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기행III

by 오종호

바다처럼, 사람이 보고 싶어졌다.


드디어 다랭이 논이 있는 가천마을로 향한다. 어디든 잘 닦여 있는 남해의 도로는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 중에서도 보리암을 내려와 바다와 만나기 시작하는 해안도로에 접어들어 가천마을에 도착하기까지의 30여분의 코스는 무척 아름다웠다. 운전하는 내내 좌측에서 펼쳐지는 남해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창문을 열고 바다 내음을 만끽하며 여유로운 감상을 하다 보면 움푹 땅이 꺼져 내려앉은 듯 눈앞에 그토록 그리던 마을 하나가 그림처럼 서 있다.


평일에도 주차장에는 관광버스가 들어차 있었다. 마을을 굽어보고 있는 도로를 한 바퀴 휘돌아 전체를 조망하고 싶었다. 운 좋게 정자가 세워져 있는 포토존 옆의 주차구역이 비어 있다. 날씨도 바람도 이렇게 뭔가 잘 풀리는 날이 있다. 한없이 드넓은 것 같아도 하늘이 전부 내려앉기엔 비좁아서 일까. 하늘이 너도나도 자리를 비집고 들어서인지 바다의 빛깔이 하늘보다 몇 배는 푸르다. 아직 잎이 다 돋아나지 않은 나무들 위로 산턱까지 아지랑이처럼 이어진 다랭이논의 곡선이 정겹게 다가온다. 모두들 바다를 향해 고개를 내민 모습. 하기야 이 바다를 두고 사람인들 나무인들 논인들 어디로 시선을 돌릴 수 있다는 말인가.


터벅터벅. 힘을 주지 않아도 저절로 몸을 잡아 이끄는 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선다. 단숨에 바다로 내려가기는 왠지 아까운 기분이 든다. 건빵의 알사탕처럼 잠시 아껴두었다가 마지막에 즐기고 싶은 풍경이 있다. 갈지之 자를 촘촘히 그리며 마을의 속살을 감추어 둔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늘을 만들어줄 나무가 없는 지라 해가 샛노란 봄 햇살을 얼굴에 물처럼 끼얹는다. 봄볕은 며느리를 쬐이고 가을볕은 딸을 쬐인다고 했던가. 모자를 깊게 눌러쓴다. 담벼락마다 벽화가 그려져 있다. 소를 모는 농군도, 김을 매는 아낙들도, 유채꽃도, 보리도, 호박도, 유자도 따뜻하게 벽을 채우고 있다. 어느 집은 담이 모자라선지 기와 지붕에까지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다. 그렇게 걷다 보면 멀리 바다가 드러났다가 숨기를 반복한다. 대문이 열린 집의 마당들은 고즈넉하지만 쓸쓸하다.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도로 쪽으로 고개를 드니 눈길이 닿는 곳에 익숙한 연예인의 이름을 크게 적어 놓은 카페의 간판이 걸려 있다. 유명해진다는 것에는 책임이 따른다. 알려진 이름 석자를 어떻게 활용하는 지에 따라 이름에 빛이 더해지기도 하고 욕이 더해지기도한다. 굳이 남해 끝자락까지 큼지막하게 이름을 내려 보내서 장사수단으로 써먹어야 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다랭이 마을의 풍광을 해치는 대신 함께 어우러지도록 외관을 꾸몄을 때, 찾아든 손님을 매혹시키는 특색 있는 내부를 가꿨을 때, 입구 한쪽에 자그마하게 걸려 있는 이름이 얼마나 빛이 날 것인지 생각하는 지혜가 아쉬웠다. 여행자에게는 유명한 사람이 다랭이 마을 카페의 주인이라는 사실보다 다랭이 마을의 멋진 카페의 주인이 알고 보니 유명한 사람이었다는 느낌이 소중할 것이므로.


namhae4.jpg

포토존에서 셔터를 누르면 가천마을의 정경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산이 흘러내려 단애 끝에서 멈추었고 사람들은 한 뙈기의 땅이라도 더 일구어 먹거리를 수확하기 위해 계단식 논을 만들었다. 멀리서 보면 모내기를 마친 듯한 모습이지만 가까이 가서 확인해보면 초록빛의 정체는 모두 마늘이다. 논에 마늘이 심어져 있는 이유가 이 마을의 슬픔이었다.


namhae5.jpg

바다가 마치 계곡에 고인 물처럼 보인다. 하루 종일 이 정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바다를 닮은 마음을 갖게 될 것만 같다.


