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기행Final

by 오종호

보물이 그곳에 있었다.


마음이 급했다. 이제 짧은 여행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바래길의 한 코스라도 종아리에 팍팍하게 힘줄이 잡히도록 걸어 보고 싶었다. 체크아웃을 하며 펜션 주인에게 어느 코스가 적당한지 의견을 구했다. 봄철 산불방지기간이라서 입산이 금지된 구역이 많을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혹시 두모마을을 아느냐고 역으로 물어왔다. 처음 듣는 생소한 이름이었다. 유채꽃이 절정일 것이라고 했다. 시간이 많지 않다면 욕심 내지 말고 이번에는 두모마을을 보고 가라고 했다. 아직 크게 알려지지 않아서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데 사진작가들이 먼저 알고 오는 곳이라고 했다.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이번에 남해에 온 것은 어쩌면 두모마을 유채꽃을 보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네요.” 서울에서 내려와 펜션을 차린 주인의 말에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두모마을의 주소를 알아내고 클릭을 유혹하는 몇 개의 블로그를 외면한 채 차에 시동을 걸었다.



namhae8.jpg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의 발을 따라 완만하게 계단을 이루며 내려간 다랭이 유채꽃밭이 바닷가에 터를 잡은 마을 입구까지 치렁치렁 이어진다.


남해의 보물이 이곳에 숨겨져 있었다. 내 것과 합해서 모두 네 대의 승용차만 도로변에 세워져 있는 한적한 곳에 보물섬이 간직하고 있던 상자가 열려 있었다. 바람이 불면 노란 꽃가루들이 날아올라 금방이라도 세상을 온통 황금빛으로 채워 버릴 것만 같았다.


굽이굽이 길을 따라 내려가자 입구와 마을의 중간지점에 키 큰 나무 몇 그루가 하늘을 가리고 서 있다. 여행자의 땀을 식혀 주려는 나무의 배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무렵, 길가에 무덤 하나가 덩그러니 자리잡고 있는 것이 보인다. 죽은 자가 누워 있는 자리까지 손을 뻗어 그늘을 드리운 나무들의 마음이 나는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죽어서까지 자신의 삶이 꽃처럼 피어 있었던 마을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궁벽진 마을에서 은둔자처럼 뿌리박고 살다간 누군가를 위해 차양처럼 햇빛을 가리는 나무 아래를 사람들은 그의 영원한 안식처로 삼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namhae9.jpg

양 옆의 돌담이 걷는 재미를 더해준다. 들어가는 길의 초입에는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높이의 돌담도 있다. 그 담 위에 올라 장난을 치며 걷는 연인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드넓게 펼쳐진 유채꽃 담요의 가장자리에서 노부부가 유채꽃 줄기 밑동을 베어 볏단처럼 바닥에 차곡차곡 눕히고 있었다. “어디에서 왔소?” 할아버지가 낫을 내려놓고 말을 걸어왔다. “서울에서 왔습니다.” 공손히 대답을 한다. “멀리서 여기까지 왔네. 여기가 보기는 좋아도 늙은이들이 농사짓기는 힘들지. 군에서 유채 농사 지으라고 돈 주는디 이거 다 죽일 수도 없고. 대간하오. 기경 잘 하고 가시오.” 고마운 마음에 오래된 귀가 알아듣기 편하도록 목청을 높여 “네,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를 꾸벅 한다.


젊은이들이 시골을 떠나는 이유는 어쩌면 마음 놓고 하루도 편히 쉴 수 없는 일상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는 평화롭고 여유로워 보여도 새벽같이 일어나 가꾸고 또 살펴야 하는 지루한 일상의 반복.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궂으면 궂은 대로 할 일도 많고 걱정할 일도 많은 농사일과 바다 일이 젊은 가슴들을 숨 막히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땅에 붙어 한 해를 버티고 또 한 해를 버텨도 남는 것은 낡은 집처럼 쇠잔해진 몸뚱이 하나 뿐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들의 등을 자꾸 밖으로 떠미는 것일지도.


두모마을의 유채꽃은 저절로 자라나지 않았다. 가을에 파종을 마친 늙은 농부의 손이 있었고, 겨울을 나게 해 준 따뜻한 바닷바람과 햇살이 있었다. 우리의 눈을 감격시키는 많은 것들은 언제나 누군가가 어디에선가 자신의 삶을 묵묵히 바친 결과로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를 키운 것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부모의 거친 손이 있었고, 고향을 증오하며 떠나도록 밀어낸 어린 날의 광풍이 있었다. 책방으로 잡아 이끈 소녀의 하얀 손이 있었고, 가슴을 데운 책들이 있었다.


사람은 머무른 자리에서 끊임없이 벗어나야 한다. 머물 곳을 찾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아무것도 우리 곁에 머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낯선 곳에서 깨어난 횟수가 한 사람이 위대해 질 수 있는 기회의 총합일지도 모른다. 일을 잊고 사람을 떠나 달려간 남해에서 나는 또 하나의 고향을 만났다. 바다가 끝나는 곳에서 땅이 시작되었고, 땅이 시작된 곳에서 사람들도 나무도 풀도, 그리고 꽃도 저만의 사연으로 삶을 피워내고 있음을 보았다. 아무렇게나 툭 던져진 이 세상에서 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나의 할 일을 찾기 위해서는 결국 멈추지 않고 매번 떠나야 하는 것임을 알았다. 새로운 내일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낯선 현장의 가슴 속을 두발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몸으로 깨달아야 함을 배웠다. 이 봄, 나를 키운 유채꽃 향기를 품고 나는 서울로 향한다. 머지 않아 아카시아 꽃이 지천일 것이다. 그 해, 나를 키운 아카시아 꽃처럼 이 봄의 유채꽃을 늘 가슴에 품고 달릴 것이다.


namhae10.jpg

손을 꼭 잡고 거니는, 꽃을 닮은 젊은 연인에게 한컷 부탁했다. 이 유채꽃을 만난 행운을 잊지 않고 싶었다.


나는 아카시아 꽃을 먹었다네

앞산 위에 오르면 하이얀 꽃

얄따란 송편마냥 매달려 하늘거렸네

오월은 햇살이 지천

또랑가에 풀잎이 머리카락처럼 자랄 때

송사리 잡다 옷 젖으면 금세 허기가 졌지

오월은 바람도 지천

강아지를 닮은 콧구멍이 벌렁거려 오면

햇살은 옷을 다리고 나는 아카시아 꽃을 먹었다네

옆 동네서도 모여든 코 밝은 벌들은 꿀을 따고

하늘만 보면 배고팠던 시절,

나는 아카시아 꽃에서 사랑을 배웠다네


- 나는 아카시아 꽃을 먹었다네 / 오종호


매거진의 이전글남해기행I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