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아침 산책했다.
분주히 출근하는 사람들과 달리
나의 발길은 느렸다.
나는 과거를 걸었으니까.
오늘 아침 자네의 편지와 시집을 받았네. 들뜬 마음에 이렇게 곧장 답신을 작성하고 있어. ‘행복 찾기’라…… 마침내 행복을 찾은 자네의 시집에 이보다 어울리는 제목은 없겠지. 축하하고 또 축하하네. 자네가 옆에 있다면 내가 아끼는 위스키를 머리에 몽땅 부어서라도 나의 마음을 표현했을 텐데. 하하. 자네가 진정 자랑스럽네.
킬리만자로에서 우리가 만난 지도 어느덧 햇수로 3년이 되어 가는군. 자네처럼 순수한 사람을 적지 않은 나이에 친구로 맞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자네와의 약속대로 나는 여행지를 옮길 때마다 이전에 머물렀던 숙소로 엽서를 보냈네. 가난한 배낭 여행자의 말을 기억해 준 착한 주인들 덕에 이렇게 자네의 편지가 4개월여 만에 나의 손에 도착하는군. 고마운 일이네.
마침 지금은 한국식당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중이라 돈이 궁하지는 않았는데 자네가 동봉한 돈을 보며 자네의 세심함에 다시 한번 놀라고 말았어. 자네가 시인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느낄 수 있었지.
만일 그때처럼 내가 설산 어딘가에 있었다면 자네의 편지를 열어보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우체부에게 되돌려 줄 수밖에 없었을 테지. 고맙네.
자네와 헤어지고 나는 한 동안 따뜻한 남쪽의 산맥을 따라 걸었다네. 우거진 숲 속 오솔길에 배어 있는 그 뭉툭한 냄새가 몹시도 그리웠지. 몇 날 며칠 아무도 오지 않는 깊은 산속을 걸은 적 있는 여행자는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걸세.
처음 산에 들어갈 때면 나는 정말 긴장한다네. 야생동물들이 언제 나를 덮칠 지 모르니까 말이야. 가능한 한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발소리를 잔뜩 죽인 채 조심조심 걷는다네. 그러다 3일쯤 지나면 비로소 긴장이 풀려. 그 사이 내 몸에 숲의 냄새가 배기 때문이지.
땅을 고르고 텐트를 치고 침낭을 펼쳐 둔 후 밖에 나와 모닥불을 지피는 시간을 나는 사랑한다네. 불이 붙는 동안 이른 어둠이 찾아오지. 불티는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고 나는 별 아래에서 나만의 만찬을 즐긴다네.
가끔은 불빛을 보고 사슴들이 모여들고는 한다네. 처음에는 어둠 속에서 뻘건 눈동자들이 튀어나오니 가슴이 철렁했지만 지금은 그러려니 하네.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의 눈빛을 교환한 다음에는 나는 나대로 녀석들은 녀석들대로 각자의 일을 볼 뿐 신경 쓰지 않으니까.
산에는 저마다의 영역이 있네. 내가 한 장소에서 반드시 하룻밤만 묵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까닭은 산짐승들에게 내가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한 것이 아니라 아주 잠깐 빌려 쓰고 곧 떠날 존재임을 알게 하려는 것이야.
사람들이 지레 겁을 먹어서 그렇지 키를 낮추기만 하면 동물들은 우리 인간보다 훨씬 너그럽다네. 그저 자기 구역의 주인으로서 잠시 얼굴을 비추었다가 조건 없이 숙박을 허락하지.
저녁을 먹고 나면 아껴둔 위스키를 아주 조금 오랫동안 음미하며 마신다네. 상상해 보게. 깊은 산중의 밤다운 밤에 어찌 취하지 않고 별을 볼 수 있겠나? 자네가 수다스러운 젊은이를 만났다는 사막의 밤도 아마 이렇게 애달플 만큼 아름다웠겠지. 그 친구의 수다가 아니었다면 자네의 여행도 계속되었을지 모를 일. 세상에 쓸데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이 분명하네.