모를 낸 듯 보였던 초록빛의 작물은 마늘이었다. 그러고 보니 마늘의 수확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커피와 함께 칡즙이며 과일주스 등의 음료를 파는 조그만 가게주인은 젊은 사람들이 도회지로 떠나고 마을을 지키는 나이든 사람들만으로는 가파른 경사를 오르내리며 맨몸만으로 농사를 짓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가을에 파종하여 남해의 찬 겨울바람을 견디는데 마늘 만한 작물이 없다고 했다. 유채꽃의 파종과 수확시기도 교묘히 마늘과 맞물려 논에서 마늘과 유채꽃이 사라지고 난 뒤의 풍경이 문득 궁금해졌다. 지원금 몇 푼을 쥐어주는 것으로 몸에 버거운 농사를 지으라고 나이든 사람들을 몰아세울 수는 없는 노릇일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집에서 ‘민박’ 푯말을 걸고 있었다. 넘치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농사보다 덜 힘들면서 수지가 맞는 일일 것이었다. 동시에 실제 거주민의 이야기를 듣기 좋아하는 여행객들에게도 나쁘지 않은 일일 거였다. 가천마을의 풍경을 지키는 것은 아마도 지자체의 몫으로 남은 것 같았다. 여전히 도시는 젊은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먹이를 가리지 않고 삼켰다가 입맛에 맞지 않으면 뱉어 버리는 도시의 잔인한 폭식성이 나는 두렵다. 젊은이들을 잡아 두지 못하는 시골의 무력함이 나는 딱하다.


namhae6.jpg

흙이 멈춘 곳에 바다가 있었다. 나무가 경계처럼 줄지어 선 곳 안쪽에 곱게 피어난 유채꽃이 바다 너머가 어느 방향인지를 말해주는 듯하다. 물마루 저 너머에서 찾아와 노랗게 내려앉은 봄이 있는 곳, 이곳은 남쪽이다.


namhae7.jpg

바다에 접해 있으면서도 논을 일구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해안을 보면 알 수 있다. 사람이 바다로 나아갈 수 없도록 막아선 거친 바위들이 이 마을을 특별하게 키워준 숨은 공로자일지도 모른다.


우울한 생각에만 빠져 있도록 경치는 내버려두지 않았다. 걷고 또 걷게 만들었다. 바람은 햇살을 쉼 없이 실어 날라 유채꽃 위에 뿌리고 다녔다. 휴대폰의 카메라 렌즈에 쏟아져 들어오는 햇볕으로 눈을 똑바로 뜨기가 쉽지 않았다. 모자 챙 속으로 눈을 숨겼다. 바닷바람에 햇살의 온도가 서서히 내려갈 무렵, 바다에서 멀어져 오르막길을 거슬러가는 동안 자꾸만 고개가 등뒤로 돌아갔다. 바다가 조금만 더 같이 있자고 부르는 것 같았다. 떠나지 말라고, 젊은 사람들이여 이곳에서 함께 살자고 외치는 것 같았다. 나도 바다처럼 사람이 보고 싶어졌다.


멀찍이 서서

눈에 살짝 담아가려 한 길

어느새 걸어 들어가고 있다

햇살이 끌고 돌아온 바람은

꽃의 얼굴마다 노랗게 스미고

하늘의 마음 외면한 적 없는 바다로

꽃은 줄지어 달려가고 있다

사람들은 꽃을 따라 내려오고

사랑은 가슴마다 불어오고 있다

어느 곳으로든 발길을 옮기면

네가 웃음 짓고 서 있는 듯 따뜻한 길

굽이 돌아 걷고 있다, 어느새 살고 싶다


- 이 봄, 남해 길 / 오종호

매거진의 이전글남해기행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