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니체

by 오종호

甲甲

辰戌辰


癸壬辛庚己戊丁丙乙

未午巳辰卯寅丑子亥 (8, 1844)

-이 세계는 힘에의 의지다. 그 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너희 역시 힘에의 의지다. 그 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니체의 사주입니다.


니체를 흔히 ‘망치의 철학자’라고 부릅니다. 기존의 사유 전통을 파괴하고 새로운 가치를 세우려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사주는 그가 가치 전복과 수립을 위해 사용한 도구는 망치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니체는 자기가 태어나 발 딛고 살고 있는 세상에 자신의 사유를 불어넣음으로써 세상의 가치 토대를 뒤흔들어 붕괴시키는 방법을 택했던 것입니다. 가치를 하나하나 때려 부순 것이 아니라 기반 전체를 무너뜨리는 방식, 이것이 니체의 철학하기였다고 사주는 말합니다. 우리는 그의 말에서 이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나의 운명을 안다. 언젠가 나의 이름에는 엄청난 사실이 추억으로 연상될 것이다. 즉 세상에서 전대미문의 대 위기와 가장 심원한 양심의 갈등, 그리고 이제까지 신뢰받고 요구되었으며 신성시되었던 모든 것에 거역하며 만들어졌던 결정에 대한 추억 말이다. 나는 인간이 아니다. 하나의 다이너마이트이다…”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술토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巳火 철학적 사유의 화력, 진술충의 폭발과 지반의 붕괴, 무너지고 전복되는 갑갑이라는 기존의 가치와 전통들. 니체는 망치가 아니라 다이너마이트였습니다. 망치를 상징하는 경금이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직접적인 망치질로 깨부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언더그라운드에서 망치보다 강력한 폭발을 추구한 것입니다.


무인대운 기축년(1889) 을축월, 여행을 하고 있던 니체의 앞에 눈이 녹아 질척거리는 진흙탕에 발이 빠진 채로 온몸으로 마부의 채찍을 감당하던 말이 보였습니다. 마부는 진흙탕에서 마차를 빼내기 위해 끊임없이 말에게 고통을 가했고 몸이 찢기는 고통 속에서 말은 몸을 일으켰다가 무너지기를 반복했습니다. 말에게 달려간 니체는 말을 껴안고 통곡하다 정신을 잃었습니다. 이때가 니체가 정신을 놓은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중년의 니체가 자신이 평생 쌓아 올렸던 철학의 붕괴를 경험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자신의 삶의 굴레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채로 끝없이 고통 받으며 사는 존재들이 있다는 자각이 그의 가슴 속에서 극심한 슬픔의 감정을 터뜨렸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성숙한 니체 철학의 핵심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가 기획했던 디오니소스적 긍정성, 전력을 다하는 삶, 힘에의 의지, 힘에의 의지를 실현하는 주인도덕, 주인도덕을 실천하기 위해 현실을 끊임없이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마침내 극복에 성공하는 위버멘쉬로서의 삶이 어떤 인간들에게는 허상이자 고통의 근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고통받는 말에 감정이입하는 순간 깨달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듯이 니체의 철학은 수많은 아포리즘과 상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낙타에 투영하여 경멸했던 노예도덕의 실체가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 말의 고통으로 현신했을 때 니체 안으로 낙타와 말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생생한 고통이 밀려들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삶이란 결코 영원히 회귀해도 좋을 만큼 ‘운명에 대한 사랑’을 통해 행복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무인대운, 지지 모두가 동한 상태에서 인목이 들어오면 인목의 생기는 급속도로 상하게 됩니다. 그가 새롭게 창조했던 인목이라는 가치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것이 갑목으로 드러나 있다가 기축년에 갑기합으로 사라집니다. 가치의 실종과 같은 물상입니다. 동시에 목기에 문제가 생기면 화기로 향하는 피의 흐름에도 문제가 생기니 사고방식, 정신상태가 망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자체로 뇌종양, 뇌출혈 등의 물상입니다.


기축년, 축진파, 축술형까지 일어나 정신을 상징하는 진중 계수에 문제가 생기고 진중 을목 자신의 생기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을축월, 상한 을목이 축토 위에 드러나니 직접적으로 생기가 상하는 것입니다. 축토에는 소의 물상이 있으니 말과의 조우로 인해 니체가 정신을 내려놓게 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셈이었습니다. 니체의 잔병 치레, 두통, 조울증과 같은 병력도 사주에 암시되어 있습니다. 수기의 고갈이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니체에게 있어 정신이상이란 어쩌면 다시 어린아이의 정신상태로 회귀하는 행위였을 지도 모릅니다. 니체는 니체답게 정직하게 절망한 것이 아닐까요? 그 절망 위에서 그는 다시 새로운 철학을 쓰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했지만.


‘다이너마이트의 철학자’ 니체의 삶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철학을 담은 말과 글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가끔 자문해 봐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힘을 주느라 피폐해져 가는 니체의 몸과 정신이 사주에서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자신만을 사랑해주는 여인과의 행복한 시간을 누리기 어려운 사주 구조대로 평생 혼자 살다간 니체의 충족되지 못한 욕망이 한 남자로서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에게 고독한 시간이 없었다면 우리는 니체라는 위대한 유산을 우리의 정신 속에 물려받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사랑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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