아마 두 달 전 즈음일 거야. 며칠 동안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하던 비가 그날은 본격적으로 퍼부었지. 아직 우기가 시작될 때는 아니었는데 어찌나 억수같이 내리던지.
산에서 이런 비를 만나면 걷기를 멈추고 서둘러 비를 피할 곳을 찾아야 하네. 금새 불어난 물에 휩쓸리기도 쉽고 자칫 저체온증이 올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처음 찾은 산속에서 동굴 같은 곳을 만난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시야는 좁으니 조금 겁이 나기도 하더군. 이름 모를 산중에서 이름 없이 죽는 것이야 두렵지 않았지만 여행을 멈춰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었지.
그 순간 앞쪽에서 불빛이 반짝이더군. 별이 뜨는 날이 아니었으니 그것은 분명 불빛이었네. 깜빡깜빡, 바람에 일렁이는 불빛이 확실했네. 나는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최대한 서둘러 그곳을 향해 걸었네. 혹시라도 불빛이 사라질까봐 위치와 거리를 계속 가늠하며 나아갔네.
마침내 불빛이 반짝이던 곳에 거의 도착했다고 생각할 무렵 불빛은 꺼지고 그 자리에 있는 동굴이 눈에 들어왔네.
비를 피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동굴 안에는 온기마저 감돌았지. 마치 방금 전까지 누군가 있었던 것처럼 말일세. 나는 동굴 안을 돌아다니며 바닥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잔풀과 마른 나뭇가지들을 주워 불을 지피고 젖은 옷을 텐트 위에 널자 마자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네. 그렇게 달콤한 잠은 다시는 없을 만큼 길고 편안한 잠이었어.
얼마나 잤는지 기억도 나지 않네. 허기가 져서 눈이 떠졌던 것 같아. 그런데 이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고 나는 깜짝 놀랐다네. 빛이 위에서 쏟아져 고개를 들어보니 내가 들어왔던 동굴 입구가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지 뭔가.
우습게도 처음에는 ‘저기를 어떻게 올라가지?’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네. 그 높은 곳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면 분명 추락해서 뼈도 못 추렸을 텐데 어떻게 살아 있는 걸까, 나는 신기했다네. 혹시 내가 자는 동안 동굴이 회전이라도 했던 걸까, 여러 생각이 들더군.
커피에 육포를 씹어 먹으며 나는 동굴 위로 올라갈 방법은 없다는 것을 알았어. 습기를 머금은 벽은 너무 미끄러웠고 기어올라가기엔 손가락을 걸만한 틈도 보이지 않더군.
정신을 차리고 동굴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네. 여행자에겐 항상 손전등이 있으니까 말이야.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바닥에 금을 그으며 천천히 나아갔지. 그러고 보니 우린 닮은 데가 많은 듯하이.
땅은 딱딱하지도 무르지도 않았어. 선이 또렷하게 잘 새겨졌다네.
동굴은 여러 갈래로 구불구불 계속 이어졌지만 빛이 들어오는 곳은 달리 없었다네. 그러다가 물이 고인 웅덩이를 발견했지. 손으로 조금 떠서 마셨더니 아주 맑고 시원했네. 얼마나 다행인가. 한동안 죽지 않고 버틸 수는 있게 되었으니 말일세.
나는 입구로 되돌아와 물통들을 챙겨왔네. 물을 다 담고 나서 웅덩이를 자세히 살펴봤지. 물이 흘러 들어오는 곳과 흘러 나가는 곳이 보이더군. 나로 인해 오염되지는 않을 것 같아 목욕을 하기로 했어. 깊이가 가늠되지 않아 조심스럽게 가장자리를 붙잡고 몸을 담갔지.
마실 때는 차디찼던 물이 몸에 닿을 때는 따뜻했다네. 혹시나 해서 마셔 보니 역시 차가운 물이었어. 참 신기하지 않은가?
