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스택츠 2주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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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업계에서 일하면서 스타트업 망하거나 잘 된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다. 회사의 흥망성쇠를 직접 겪어보기도 했다. 대기업이었던 나의 첫 회사는 상장 폐지가 됐고, 그 시절 이름도 처음 들어본 회사로 간다고 걱정했던 옆팀 과장님이 알고 보니 카카오 초창기 멤버인 적도 있었다. 어제의 찬란했던 회사가 저물고 어떤 이름 없는 회사가 대기업으로 탄생하는 곳. 그런 일이 수 년 안에 일어나기도 하는 그런 업계가 바로 내가 일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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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친구가 창업을 제안했을 때 많은 생각을 했다. 지하철역 앞에서 앱 홍보 전단지를 돌리던 당근마켓 일화도 생각이 나고, 카카오에 인수되어서 들어와 목돈을 가지게 된 사람들도 생각이 나고, 또 회사가 망한 뒤 경력단절이 되는 나의 모습도 상상했었다. 차마 겪고 싶지 않은 비극과 재밌게 일하는 꿈을 이룰 수도 있다는 상상 속에서 망설이고 있을 때 친구가 보란 듯이 시드 투자를 받아왔다. 자금이 생겨 팀원을 꾸릴 수 있게 되자 조금씩 신이 났다. 나는 일하기 좋은 회사를 만들고 싶은 꿈이 있었다. 지금이 최선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떨치고, 이루어 내고 싶어하는 나 자신의 손을 잡아주기로 했다. 나조차 믿어주지 않는 나를 누가 응원해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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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에서 중간쯤 가는 것에 자신 있고, 스스로를 잘 믿지 못했던 내가 나를 온전히 믿어준 선택이었다. 미래가 불안해서 연극영화과 대신 경영학과를 택했던 열아홉의 나와는 달라서 기뻤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고 창업 1년 만에 불경기가 찾아왔다. 그전까지는 대단히 호황이라 리크루터가 인사업무의 거대한 영역으로 떠오를 정도였는데, 불경기가 찾아오자 회사 내 리크루터들이 전부 일을 잃었다. 그만두기도 하고 다른 업무를 하기도 했다. 많은 스타트업이 문을 닫고 지인이 하는 회사가 서비스를 종료하기도 했다. 연초에 투자를 약속했던 회사들도 자금이 없어서 약속을 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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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에는 내가 일하는 것이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금이 동나는 시점이 빤히 보이는데 돈이 들어올 기미는 없고, 시간이 내편이 아닌 것 같으니 불안도 쉽게 찾아왔다. 걱정은 많은데 정작 아침에 출근해서 자리에 앉으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투자는 내가 받아오는 것도 아니고 대표가 받아오는데도 그랬다. 사람도 잘 안 만나게 되고 누군가 안부를 물으면 저는 간신히 지내고 있어요, 하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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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길을 걷다 문득 사업이 잘 안돼서 걱정하는 내 마음이 참 평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하는 사장님들 대부분 다 이런 걱정을 하지 않을까? 평범한 걱정이라는데 생각이 미치니 약간 마음이 편했다. 그쯤 에크하르트 톨레의 책을 읽은 것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내가 든 손전등이 비춘 만큼, 나는 딱 그만큼의 영역인 현재에서만 살아갈 수 있을 터였고 불필요한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데는 팀원들이 되려 괜찮냐고 물어봐준 것도 큰 몫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하는 것, 내가 하는 일이 마음에 안 들어도 나를 탓하지 않고 격려하면서 계속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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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누가 잘 지내냐고 물으면 기꺼이 잘 지내고 있다고 대답한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지만 문제를 마주하는 방법을 조금 터득한 것 같다. 지금의 경험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 수 없지만 지금도 좋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점이 아닐까 싶다. 스타트업 하는 지인들을 만나면 눈빛만 봐도 마음을 알 것 같다. 그렇게 눈빛만으로도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긴 것도 무척 소중한 경험이다. 언젠가는 스스로 격려하지 않아도 나 자신을 굳건히 믿어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컨스택츠 2주년 기념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