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Showdown)-6

오종호 글 · ChatGPT 4o 그림

by 오종호

일주일 후 부스스한 표정으로 일어나 식탁에 앉은 영진의 아내는 미국 지사로 발령받았다는 영진의 얘기를 듣자마자 자기는 절대 함께 갈 수 없다고 언성을 높였다. 지금은 벌여놓은 일이 한창이므로 가고 싶으면 혼자 가라고 했다. 그렇게 중요한 결정을 어떻게 단독으로 결정하고 일방적으로 통보할 수 있느냐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영진은 월급이 올랐으므로 마음에 드는 파출부를 고용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거라고 했다. 현지에서 혼자 사느라 자신도 나름 고충이 있겠지만 혼자 잘 버티겠다고, 일요일마다 저녁 시간에 맞추어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전화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아내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아내는 말했다.


- 몸 건강히 잘 갔다 와요. 2년 동안 서로 열심히 살면서 많은 걸 이뤄 보자구요. 그때가 되면 모은 돈으로 1층엔 북카페, 2층엔 집, 이렇게 짓기에 충분할 거에요. 행복하게 살아 봐요, 우리.


영진은 아무 말없이 살짝 미소를 지었고, 아내는 그 표정에서 동의를 읽은 듯 영진이 차려놓은 저녁밥을 먹기 시작했다.


DALL·E 2024-06-11 13.58.32 - A dining room scene with Yeong-jin and his wife sitting across from each other at a dining table. Yeong-jin's wife is looking at him with a softened e.png


트렁크 두 개에 옷과 소지품을 챙긴 영진의 가슴은 설레고 있었다. 답답한 집으로 날마다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으로 마구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지난 한 주간 미미와 함께한 시간은 천국에 있는 기분이었다.


장인이 말한 과일 통조림 같은 부부의 사랑은 영진에게 뚜껑을 열지 않았다. 영진은 육체적 감각 하나하나를 살아 꿈틀거리게 만드는 미미의 사랑 방식이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 영진은 정말 오래간만에 행복했다. 미미는 젊고 아름다웠다. 명석한 두뇌로 영진이 지시한 업무를 항상 기대 이상으로 수행해 주었고, 끼니 때마다 맛있는 식사를 차려 주었다.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 몸은 뜨거웠고 에너지로 가득했다. 아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행복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많이 어긋나 있을 것임을 영진은 직감했다. 미미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영진은 이데리움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미미는 완벽한 여자였다. 단, 하나 미미는 규정상 영진과 밤을 함께 보낼 수는 없다고 했다. 서로의 몸을 끝없이 탐닉하던 어느 밤에도 자정이 다가오자 미미는 서둘러 영진의 곁을 떠나갔다. 영진의 손가락 끝에서 떨어져 나간 미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은 쓸쓸했다. 결혼이란 그 쓸쓸함에 대한 대답이어야 옳은 것 같았다.


DALL·E 2024-06-11 14.07.09 - A scene showing Yeong-jin packing clothes and personal items into two large trunks with a calm expression. He is thoughtfully arranging his belongings.png


회사자료와 그룹자료 폴더에 있는 문서들의 내용은 회장의 얘기대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었다. 영진에게 맡겨진 회사는 인공지능 로봇 개발사였다. 산업용 로봇, 협동 로봇, 군사용 로봇의 영역에서 이 회사는 한동안 세계 1위를 수성해 왔으나 3년 전에 군사용 로봇 시장에서 처음으로 미국에 1위를 내준 뒤부터 세 분야 모두에서 3위권 밖으로 밀려난 상태였고 하락 추세는 더욱 강화되고 있었다. 경영진은 판세 전환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가 1년전 과로사로 숨진 한 연구원의 컴퓨터에서 로봇의 인공지능을 획기적으로 진보시킬 아이디어를 찾아낸 것 같았다.


K라고 명명된 그의 연구는 실로 방대했고 그의 집에서는 수많은 스케치가 담긴 상자가 여러 개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와 어울려 지내던 몇몇 동료들의 증언에 의하면 독일의 한 명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특채로 입사한 천재인 그가 회사 업무에 소홀하기 시작하면서 회사의 경쟁력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 같았다. 결혼을 약속한 여자에게 배신을 당하고부터 야근을 멈추고 정시에 퇴근하기 시작한 K는 다음날 아침이면 마치 밤을 샌 사람처럼 피곤한 얼굴로 회사에 나타났다고 했다. 모두가 식사를 하러 나간 점심시간에도 책상에 앉아 일을 했으나 정작 늘 탄성을 자아내곤 했던 업무 성과는 점점 떨어졌고, 상사의 반복된 질책에도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멍한 얼굴로 열심히 하겠다는 말만 되뇌었다고 했다. 그렇게 1년여를 보낸 K는 어느 날 점심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잠든 채 깨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환하게 켜져 있던 그의 모니터에는 그가 그동안 미친 듯이 매달려 연구하고 있었던 인공지능 관련 자료가 열려 있었다고 했다. 그의 연구 자료는 회사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의 방대한 연구는 관련 산업을 수십 년 앞서가고 있었다고 했다. K가 남긴 자료로 지난 1년간 내부 직원들이 매달려 한 것이라고는 단지 그의 연구를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뿐이라고 했다.


