서 '불쾌함'과 '교육서비스'를 교환한다. 그 불쾌함이라는 가상화폐를 투입하는 이유는 미래에 진짜 화폐를 거둬들이기 위함이다. 공부가 불쾌함의 투입으로 전락할 때 공부는 미래의 화폐를 거둬들일 도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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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도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느끼는 스트레스와 짜증은 월급으로 치환된다. 일이 재미있으면 회사가 돈을 왜 주냐, 는 옛날 직장선배의 우스갯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것 같다. 사람들은 쉽게 상사와 동료를 욕하면서 과도한 술을 마신다. 정장 입고 퇴근 후의 회사 근처 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그 생활이, 요새는 많은 취준생들이 동경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생기도 건강도 잃어버린 직장인들은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나보다 어리고 일 잘하는 사람들이 이 자리를 순식간에 채워버릴 걸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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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고등학생 대부분이 이과를 선택한다고 한다. 이유는 명료하다. 문과는 취업이 안되니까. 최근 고등학교 선생님을 하는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너네 회사 가고 싶어 하는 애들이 있는데 어떤 과를 가는 게 유리해? 맥이 풀리는 질문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특정회사를 목표로 진학을 준비하는구나... 며칠 전 EBS 다큐 '번아웃 키즈'를 보면서 남편과 깊은 한숨을 쉬었다. 공부 블로그(줄여서 공블이라고 부른다고 한다)를 운영하는 한 소녀가 상담을 받는 내용이 나왔다. 아무도 그 아이에게 이것밖에 못하냐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들린다고 한다.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그 아이는 매일 공부하는 걸 휴대폰으로 촬영해서 블로그에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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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친구들을 불러 영상을 찍었다. 영상 속에서 친구에게 묻는다. 넌 어떤 사람이야? 네가 잘하는 건 뭐야? 질문을 들은 아이들은 모두 예외 없이 눈물을 흘렸다. 사전에 몰래 촬영한 아이들의 부모님이 등장했다. 부모님들은 하나같이 밝은 얼굴로 자신의 자녀가 무엇을 잘하는지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성적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 것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무엇이 아이들을 저렇게 몰고 가는가. 대학 진학으로 평가당하는 아이들, 취업과 공시에 목을 맨 대학생, 그리고 직장을 떠나지 못하는 어른들, 점점 어린 연령으로 내려오고 있는 고독사. 지금 내가 사는 사회의 좌표는 어디쯤 찍혀있는 것인지, 나는 일단 먹고 살기 괜찮으니까 괜찮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진심으로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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