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벵갈루루
도덕경 30장에 '物壯則老물장즉로'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만물이란 강성해지면 쇠락하기 마련이라는 뜻이니 이를 인간에게 한정하면 곧 육체가 작동하는 방식이며 인생이 거역할 수 없는 대자연의 법칙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관점에서는 물질이 왕성해지면 이내 쇠하게 된다는 의미가 됩니다.
우주의 시간이 지구라는 공간에 내려앉아 하는 일은 물질을 만들고 없애는 일의 반복으로 압축됩니다. 시간은 물질을 만들어 생명을 살게 하고 살아 있던 모든 것을 죽여 새로운 물질과 생명으로 대체합니다. 시간이 하는 일에는 빈틈이 없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시간의 이치를 거스르는 물질을 만들고 그 물질의 영원한 '장壯'을 꿈꾸며 축적하는 과정에서 여타 생명들의 삶의 터전을 망가뜨리는 일도 서슴지 않습니다. 인간이 만드는 물질이 풍성해질수록 인간의 세상은 순환 불가능한 상태로 쇠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코로나19에 맞서 극약처방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코로나19는 하늘이 지구를 위해 선택한 극약처방일지도 모릅니다.
명리학은 겸손해질 때 비로소 만날 수 있는 학문입니다. 과학의 잣대나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철학적 개념을 백날 들이밀며 비난해 봐야 그 시간에 지금 각 분야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은 명리학적 조언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이것은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물질 세상의 불균형이 쉽사리 개선될 것으로 내가 예측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다수의 조화로운 삶을 위해 그 불균형을 제도적으로 해소하려 노력할 정치 세력을 내가 응원하는 까닭입니다.
나는 복잡하며 난해하다고 알려진 명리학의 진정한 본질을 마음이 열린 사람들에게 재미있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사유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명리학은 철학입니다. 그대도 철학 수준의 명리학을 이해할 때 많은 것이 다르게 보이게 될 것입니다. 여전히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은 맑은 밤하늘 아래에서 고개를 들어야 합니다. 밤하늘에서 풍경이 아니라 영겁의 시간을 만날 때 겸허하게 자신의 존재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될 것이며, 자기 존재의 소명에 대한 탐구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니까요. 강의를 통해 내가 주고자 하는 것은 사주를 잘 읽는 실력을 넘어 우리 자신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깨달음의 계기입니다. 그것을 통해 자신의 소명을 이해하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방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사람들은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한 자신만의 구체적인 방법을 스스로 깨닫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자기의 한계를 직시하고 자기의 잘못을 성찰하며 타인과 공동체에 시선을 둘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주의 근본 이치에 대해 깊게 사유할 때 운명의 개념을 인문적으로 소화하여 현실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지혜를 갖게 됨을 나는 압니다. 겸손한 자세로 진퇴의 신호에 따르기를 시간은 매순간 우리에게 얘기하고 있지요. 나는 시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하루로 빠짐없이 명리학과 주역의 텍스트를 통해 그 목소리를 만납니다.
인구 840만의 대도시 벵갈루루 거리 곳곳에 릭샤가 장사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뻥 뚫려 있는 릭샤 안으로 소음은 바람을 타고 거침없이 밀려듭니다.
사람과 차와 오토바이가 뒤섞인 시장의 혼잡을 사진은 담아내지 못하는군요.
차와 릭샤와, 사람과 동물과, 물건과 소음과, 햇빛과 먼지가 한데 뒤엉킨 인도의 전통시장에 갇혀 느리게 걸음을 옮기면서 나는 논어의 마지막 구절(不知命 無以爲君子也 不知禮 無以立也 不知言 無以知人也 부지명 무이위군자야 부지례 무이립야 부지언 무이지인야)을 떠올렸습니다. 공자가 사용한 '命'은 흔히 보통 사람의 한계나 최대치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논어에 등장하는 '命'은 정치권력, 생사, 운명의 의미와 관련된 텍스트들 안에서 두루 사용되고 있으며, '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다'는 구절 안의 '命'은 운명의 의미를 띠고 있음이 명확합니다.
이 구절에서 나는 공자의 쓸쓸함을 느끼게 됩니다. 안회가 죽었을 때 공자는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 라고 곡했습니다. 백우가 나병에 걸리자 "운명인 것인가, 이런 병에 걸리다니" 라고 읊조렸습니다. "내가 삶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라고 말한 공자는 분명 운명론자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부단한 노력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사태를 공자는 '운명적인 것'으로 인식했음이 분명합니다. 신神을 가까이하지는 않지만 무시하지는 말라고 한 그의 말에는 자신의 능력으로는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인정'의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나는 그의 낮은 마음을 좋아합니다.