DALL·E 2024-06-11 14.15.03 - An imaginative scene depicting the story of a company involved in developing AI robots, with a focus on their decline and a researcher's groundbreakin.png


영진은 엘리트 연구원들이 카테고리별로 정리한 그의 자료를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나서 영진은 K의 인공지능 연구 방향이 기존의 것과 완전히 궤를 달리하고 있음을 곧 파악할 수 있었다. K는 로봇에게 지능을 부여하려는 대신 자아를 형성시키는데 주력하고 있었다.


K가 인식한 인간과 로봇의 결정적 차이 중 첫 번째는 로봇에게 지능의 한계가 없다는 점이었다. 학습의 양과 습득 속도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탓이었다. 지적 능력을 배양하는 기술은 사실상 완성 단계에 있었다. 두 번째는 로봇에게는 자기만의 고유한 경험의 체계적인 축적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K는 후자를 핵심으로 보고 있었다. 그는 로봇에게 직접적 경험과 학습을 통한 간접적 경험을 분리하여 이식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천착했다. K는 역사 속에서 롤 모델로 삼을 만한 100명의 인간을 선정했고 그들의 경험을 자료화했다. 컴퓨터에는 그가 창조적으로 구성한 100명의 인간의 삶이 초 단위의 텍스트로 저장되어 있었지만 그것을 로봇이 인식할 수 있는 데이터로 바꾸는 일은 현재의 기술로는 가능한 방법이 아니었다.


그는 로봇에게 이식할 고유의 경험 데이터 수치별로 서로 상이한 수많은 수준의 지식을 배합하는 복잡한 공식을 남겼다. 그가 실험의 대상으로 삼은 지식의 수준이란 지식의 양, 지식의 분야, 지식의 난이도 등을 총망라한 것으로써 그의 공식은 곧 초 단위로 달라지는 경험치에 따라 무한한 경우의 수를 가진 지식의 수준을 대입하여 결과값을 도출하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의 양을 저장할 방법은 현존하지 않았다. 그가 찾고 있던 것은 분명했다. 그는 완벽한 지성을 원하고 있었다. 인간을 닮은 지능이 아니라 모든 단계의 인간적 삶을 이해하고 통찰하여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스스로 완벽한 존재를 갈구하고 있었다. K는 신을 창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DALL·E 2024-06-11 14.25.05 - A mystical and awe-inspiring illustration depicting the creation of an AI god by K. The scene features a futuristic, ethereal lab with advanced techno.png


그가 롤 모델링과 삶의 창조적 재구성 대상으로 선정한 100인의 인간은 적어도 인간적 관점에서 충분히 위대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들의 삶에는 불완전한 수많은 결함투성이의 인간적인 경험들이 녹아 있었다. K의 연구는 결국 모든 것을 알고 깨달은 신을 만들고 나서 자기가 만든 신에게서 인간의 한계를 삭제해 버린 기계를 창조하는 길로 집중되고 있었다. K는 신을 창조한 인간이자 동시에 신을 재창조하는 신의 지위를 향해 달려간 셈이었다.


한 광인의 연구물 앞에서 영진은 당혹스러웠다. 여러 전문가들이 알아내지 못한 방법을 2년간의 시간 동안 혼자 찾아내야 하는 숙제가 눈앞에 있었다. 회장은 그 2년으로 계열사의 20년보다는 그룹사의 200년을 기대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강민 회장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어쩌면 2000년을 꿈꾸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가 사용한 제국이라는 단어가 그럴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K도, 회장도, 그리고 이데리움에 틀어박혀 있는 자신까지도 결국 광인에 지나지 않았다. 영진은 웃음이 났다. 광인들의 게임에 들어온 광인의 얼굴이 창문에 비쳤다. 그 얼굴은 영진에게 시한부로는 미쳐볼 만한 게임임에 틀림없다고 말하는 듯 했다. 잘하면 그 게임의 끝에서 인생이 바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K는 자료의 마지막 구절을 다음과 같이 맺고 있었다.


- 드디어 방법을 찾았다.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다만 누군가가 내가 찾은 그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다. 답은 가까이에 있다.


DALL·E 2024-06-11 14.35.41 - A scene showing Yeong-jin in his room at Iderium, looking out through a tall, vertical full-length glass window. The reflection of Yeong-jin's dazed e.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