몸이 나른해지니 여유가 생겼는지 물 속을 보고 싶더군. 방수포에 손전등을 넣고 잠수를 시작했네. 내가 본 게 무엇일지 상상이 되는가? 한 3m 정도의 거리에 보이는 것은 온통 휘황찬란한 보물들이더군. 바닥으로 내려가서 손에 잡히는 대로 금화 몇 잎을 들고 나왔네. 틀림없었어. 그것은 순금으로 만든 금화가 분명했지.
나도 모르게 심장박동이 빨라지더군. 처음에는 진정하기가 쉽지 않았다네. 왜 아니겠나? 그 정도 양의 보물이라면 세상의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구하는데 요긴하게 쓰일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이내 나의 상황을 실감했어. 동굴 밖으로 나가 살아남지 못한다면 보물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금화를 다시 웅덩이에 던져 넣고 동굴 탐험을 이어갔네. 동굴은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어. 1키로는 족히 걸었을 거야. 혹시라도 길을 잃는다면 영영 나갈 수 없을 정도의 깊이까지 들어온 셈이지. 혹시라도 손전등의 배터리가 닳기라도 하면 꼼짝없이 갇힐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일단 돌아가기로 했네.
바닥에 새겨진 선을 따라 한참 만에 입구로 돌아왔지. 그런데 이게 웬걸, 하늘 위에 떠 있던 동굴 입구가 바닥 쪽으로 옮겨져 있지 않은가 말이야. 나는 귀신에 홀린 기분으로 동굴 밖으로 달려 나갔다네. 저녁놀로 물들어가는 하늘과 그 아래 펼쳐진 환상적인 풍광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걸세.
아무도 믿지 않을 신비로운 경험에 살았다는 안도감이 중첩되어 그날의 산과 하늘은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 가슴속을 파고 들었겠지?
한껏 편안해진 마음이 되어 나는 아껴두었던 한국 라면을 끓여 평소였다면 한 달 정도 마실 양의 위스키를 축내며 즐겼다네. 그 순간의 한국 라면 맛은 한국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대로 그야말로 진리였어.
아침에도 여전히 동굴 입구는 제자리에 있었어. 나는 떠날 준비가 되었지.
웅덩이에 가서 사람들에게 보여 줄 금화 몇 잎과 작은 보석 몇 점을 들고 돌아왔네.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겠나? 동굴 입구가 다시 머리 위로 올라가 있었어. 나는 꿈을 꾸었던 것이 아님이 분명했던 거지. 그리고 무엇인가 변한 것도 알아챘어. 동굴 입구가 절반 정도 크기로 줄어들어 있었다네.
나는 잠시 생각해 보았어. 그리고는 웅덩이로 달려가 보석과 금화들을 던져 버리고 돌아왔다네. 동굴 입구는 다시 내려와 있었지만 입구의 크기는 다시 절반으로 줄어 있었어. 이제 겨우 두 사람 정도가 함께 드나들 수 있는 크기 정도에 불과했지.
나는 동굴이 나에게 말하려는 바를 감지했네. 내가 욕심을 냈다면 아마도 나에겐 더 이상의 기회가 없었을 거야. 나는 곧장 짐을 싸서 동굴을 나왔다네. 미련없이 걸어 내려가다 뒤돌아보니 동굴은 여전히 입구를 열어두고 있더군.
그때의 불빛은 혹시 보물이 보낸 것 아니었을까,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네.
나는 그 동굴을 발견한 최초의 인간이 아니었을 거라는 확신이 드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동굴 안에 남아 있던 온기와 물 속의 따스함이 어쩌면 동굴을 나오지 못한 사람들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이 들어. 그때마다 몸에 소름이 돋곤 한다네.
여행지란 자기 안에 여행자들을 부르는 자기만의 고유한 흔적을 품고 있는 법이지. 시간과 사람이 함께 만든 이야기 말일세. 그것은 오직 여행이 가능할 때만 빚어지는 것이야.
그 동굴 안에는 흔적이 없는 셈이지. 시간이 멈춘 곳에서 인간은 여행할 수 없고 여행이 멈추면 이야기는 쓰여지지 않으니까.