<<맹자>>의 <진심장구 상盡心章句 上>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莫非命也 順受其正 是故知命者 不立乎巖牆之下 盡其道而死者 正命也 桎梏死者 非正命也 막비명야 순수기정 시고지명자 불립호암장지하 진기도이사자 정명야 질곡사자 비정명야. 운명 아닌 것이 없다. 그 바른 이치를 순순히 수용해야 한다. 따라서 명을 아는 사람은 돌담 아래에는 서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 도를 추구하다가 죽는 자는 하늘이 내려준 운명대로 산 것이다. 질곡 속에서 죽는 자는 하늘이 내려준 운명대로 살지 못한 것이다.' 운명론과 거리가 멀었던 공자의 계승자 맹자 역시 '命'을 이해하고 순응하는 것의 중요성을 얘기했습니다. '知命'이 여기에도 등장하지요. '命'을 안다는 것은 자신에게 우연히 던져진 하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이자 동시에 그럼으로써 자기 자신의 소명을 명확히 깨닫는 일일 것입니다. 개인에게 부여된 하늘의 뜻은 물질과 생명을 살리는 일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공자와 맹자는 '知命'에 성공했을까요? 자로가 석문에서 하룻밤을 묵을 때 성문지기가 자로에게 어디에서 오는 길이냐고 물었습니다. 자로가 공자의 문하생이라고 하자 그는 "知其不可而爲之者 지기불가이위지자.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행하려는 사람' 말이군요?"라고 답했습니다. 공자는 죽기 전까지 그런 사람이었던 모양입니다. '天將降大任於是人也 必先苦其心志 勞其筋骨 餓其體膚 空乏其身 行拂亂其所爲 所以動心忍性 曾益其所不能 천장강대임어시인야 필선기고심지 노기근골 아기체부 공핍기신 행불란기소위 소인동심인성 증익기소불능.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사명을 주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흔들어 고통스럽게 하고 그의 몸을 지치게 하며 생활을 궁핍하게 만들어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흔들고 어지럽게 한다. 그것은 그의 마음을 담금질하여 하늘의 사명을 능히 감당할 만하도록 역량을 키워주기 위함이다.' 많은 이에게 힘을 주는 익숙한 이 말은 맹자가 고단했던 자신의 삶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命'을 담담히 인정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사마천도 백이, 숙제와 도척의 예를 들며 부조리한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사유했었지요. 그럼에도 '命'을 인정했기에 그는 궁형의 수모를 이기고 자신의 과업에 몰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인도의 공항과 역에서, 사원과 공원에서, 백화점과 마트에서, 지하철과 릭샤 안에서, 식당과 술집에서, 그리고 거리와 거리에서 나는 저마다의 운명에 따라 삶을 이어가는 수많은 이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누군가는 운명을 숙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주어진 하루하루를 다만 열심히 사는 그들의 목적지는 행복한 내세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부와 노동을 현실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기는 청년들에게 운명은 개척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신분제도가 공고하게 유지되는 사회는 부조리한 것이었고 혁명의 대상이었습니다. 나는 스스럼없이 먼저 다가와 어울리는 인도의 젊은이들과 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습니다. 나의 영혼은 여전히 푸른색이었습니다.
나는 자주 시간을 내어 인도의 전역을 돌아보고 싶어졌습니다. 이곳에는 수많은 양태의 인간의 삶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 삶들은 평범한 물질적 일상 탓에 굳어 버린 나의 뇌에 끊임없이 자극을 가했습니다. 이곳에서 나는 나의 소명을 더욱 뚜렷이 보았습니다.
우주 운동의 근본은 보텍스vortex입니다. 소용돌이입니다. 한 번씩 회오리쳐 땅과 바다를 뒤집어야 지구는 생기를 찾습니다. 혁명revolution은 인간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반복적 회전re-volution입니다. 우리 안의 '命'을 고치고 바꾸는 일이 '혁명革命'입니다. 완전히 뒤엎어 버릴 때 비로소 감춰져 있던 길이 드러나게 됩니다. '지명知命'에서 '혁명'의 실마리는 찾아집니다. '지명' 없이 '애명愛命'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애명'에서 '혁명'의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하는 일은 다르지만 우리가 할 일은 다르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겠지만 우리는 서로의 삶을 혁명시켜 주었습니다. 그것으로 우리 각자의 한계는 충실히 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제 뚜렷하게 확인했던 그 한계를 인정하고 바로 거기에서 우리의 삶은 각자만의 혁명을 위해 다시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뜨거웠던 인도의 날들 위로 멀리서 어둠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노을이 지는데 불현듯 니체가 생각납니다. "...이것이 지금부터 나의 사랑이 될 것이다! 나는 추한 것에 맞서 싸우고 싶지 않다. 나는 비난하고 싶지 않다. 나는 비난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 딴청 부리는 것이 내 유일한 부정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 자주 폭우가 쏟아졌다던 2018년 5월, 나는 땡볕 아래에서 인도의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이제 다시 디오니소스가 될 시간입니다. 인도의 저녁은 8일 내내 맥주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누군가 멀리서 그대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이 여름날 짧게 왔다가는 소나기처럼 그대의 삶에, 아주 가끔, 위안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디에나 힌두 사원이 널려 있습니다. 신발을 벗어두지 않고는 어느 사원에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인도인들이 섬기는 신들에 대한 무지는 곧 인도에 대한 나의 몽매함의 증거이겠지요.
이 나무의 주름에서 나는 인도가 느껴졌습니다. 동시에 우리의 비빔밥이 떠올랐습니다.
이 안에는 말 그대로 큰 황소의 형상을 한 신이 모셔져 있습니다. 맨발의 가난한 인도인들이 어떤 기도를 올렸는지 나는 알 수 없습니다. 나는 다만 당신을 위해 짧게 기도했습니다.
더위를 피해 들어간 맥도날드에도 에어컨이 꺼져 있었습니다. 땀흘리며 싱거운 맛의 햄버거를 먹고 나오니 매장 앞에 굶주린 개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나는 자주 지하철을 이용했습니다. 가끔 좋지 않은 의도를 품고 다가오는 몇몇의 사람들을 빼고 지하철에서 만난 인도인들은 친절했고 대화하기를 즐겼습니다.
지하철 티켓입니다. 그들의 정신에 녹아있는 것이 무엇인지 티켓은 선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서점이 보여 들어갔습니다. '일년 150권 책읽기'를 몇 년 동안 실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일년 동안 단 세 권의 책에 묶여 있는 동안 숫자의 허망함을 깨닫고 말았지요. 책은 그 안에 저마다의 사유의 넓이와 깊이를 품고 있습니다. 여전히 훈장처럼 숫자를 자랑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그들이 1년 동안 내내 읽고도 해를 넘겨야 하는 책을 건네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