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걸어야 높이 오를 수 있다
미리 짜여진 킬리만자로 등반 일정을 따라 다음날 아침 이른 식사를 마치고 개조된 전용 차량편으로 트래킹 시작점인 마랑구 게이트로 이동했다. 마련된 장부에 저마다의 신원을 기록하고 마침내 대장정의 길에 돌입, 고지 2700m 지대에 위치한 만다라 산장(Mandara Hut)을 향해 힘찬 걸음을 옮겼다.
만다라 산장을 향해 이어진, 등반 초반의 울창한 밀림.
밧줄처럼 드리워진 굵은 넝쿨을 잡고 타잔처럼 놀았다. 아직은 공기가 넉넉했으니.
아프리카는 덥지 않았다. 아니 적어도 탄자니아의 날씨는 그랬다. 울창한 열대 숲을 관통하며 위로 위로 이어진 길을 따라오는 바람은 몸에 땀이 밸 틈을 주지 않았다. 간혹 얼굴을 내밀고 나무타기 재주를 부리는 원숭이들과 옷을 타고 올라와 살갗을 물어대는 개미들의 난리가 없었다면 자칫 지루했을지도 모를 평이한 가을 날씨의 산행과도 같았다. 킬리만자로의 날씨가 얼마나 변신에 능한지 당시의 우리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여행사마다 트래킹에 소요되는 시간의 거리가 들쭉날쭉한 모양인데 실제로는 하루 평균 8시간 정도를 걷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 고산지대에 적응하기 위한 사실상 유일한 방법인 '폴레폴레(Pole Pole, 천천히 천천히)'가 그 원인인데 킬리만자로 등정 속도는 우리나라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걷는 걸음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리기 때문이다. 고산증을 이기기 위해 병원에서 비아그라나 이뇨제를 처방 받아 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약만으로는 충분한 대처가 불가능하다. 나는 4700m 고지에서 처음으로 이뇨제 반알을 먹었다가 손발 저림과 메스꺼움, 구토 등의 부작용으로 몹시 고생했다. 몸이 고도에 적응할 시간을 넉넉히 주기 위해 현지 가이드들의 걸음을 따라 최대한 느리게 한 발씩 나아가는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천천히 걸어야 높이 오를 수 있다. 초반에 빠르게 오르는 것은 킬리만자로 등정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몇몇 성공자들에게 자극받아 젊은 나이에 많은 돈을 벌어 유명세를 얻고자 한들 마음대로 이루어지지도 않을 뿐더러 이른 나이의 초고속 상승은 그만큼의 급한 추락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킬리만자로 산길은 그래서 인생의 길과 고스란히 닮았다. 까불면 산으로부터 반드시 응징을 당한다. SNS에 한강뷰를 가진 거실이나 억대 외제차 사진을 올리며 지랄하는 대신 아메리카 원주민들처럼 뒤쳐진 영혼이 따라오기를 가만히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달이 차면 곧 기우는 법이다. 물극필반 기만즉경(物極必反 器滿則傾)의 이치에서 비켜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