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의 추억I

by 오종호

-2015년 여름, 나는 그곳에 있었다-



밤이 깊었다. 하지만 내 머리 위의 하늘에는 별이 뜨지 않는다는 것이 이 밤의 슬픔이다. 그곳에서 돌아와 서울의 밤하늘을 올려다 보는 지금, 밤안개만이 기억처럼 부옇게 시간 위에 내려앉고 있다.



아프리카, 그리고 어리석은 이방인


영종도의 저녁 하늘로 날아 오른 에티오피아 항공 보잉 787기는 홍콩을 경유하여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 아바바에 도착했다. 공항 내의 옹색하고 불편한 화장실과 허름한 상점들은 나라의 궁핍함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창문 밖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조악한 건물들과 노후한 자동차들, 그리고 그 사이를 메우고 있는 짙은 녹색의 나무들이 내가 처음으로 아프리카 땅에 발을 딛고 서 있음을 실감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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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스 아바바 공항에서 기념 컷. 근력 운동으로 몸을 만들어 온 지금은 이때 보다 상태가 많이 나아졌다.


세 시간 여를 대기한 후 다시 두 시간 반을 날아 도착한 킬리만자로 공항은 아담한 외모와 달리 한 무더기의 태양을 품고 있다가 위력적으로 퍼붓기 시작했다. 과연 아프리카다운 햇살의 매서움 앞에서 다만 우리는 저마다 선글라스를 꺼내 쓰고 순진한 관광객의 기대에 찬 웃음을 잔뜩 머금은 채 카메라에 풍경을 기록하는데 여념이 없을 뿐이었다. 그러나 여행자의 미소로는 킬리만자로의 품에 안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인구 50만의 소도시 '아루샤'의 한 호텔에 여장을 푼 일행들 중 나를 포함한 일부는 저녁 식사 전까지 맘껏 게을러도 좋은 두 시간 남짓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시내로 산보를 다녀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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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이 되어 주었던 현지 여행사의 대형 지프와 숙소 앞 풍경.


이후의 여정 내내 어디서나 그랬듯 2차선의 비좁은 도로에서 차들이 연신 매케한 연기를 뿜어내는 동안 길가에서 탄자니아 아낙은 옥수수를 구워 팔았고 젊은이들은 꼬레아 넘버원을 외치며 너도나도 달려들어 그림을 사라고 졸라대었다. 물감을 살 돈이 없어 천 위에 페인트로 킬리만자로를 담은 '팅가팅가Tinga Tinga' 양식의 그림들 가격이 50불에서 시작하여 10불까지 내려오는 내내 탄자니아 청년들의 상술은 집요하게 이어졌다. 가벼운 산책만을 즐기고 싶었던지라 수중에 돈을 챙기지 않은 우리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치안이 좋지 않다고 알려진 아프리카 이국의 거리에서 불필요한 자극을 자제하고 최대한 상황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하는 것밖에 없었다. 킬리만자로를 오르내리며 포터와 가이드들에게 탄자니아 젊은이들의 상황을 전해들은 후에는 이때 10불이라도 지니고 나가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했으나 아루샤로 다시 돌아온 다음에도 그들과 조우할 기회는 가질 수 없었다. 그림을 팔기 위해 너도나도 여행자들의 곁으로 다가들어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대신 시로부터 무료로 공간을 제공받아 예술가들의 거리를 조성해 나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물론 현지 속사정을 모르는 이방인의 어리석은 낭만성에 지나지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