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벵갈루루
8일간의 일정으로 인도 벵갈루루에 와 있습니다. 첫날, 5월의 인도는 덥고 더럽고 시끄럽고 위험했습니다. 당장이라도 지구상에서 나를 제거해 버리고 말겠다는 듯 경적을 울리며 전속력으로 달려드는 자동차와 오토바이와 릭샤들은 공포스러웠습니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일은 목숨을 거는 일이 되었습니다. 길을 막고 모여 있는 사람들은 마음을 항상 긴장하게 만들었습니다. 비쩍 마른 몸으로 먹이를 찾아 뜨거운 아스팔트를 어슬렁거리는 개들의 모습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나의 '지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덥고 더러운 거리에서 개들이 먹을 것은 없어 보였습니다. 인도의 거리에서, 개들은 고통스러워 보였습니다. 개들의 고통만큼 인도의 갈 길은 멀어 보였습니다.
아침부터 푹푹 찌는 벵갈루루의 아침 뒷골목엔 이렇게 개들이 널부러져 있습니다.
다음날 다시 배낭을 매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두 개의 힌두 사원을 차례로 둘러보고 호숫가에서 여유로운 오후를 보낼 생각이었습니다.
소 두 마리가 도로 한가운데서 바닥을 핥으며 무엇인가를 먹고 있었습니다. 두 마리의 소는 마치 한적한 들판에 있는 양 여유로워 보였고, 차와 오토바이와 릭샤들은 그런 소들을 피해 유유히 제 길을 달렸습니다. 그 와중에 사람들은 모든 달리는 것들 속으로 몸을 밀어넣은 채 아슬아슬하게 도로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푸짐한 똥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악취를 풍기는 길을 걷고 도로를 건너며 어느새 인도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차량의 흐름 속에 몸을 우겨넣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군요.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화면 오른쪽 밖에는 두 마리의 소를 피해 가려고 수많은 차와 오토바이가 병목 현상을 빚고 있었습니다.
작은 깨달음은 한적한 오후의 공원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던 개들의 모습에서 전해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사람들이 기겁해하며 신고하고 난리를 피웠을 상황에서 사람들은 평온했고 개들도 사람들 사이에서 평화로웠습니다. 개들은 사람들처럼 마르고 꾀죄죄했지만 자유로웠습니다. 끈에 속박되지 않고 자유를 얻은 개들은 원래 자유에는 적당한 굶주림의 고통이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먹이를 구걸하지 않았습니다. 다람쥐들은 사람들이 먹다 버린 과일 조각에 모여 세상에 존재했던 것을 무의 세계로 돌려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늘에서 단잠을 즐기는 개들에게 걱정은 없어 보였습니다.
무리에서 밀려난 것인지 아니면 먹이를 얻어 먹으려는 것인지 찜질방 같은 아스팔트 위에 개가 누워 있습니다.
눈이 닿는 곳엔 어김없이 개가 있었습니다.
긴 시간을 걸어다니며 나는 문득 알았습니다. 선이 그어져 있지 않은 도로 위에서 차들이 갈 수 없는 길은 없었습니다. 차들의 경적은 그저 '나 이렇게 달리고 있으니 조심하시오' 라고 알리는 신호일 뿐이었습니다. 사람과 동물도 정해져 있지 않은 길을 자유롭게 오갔습니다. 늘 그렇듯 자유에는 적당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자유는 그 위험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도록 높아진 자존감을 선사합니다. 인도의 거리에서 나는 자유를 만끽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나의 자유를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나의 자유 속으로 불순하게 파고드는 이들의 표정은 그들의 의도를 너무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음습한 영혼을 감춘 채 화려하게 겉모습을 포장한 사람들이 떠올라 그들과의 대화가 긴장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나라를 여행한 사람들 앞에서 짧은 나의 인도 체험은 우스워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숫자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쓴 책, 다녀온 나라 뿐만 아니라 사람과 돈에서도 숫자를 제거하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읽고 보고 생각하며 깨우친 것을 글에 담담히 담을 수 있듯 인도의 거리에서 느낀 바를 담백하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이곳 인도의 거리는 전생과 현생, 그리고 이생의 생명들이 어우러져 서로가 서로를 삶의 일원으로 존중하는 풍경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철학자들이 자신만의 언어로 난해하게 전개한 타자에 대한 이론들보다 더 생생하게 타자를 타자로 인정하는 것의 의미를 내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깨달은 자는 질문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그 질문이 사람의 어떤 치열함 끝에서 던져진 것인지 아는 까닭입니다. 누구든 자신의 삶 앞에서 사람은 철학자가 됩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투명하게 대면한다는 말은 짐짓 멋있어 보이지만 실제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 앞에 서는 일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명리학적 지혜 없이 사람들의 진로에 대해 조언하고 심리에 대해 평가하는 일이 내 눈에는 위험해 보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까닭을 나의 짧은 지식과 작은 지혜를 나눈 이들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똑똑하고 선량한 사람들에게 내 노력의 결과물을 공유하려 하는 이유입니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게 될 때 자기의 분수를 알게 됩니다. 타고난 그릇, 주어진 길을 이해할 때 비로소 할 일을 알게 됩니다. 마주한 나의 그릇이 작다고 서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순응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일상을 유연하게 대하는 힘을 얻고, 물질과 명예에 얽매이지 않고 정직하게 일과 삶 자체에 투신하는 자세를 갖게 됩니다. 그렇게 나 자신을 갖추게 되면 마침내 평화가 찾아옵니다. 나는 사람들이 인생에서 누려야 할 것은 바로 이 평화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에게는 뜨거운 5월의 인도 한 곳에 흐르고 있는 것과는 다른 방식의 평화가 필요함을 압니다.
이른 시간이지만 꿀맛 같은 수제맥주를 마시러 갈까 합니다. 오늘의 편지는 여기서 마무리 해야겠네요. 시간은 많고 태양은 여전히 높은 곳에 떠 있습니다.
에어컨이 나오는 펍에서 마시는 생맥주 한잔에 더위에 지친 몸은 단숨에 회복되었지요.
침대 위에 2달러의 팁을 두고 나갔다 오면 어김없이 원숭이 한 마리가 웃으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Lalbagh역 부근에 있는 Lalbagh Botanical Garden에는 개와 원숭이가 사람들과 섞여 있었습니다.
호수가 있는 공원의 풍경은 시원했지만 바람 한 점 없어 숨이 턱턱 막혀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