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호 글 · ChatGPT 4o 그림
I. 행복 찾기
나는 매일 밤 하늘을 바라보았다.
밤하늘의 별들처럼
나의 어둠 어디엔가 홀로 떠 있을
행복을 만나고 싶었으니까.
어느 날 복면을 쓴 자칭 신이라는 작자가 나타나더니 이렇게 말했어.
“내가 그대들을 위해 미로를 하나 만들어 두었도다. 그 미로의 끝에 행복을 놓아 두었으니 그곳에 도달하는 자는 누구든 영원불멸의 그것을 누리게 되리라.”
얼굴을 가린 탓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했던 그 신이라는 작자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사람들이 앞 다투어 뛰어가기 시작했다네. 나도 특별히 할 일이 없길래 천천히 뒤에서 따라갔지.
도착해보니 미로가 있는 성의 담장이 얼마나 높던지 사다리를 타고 올라 구경이나 해볼까 하는 생각은 바로 접어야 했어.
젊은 사람들은 이미 정문을 통해 미로의 안으로 사라진 지 오래고 몇몇 나이든 노인들과 어린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하나 둘 모습을 감추고 있었지.
흠. 나는 그때 갑자기 궁금해진 거야. 신이 나타나기 전까지 사람들은 그런대로 재미있게 살았던 것 같거든.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보더라고. 어제까지 가난했지만 서로 웃고 지내던 사람들이 정신 없이 미로로 빠져 들어간 것을 보면 말이야.
글쎄, 난 한 번도 행복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지도 모르지. 어쩌면 행복이 뭔지 개념이 없어서 그런 것일지도 몰라. 왠지 영원이니 불멸이니 하는 단어에 거리감이 느껴진 탓인지도.
생각해 봐. 맛있다고 영원히 음식만을 먹고 사는 삶이나 편하다고 영원히 잠만 자는 삶이 과연 즐거울까? 영원하다면 굳이 지금 뭔가를 해야 할 이유라는 것도 의미 없어질 텐데 말이야. 하여간 나는 들어가지 않기로 했어. 미로 탐험 따위를 하기엔 날씨가 너무 덥기도 했고, 그 보단 신이라는 위인을 만나서 얘기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그랬는지도 몰라.
그래서 신이 있던 곳으로 가 보았지. 하지만 신은 어디로 갔는지 자취를 감추어 버렸어. 실망한 나는 우거진 나무 그늘 옆으로 졸졸 흐르는 시냇물로 세수를 하고 온 몸에 물을 끼얹은 다음 목까지 충분히 축이고는 다시 미로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지.
저녁 때가 되자 사람들이 하나 둘 지친 표정으로 미로에서 나오기 시작했어. 그리고는 가족과 연인을 기다려 만나고서 저마다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지.
다음날 아침이 되자 사람들이 또 다시 미로 앞으로 모여 들더니 저마다 비장한 표정으로 미로로 달려 들어가는 거야. 늦게 온 사람들이 빨리 들어가라고 소리 지르기 시작했으니 그럴 만도 했어. 간혹 땅바닥에 앉아 나뭇가지로 그림이나 그리고 있던 나를 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들도 있었어. 그럼 나도 멍한 표정으로 눈길을 받아주곤 했지.
믿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무려 백일 동안이나 미로 찾기는 계속되었어. 누군가 백일 정도는 정성을 보여야 길이 열릴 거라고 주장했다는 소문도 들려왔지. 어쨌든 간에 백일이 지나자 미로를 찾아오는 사람은 뚝 끊겨 버렸어.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그제서야 약간의 호기심이 발동하더라고. 그래서 나는 긴 막대기를 들고는 혼자 미로 안으로 들어가 보았지.
길에는 푹신푹신한 흙이 깔려 있었고 담장은 예쁜 벽돌이기도 했다가 우거진 넝쿨이기도 했다가 벌과 나비가 그득한 만개한 꽃이기도 해서 전혀 지루한 줄은 모르겠더라고.
내가 이미 얘기했다시피 담장은 정말 높았다네. 그 위를 가끔씩 날아다니는 새들이 까마득하게 보일 만큼 높았어. 그때 딱 한 번 새가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것 같아. 하지만 곧 잊어버렸지. 새가 된다는 것은 더 이상은 흙에다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얘기잖아.
미로의 길 바닥에 나는 가지고 들어간 막대기로 계속 선을 그으며 걸었어. 목이 마르다 싶을 때마다 맑은 물이 담장에서 흘러 나오곤 했어. 그러고 보면 그 신이라는 존재가 나름 배려심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
물을 마시면 기운이 났어. 그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막대기로 그림을 그리곤 했지. 뭘 그렸냐고? 구름도 그리고 바람도 그리고, 또 별도 그렸던 것 같아. 잘 그리지는 못했던 것 같네. 하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그림 그리는 것을 참 좋아했던 것 같아.
이런 이런. 쓸데없는 말이 너무 길어졌네. 그 미로에는 특징 하나가 있었어. 다른 미로들과는 분명히 다른. 막다른 길이 없더라고. 그냥 계속 나아갈 수 있었어. 때론 빙 돌아가는 굽은 길이 나오기도 했고, 어떤 때는 열 번 연속 우회전만 했던 것 같기도 한데 길은 어디론가 이어지더라고. 그러다가 지친 해가 하늘 끝에 간당간당 걸려있을 무렵 처음으로 막대기가 그은 선과 선이 만나게 된 거야. 그곳이 어딘지 짐작하겠니?
