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묻기(Asking Happiness)-3 (완결)

오종호 글 · ChatGPT 4o 그림

by 오종호

III. 행복 놓기


나는 가끔 심심했다.

나를 심술궂다고 생각지는 말라.

나는 그저 그곳에 슬며시

행복을 놓아둔 것뿐이니까.




나는 신의 이름을 빙자했던 그 사람이다. 그렇다. 사람이다. 다만 그대들과 조금 다른 능력을 갖고 있을 뿐. 정확히 말해 한때는 설계자로 스스로를 불렀던 존재로부터 특별한 능력을 부여 받은 사람이다. 그와 나는 우연히 마주쳤다. 그와의 만남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들려주도록 하겠다. 오늘은 아니라는 얘기지.

나는 그대들 틈에 섞여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평범, 소박, 단출, 담백, 이런 단어들을 나는 참 좋아한다. 그대들은 그 소중함을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DALL·E 2024-06-06 11.45.14 - Create an illustration in the style of the provided image. The image should depict the back view of a young child-like deity standing alone, silhouett.png


평범하게 살아야 하는데 가끔은 무료할 때가 있다. 그대들도 그렇지 않은가? 만일 그대가 고대의 무공을 전수 받아 하늘을 휙휙 날아 이동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면 아주 가끔 출근 시 지각의 위기에 처했을 때 슬며시 사용하지 않겠는가? 내가 심심할 때 하는 일이 딱 그 정도 수준이다.

DALL·E 2024-06-06 11.58.31 - Illustration for page 66 of a book, showing a man's silhouette leaping across high-rise building rooftops on his way to work, this time without a tie .png


그날 그 마을을 우연히 지나다가 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그 둘의 대화는 대략 이랬다.


“아버지, 이곳도 이제 좀 달라져야 해요. 농사 그만 지으시고 땅 팔고 도시로 가서 편히 사시자구요. 건설사가 가격 후하게 쳐준다잖아요.”

“필요 없다. 평생 이곳에서 살았는데 내가 가긴 어딜 간단 말이냐?”

“아버지, 우리 좀 행복하게 살자구요. 땅 팔면 아버지하고 저희 자식들 다 그렇게 살 수 있잖아요?”

“나는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 네 엄마도 여기 묻혀 있어. 내가 도시에 가서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다 네놈들 좋자고 하는 거 아니냐? 나 죽으면 그때 이 땅 팔아서 많이 행복하게들 살고 이제 그만 찾아 오거라.”

DALL·E 2024-06-06 12.15.48 - Illustration for page 67 of a book, focusing solely on the silhouettes of an elderly rural father and his taller adult son from the city, arguing insi.png


평화로워 보이는 그 마을에서 어느 부자가 다투는 소리에 나는 슬며시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미로를 만들었지. 딱히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을 뿐이었다. 누군가 내가 설계해 둔 지점을 발견하리라는 기대 같은 것은 애초에 없었고.

DALL·E 2024-06-06 12.19.11 - Illustration for page 68 of a book, depicting a magical scene where a labyrinthine castle is being created in a field from the tip of a person's finge.png


역시 예상대로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하게 살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만일 시인이 된 그 친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 지점을 찾았다면 그는 그 나무 아래에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했으리라는 것이 내 추측이다.


그런 멋진 나무에 걸린 별들을 보며 행복감에 젖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이후로도 평생 행복해지기 쉽지 않을 것이다. 행복이 얼마나 은근한 것인지 그는 알 수 없을 테니까.

DALL·E 2024-06-06 12.26.12 - Illustration for page 69 of a book, depicting a fantastical and majestic tree caught in a symbolic, small maze under a star-filled night sky with an e.png


예상하겠지만 비로 인해 산중에서 사고를 당할 뻔한 여행자에게 불빛을 보낸 것도 나다. 그렇게 순수한 친구가 비명횡사하는 것을 나는 도저히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대들의 생각에 대해 다시 한 번 답하자면 나는 신이 아니다. 나는 도처에 두루 존재할 수는 없다. 세상에서 아까운 목숨들이 얼마나 덧없이 사라져 갔는가? 나도 잘 안다. 그래도 나는 내가 없는 곳에서 뭔가를 할 수는 없다. 사실 내가 있는 곳에서 해서도 안 되는데 나도 타고난 성정이라는 것이 있어서 외면이 잘 안 된다. 그렇다고 나로 하여금 위험에 처한 지구인들을 구하러 다니라고 강요하지는 말아 달라. 내가 원하는 삶은 그저 평범한 것이다. 나의 연인과 함께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나의 참 행복이다. 나는 그 행복을 만끽하고 싶은 한 명의 사람일 뿐이다. 나는 그때 우연히 그 산에 있었다.

DALL·E 2024-06-06 12.33.27 - Illustration for page 70 of a book, depicting a single, cohesive scene of a torrential rainstorm in the mountains. Instead of showing a deity, represe.png


그 친구의 기억을 훔쳐보다 보니 가슴이 아팠다. 병든 연인을 일찍 떠나 보낸 후 그는 함께 구상했던 삶을 살아가기를 포기해 버렸다. 그저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나그네의 길을 택한 것은 사는 대로 살다 보면 더 살고 싶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심정 때문이었다. 그는 부모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 짓만은 차마 할 수 없었다. 유랑자의 길로 들어선 자식을 그의 부모는 애틋한 마음으로 보내 주었다.


