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by 오종호

知窮之有命 知通之有時 臨大難而不懼者 聖人之勇也 由處矣 吾命有所制矣

지궁지유명 지통지유시 임대란이불구자 상인지용야 유처의 오명유소제의


-궁한 상황에 처하는 운명이 있음을 알고 막힘 없이 풀리는 때가 있음을 알아서 큰 고난에 임해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성인의 용기다. 유야, 편히 있거라. 우리의 운명은 다 정해진 바가 있다. - 추수(秋水)



공자가 제자들과 광(匡) 지방에서 송나라의 군사들에 포위되어 있을 때의 일입니다. 공자가 태연히 거문고를 연주하자 그가 사랑했던 제자 자로(유())가 어찌 위급한 상황에서 음악을 즐기는 것인지 묻습니다. 위 구절은 그 질문에 대한 공자의 답변에 들어 있습니다. "물길을 다니며 교룡을 피하지 않는 것은 어부의 용기이고, 육로로 가면서 외뿔소나 호랑이를 피하지 않는 것은 사냥꾼의 용기이며, 서슬 퍼런 칼날 앞에서 죽음을 삶처럼 보는 것은 열사의 용기다"라는 말 다음에 이어집니다.


이 일화는 <<사기>> <공자세가> 및 <<논어>>의 여러 대목에 수록되어 있지요. 공자가 위령공에게 실망하여 위나라를 떠나 조나라로 갔다가 송나라로 옮겨 제자들과 함께 큰 나무 밑에서 강론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송나라 사마(司馬. 오늘날의 국방장관) 환퇴가 나무를 뽑아 죽이려 하자 제자들이 서둘러 자리를 피하기를 청합니다. <<논어>> <자한(子罕)> 편 5장에서 공자는 "광인기여여하(匡人其如予何) - 광 지방의 사람들이 나를 어찌할 수 있겠는가?"라며 대범하게 행동하지요.


장자는 공자의 대범함을 높이 사면서도 공자의 경우를 빌려 인간에게는 하늘이 부여한 운명의 힘이 작동하고 있음을, 그리하여 운명을 이해하고 그것에 순응하는 무위의 자세가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운명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우리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장자가 왜 운명과 용기를 함께 얘기했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운명을 알고 그것에 순응하는 것은 소극적 태도로 삶을 대하는 것과 무관합니다. 오히려 운명을 겸허히 수용하여 그것 안에서 하늘이 부여한 선한 소명을 다하려는 적극적 자세와 관련됩니다.


<<논어>>의 끝에서 공자는 말했습니다. "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다(부지명 무이위군자야(不知命 無以爲君子也))." 운명을 인정하면 용기 있게 살 수 있습니다. 옛 성인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실천했던 위대한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