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세돈세

D-38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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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의 결혼식이었다. 첫 회사 입사가 십 년 전이다. 이제 모두 서로 다른 회사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 와중에 누군가 만나서 뒤늦게 눈이 맞은 것이다. 우리 동기들 중에서 결혼하는 커플이 나오다니, 결혼사진을 보면서 모두 손발이 오그라드는 경험을 했다. 막상 결혼식 장에 들어가려고 나란히 앞뒤로 서서 대기하는 둘을 보니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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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두 명이 결혼을 하다 보니 칠 년 전 퇴사 이후로 못 본 동기들을 여럿 보게 되었다. 많이 변한 동기도 있고, 또 그대로 여서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는 동기도 있었다. 다들 잘 지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예전 생각도 많이 났다. 회사에서는 같은 기수인 우리에게 검은색에 파랑이 섞인 트레이닝복 세트를 주었다. 그룹 연수 들어가서 입으라고 준 옷이었다. 그걸 또 다들 들고 가서 저녁마다 열심히 입었다. 스무 개의 조로 뿔뿔이 흩여져 배치되었지만 저녁마다 같은 옷을 입고 몰려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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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연수가 끝나고 자사 연수를 또 들어갔는데, 그때 받은 미션이 게임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때쯤 미니홈피에서 할 수 있는 게임들이 있었다. 한창 인기몰이를 할 때여서 그랬는지 그런 간단한 스낵 게임을 만들어 보라는 미션이 주어졌다. 무슨 게임을 만들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현실의 사람들이 원하는 어떤 것을 실현시켜주자, 라는 생각에 돈 세는 게임을 만들었다. 이름하야 '돈세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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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셉트는 말 그대로 돈을 세는 게임이다. 돈 사이에는 낙엽 같은 가짜 돈이 끼어있어서 돈만 세고 돈이 아닌 것은 세지 않는(ㅋㅋㅋ) 게임이다. 게임이 계속될수록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방식으로 난이도를 준 게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리 십 년 전이라고 해도 무척 어이없는 내용의 게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조에서는 요리를 주제로 한 게임도 만들고, 화장실 벽에 낙서하는 콘셉트의 게임도 만들고 재밌는 것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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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막 직장인이 처음 되었을 때고, 늘 만나던 친구들이 경영학과뿐이던 때라서 내가 만든 게임이 프로토타입으로 돌아간다는 게 너무너무 신기했다. 디자이너랑 개발자는 정말 엄청난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나는 하는 게 콘셉트 짜고 문서 쓰는 것 밖엔 없는데, 이 사람들은 뭔가 돌아가는 화면을 직접 그리고 움직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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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활동도 좀 더 실용적으로 쓰이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올해는 책을 엮는 사내 프로젝트에도 도전을 했다. 매일 저녁 짧은 글을 쓰는데, 이것도 뭔가 목적성을 갖고 하면 다른 사람도 볼만한 콘텐츠로 탄생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좀 더 갈고닦아 조이는 과정을 거쳐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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