살아 있는 자식을 보는 것보다 부모에게 다행스러운 일이 있으랴? 무엇을 하든 자식 고유의 인생이다. 부모들이여, 간섭하지 말라. 그대들조차 만족해하지 못하는 그대들의 인생은 정답이 아니다. 황망히 떠난 자식의 얼굴을 평생 거울 속에서 마주하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저 바람처럼 살다 가도록 내버려두라.

DALL·E 2024-06-06 12.39.24 - Illustration for page 71 of a book, depicting a young man in his late twenties weeping at the grave of his deceased lover. The scene is emotionally ch.png


그래도 여행을 통해 그는 많이 웃었다. 그것이 인간의 장점이다. 매순간 생각에 전념할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낯선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어울리며 대화하고 술을 마시는 시간만큼은 인간은 기억에서 자유롭다. 그것이 여행이 선사하는 치유다.


그대들이여, 웃고 싶으면 여행을 떠나라. 걷다 보면 다 살아진다. 죽을 것 같을 땐 무작정 그대의 장소를 벗어나 다른 세계로 건너가라.

DALL·E 2024-06-06 12.44.45 - Illustration for page 72 of a book, depicting the middle-aged backpacker protagonist from the novel's second part, who is around 40 years old, with a .png


시인처럼 여행자 친구도 나의 의도를 잘 알아차렸다. 나의 사람 보는 눈은 거의 틀리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도 순수함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대들은 믿어도 좋다. 이 혼탁한 인간 세계에서 때묻지 않은 영혼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벌레만도 못한 잡스런 인간들이 도처에 널려 있는 시대에 순수한 사람들을 믿어 주지 않고 누구와 더불어 친구가 될 것인가?


물론 순수하다고 해서 완벽할 수는 없다. 순수한 만큼 때로는 지나치게 감정에 충실할 때가 있다는 것이 그들의 단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잠시 잠깐일 뿐, 그들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성찰하여 더 나은 인간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순수한 영혼만이 다른 영혼을 구원한다. 잊지 말라.

DALL·E 2024-06-06 13.00.38 - Silhouette of two backpackers with their arms around each other's shoulders, watching a sunrise. They are standing close together, with large backpack.png


나는 이 둘의 첫 만남을 지켜 보진 못했다. 다만 두 사람의 편지를 통해 우연히도 둘다 나와의 인연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연, 이 얼마나 아름다운 단어인가? 우연히 만난 두 존재가 우정 어린 사이가 되고, 우연히 나와 연결되었다는 사실은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좋은 사람과 좋은 사람이 만나는 것을 보는 일은 즐겁다. 그들이 만나 세상을 탁하게 만드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기에.

DALL·E 2024-06-06 13.05.18 - A series of pastel-toned illustrations depicting various moments of friendship between good people. Scenes include two friends sharing a laugh, helpin.png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계속해서 흐뭇한 마음을 느끼고 싶기에 이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가 우연히 머무르는 곳에 행복 놓기를 이어가고자 한다.


만일 그대들 중 누군가가 다른 사람들이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려울 신비로운 일과 마주친다면 아마도 내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대는 순수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앞으로 나는 순수하지 않은 사람들 부근에는 절대 오래 머물지 않을 작정이기 때문이다.

DALL·E 2024-06-06 13.09.47 - A beautiful scene where light descends from the sky like shimmering powder, coloring the world in rainbow hues. The light spreads across various lands.png


나는 지금 거리를 거닐고 있다. 순수한 누군가의 마음속 고통이 느껴진다. 약속 시간이 임박했는데 어쩔 수 없다. 조금 늦을 수밖에.


이번엔 도시 한복판이니 나무도, 동굴도 안 되겠지. 흠. 아무래도 봄에 어울리는 꽃가루가 적당할 듯싶다. 색을 좀 다채롭게 써서 화사한 꽃가루를 날려 보낸다. 순수한 사람의 창가를 향해 꽃가루가 날아간다.


내일 그대의 창 틈이나 베란다 빈 화분에 이름 모를 예쁜 꽃이 피어난다면 내가 오늘 서 있는 곳은 그대의 창밖이리라. 만일 그렇다면 내가 그대를 위해 놓아둔 행복을 부디 알아챌 수 있기를.



행복이란 정직한 일상 도처에서 돋아난다. 화분 안에서도, 폴폴 먼지가 이는 시골길 위에서도, 그리고 밤하늘에서도 행복은 탄생한다. 태어난 행복에 미소 지어라. 그럼 행복은 건강하게 잘 자랄 것이다. 그대들이 행복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

DALL·E 2024-06-06 13.17.43 - A sophisticated and stylish illustration with a touch of mystery. The scene depicts a bustling cityscape with numerous sleek buildings, cars, and peop.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