이야기를 잡아먹는 동굴 덕에 나는 살아남았고 그래서 오늘 자네의 이야기가 담긴 편지와 시집을 읽으며 이렇게 나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으니 비록 이것이 자네가 찾은 행복에 비할 바는 아니겠으나 나에겐 지금 이 이상의 행복이 없다네.
킬리만자로에서 자네를 만났을 때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미소 짓는 자네의 표정이 참 마음에 들었네. 다들 카메라를 꺼내 기념 사진을 찍기 바쁠 때 오직 자네와 나만이 맨눈으로 별들을 더듬고 있었지.
그 하늘의 그 별들이 사진에 박제될 수 있는 것이었던가 어디? 가슴속에 품기도 벅차지 않았던가?
단 둘이 남아 찬 공기 아래에서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누었지. 행복을 찾는 자네의 여정이 참 부러웠다네. 내 앞엔 행복이 없다고 믿었으니까. 뒤에 남겨진 행복의 크기가 너무 컸기 때문이었지.
내 앞에 있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길뿐이라고 생각했네. 살아있으니 움직이는 것이고 그 움직임 속에서 기억을 덜어내는 것이 내 살아있음의 유일한 목적이라고 여겼지.
여행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 허기와 같았네. 나는 잊히지 않는 추억 속의 행복을 길에 버리기 위해 여행을 시작했던 것 같아. 버려도 버려도 한없이 남아 있는 그 행복의 크기란 정말 고통이었지.
맞네. 자네의 여정과 달리 나의 것은 늘 행복 잃기였어. 가슴속에 박혀 있는 행복의 뿌리를 다 뽑아낸 뒤에야 나는 비로소 걷기를 멈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고, 그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았네. 지난 10여 년의 여행에서 나는 조금도 내 안의 나무를 밀어내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친구여. 오늘 자네의 편지와 시집을 읽으며 나는 자네 고향 마을의 별이 열리는 나무를 보고 싶어 견딜 수 없네.
어쩌면 나는 앞으로 갖고 가서는 안 되는 행복을 한가득 품고 어둠 속에서 제자리 걸음을 해왔는지도 모르겠네. 마치 세상을 위해 쓰이면 좋겠다는 알량한 마음으로 등 뒤의 보물에 미련을 갖다 동굴에 갇혀 버린 또 다른 나로 살아온 것은 아닐까?
나는 동굴 밖에 있네. 나는 자네를 보고 싶고, 자네의 연인을 만나고 싶으며, 그 나무 아래에 서고 싶네. 자네의 아이가 자라는 것을 보고 싶고, 나 역시 이전보다 더 큰 행복을 함께 만들어갈 사람을 만나 함께 그 나무에 걸린 별들에게 속삭이고 싶네.
주위가 시끌시끌해지네. 한국인들은 참으로 부지런하다네. 벌써 오늘 하루의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시작하고 있어. 여기에서 먹고 자는 나보다 더 이른 시간에 일을 시작하다니. 참고로 여긴 오후 5시부터 새벽 3시까지 영업한다네. 이 도시의 여행자들이 이 식당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지.
자네에게 편지를 쓰며 나의 마음은 이미 그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네. 마음이 가는 곳에 나의 몸은 곧 이를 것이네. 항상 발을 앞세웠던 지난 날의 여행들과 이번 것은 완전히 다를 것이네.
편지를 쓰는 동안 나는 과거라는 웅덩이를 모두 메워 버리고 있네. 모든 여행지의 이야기들과 자네의 편지가 흙이 되어 이 한 순간 이 일이 이루어지는군.
이제 나는 인생을 여행할 것이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자네의 막대기가 꽂혔던 그곳에서 출발될 것이라네. 만날 때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길.
*추신
동봉한 돈은 자네의 연인에게 근사한 저녁이라도 대접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넣었네. 자네의 마음을 사로잡은 행복이라는 이름의 사람이 궁금하네. 곧 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