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은 편의 문이 열리고 지교가 천천히 걸어 나오던 그 순간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 과장이라고 표현한다 해도 나는 분명 지교의 눈과 처음 마주친 바로 그 찰나 우리의 만남이 운명적으로 예정되어 있음을 직감했다.
안내견 자격 시험에서 탈락한 지교는 재능을 안타까워한 안내견 학교 측에서 특별히 마련한 최종 2차 시험에서마저 결국 탈락하여 일반 분양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아내가 삼성안내견학교에 일반 분양을 신청한지 일주일 만에 면접일이 잡혀 지교를 만나게 되었으니 보통 인연은 아닐 것이다. 지교가 최종 시험에 합격했거나 아내가 조금만 늦게 신청을 하여 다른 사람이 먼저 면접을 봤거나 하면 인연이 어긋났을 테니 말이다.
훗날 지교가 떠난 이후 얼마나 힘들 것인지, 그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슬픔의 크기에 대한 두려움이 내겐 늘 있다. 운전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것 만으로도 울컥함이 밀려오고 눈물이 핑 돌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 날은 오고야 말 것이다. 그러나 이별이 예정되어 있다고 해서 사랑을 아끼겠는가. 나는 다만 사랑하고 웃고 또 그리워하며 울 것이다. 함께 일어나고 함께 잠들고, 함께 산책하고 함께 여행가며 나는 지교와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들은 가족 그 이상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결코 인간보다 열등하지 않다는 것을, 매 순간 우리의 가슴을 사랑과 기쁨으로 가득 채워주는 천사와 같은 존재들임을…
지교 아빠로서의 또 하나의 삶을 살게 된 이후 9년이 흐르는 동안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그 동안 무지했던 반려동물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동물을 바라보는 성숙한 시야를 얻게 되었으며 생명에 대한 무한한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지교와 산책하고, 산책하며 대화하고, 대화하며 사랑한다. 사랑하면서 알게 되었다. 지교가 있음으로 해서 내 삶에 빛나는 순간들이 생겨났음을. 반복되는 일상이 그 순간들로 매번 특별해 진다는 것을, 그 순간들이 내 삶을 특별하게 만든다는 것을.
그 순간들의 의미를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이들과 공감하고 싶다. 반려동물과 아직 만나지 못한 이들에게는 예비되어 있는 그 순간들의 기쁨을 누리라고 권하고 싶다. 더 나아가 반려동물들이 학대 받지 않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아름다운 생을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바로 우리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최고의 세상임을,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부디 반려동물들을 열등한 먹거리나 장난감과 같이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어 주기를 얘기하고 싶다. 그들은 우리의 식량과 스트레스 해소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며 영혼을 정화하는 위대한 동반자들임을 간곡히 말하고 싶다.
반려동물과 사랑으로 함께하는 모든 사람, 지교와의 인연을 맺어준 삼성안내견학교 박병배 훈련사님, 지교를 사랑으로 키워 주신 홍아름 훈련사님, 나의 가족, 그리고 지교를 아껴주는 벗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동물도 사랑한다. – 임순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