후후. 바로 미로의 문 앞이었다네. 내가 선과 선이 맞닿은 그 지점을 얼마나 오랫동안 지켜보고 서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아. 자네도 알잖아, 정말 오래 전 일이라는 것을.
해가 비켜난 자리에 달이 떠오르자 미로의 담장 사이로 보이는 하늘로 별들이 달려 내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 담장들이 인간 세상의 빛을 차단하고 밤하늘을 고이 끌어 안았을 때의 그 어둠에서 쏟아지는 별빛들이란...... 휴우, 눈물이 나고 말았어.
그리고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말 행복하다는 기분이 들었다네. 영원히 그렇게 있고 싶을 뿐이었어. 그 자리에서 그렇게 마지막 별까지 잠들어 버린 순간까지 서 있었던 것 같아. 달마저 삼켜 버릴 만큼 새벽 하늘이 가까이 다가오고 나서야 나는 정신을 차린 것 같아. 그러고는 막대기가 그은 선과 선이 만난 그 자리에 그 막대기를 깊게 꽂아 두고 나왔지. 그 다음날 고향 마을을 떠나고 벌써 이십 년이 지났군. 내 나이도 마흔이 훌쩍 넘어 버렸어, 하하하.
그 날 내가 꽂아두고 나온 막대기가 하루 만에 큰 나무로 자랐던 모양이더군. 글쎄, 세상엔 믿기 어려운 일도 분명 있는 법이니까. 그날 밤 내가 본 그런 별빛이라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 물론 어디까지나 나의 기분일 뿐일세. 나무가 어찌나 크게 솟아 올랐는지 나무줄기와 가지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미로의 담장들이 모두 무너진 모양이야.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담장이었으니 자네도 한 번 상상을 해보게, 그 나무의 덩치를 말이야.
그 나무 아래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고 하네.
'내가 신이라면 바로 이 순간을 창조하고 싶다. 그리고 그것을 나의 행복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래, 그랬지. 막대기를 꽂기 전 내가 막대기로 땅에 쓴 글이었네. 그 글을 쓴 사람이 정말 나였는지 사실 그것도 잘 모르겠네. 그때 나는 나의 이름조차 잊고 있었으니까. 나는 하늘에 신이 있다면 땅에는 시인이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네. 그래서 글 끝에 '시인'이라고 쓰고 마무리를 했네. 나는 미치도록 그 순간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 하지만 아침이 되어서야 나는 다시 깨달았다네. 어제의 그 순간은 다시는 내게 오지 않을 것임을, 그 철저하게 예기치 않은 마주침이 아니고서는 그 순간은 이미 새롭게 창조된 것이 아니라 완벽히 재연된 것임을.
여하튼 고향 사람들은 밤하늘이 찾아오면 나무에 열매처럼 맺히는 그 별들을 보게 된 것 같아. 그 별 아래에 서면, 그 별 아래에서 손을 잡고 서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그렇게 시작된 모양이더군. 왜 안 그렇겠나? 미로의 담장을 무너뜨릴 정도로 하늘로 올라가 버린 나무의 키를 떠올려 본다면 말일세.
지난 이십 년간 나는 자연이 선사해 준 수많은 뭉클한 순간들을 함께 했네. 그 순간들은 언제나 눈물방울로 기억되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내리지 않은 순간은 참 행복은 아니었던 것 같아. 눈물이 별을 바라보는 내 시야를 흐리게 했지만 그때마다 나에게 시를 쓰게 해주었다네. 나의 이 시들은 그러므로 나의 시가 아닌 것이야. 그 어떤 것도 내가 쓴 것은 없는 셈이네.
이제 내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이유를 밝히는 것으로 이 쓸데없이 길기만 한 얘기를 마무리 지어야 할 시간이 왔군. 그 나무가 보고 싶어졌네. 아니, 그 나무에 매달린 그 별들이 다시 보고 싶어졌네. 무엇보다 그 나무와 그 별들을 손잡고 함께 보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네. 그 전설이 맞다면 우리의 사랑도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지난 이십 년 동안 나는 행복이란 한 순간 창조되는 빛과 같은 것이라고만 여겼네. 밤새 하늘을 바라보던 어린 시절의 그 순간처럼 완벽한 절대 행복의 순간만을 찾아 다닌 것이지.
하지만 행복이란 순간이 아니었더군. 행복은 사람이었어. 행복이란 오직 사람과 함께 오는 것이었다네. 함께 있을 때도 함께 있지 않을 때도 그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생각이 나를, 나의 온 몸과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네.
이것이 내가 지난 이십 년의 여행 끝에 찾은 행복의 실체라네. 끝까지 들어준 고마움으로 이 시집을 자네에게 선물로 동봉하네. 이제 나의 시는 전혀 새롭게 쓰여질 것이라네. 그럼 언제 나의 고향에서 한 번 볼 수 있기를...... 친구여, 몸 건강히 즐거운 여행 이어가길 바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