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VI

by 오종호

일주일 후 부스스한 표정으로 일어나 식탁에 앉은 영진의 아내는 미국 지사로 발령 받았다는 영진의 얘기를 듣자마자 자기는 절대 함께 갈 수 없다고 언성을 높였다. 지금은 벌여놓은 일이 한창이므로 가고 싶으면 혼자 가라고 했다. 그렇게 중요한 결정을 어떻게 단독으로 결정하고 일방적으로 통보할 수 있느냐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영진은 월급이 올랐으므로 마음에 드는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거라고 했다. 현지에서 혼자 사느라 자신도 나름 고충이 있겠지만 혼자 잘 버티겠다고, 일요일마다 저녁 시간에 맞추어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전화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아내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아내는 말했다.


- 몸 건강히 잘 갔다 와요. 2년 동안 서로 열심히 살면서 많은 걸 이뤄 보자구요. 그때가 되면 모은 돈으로 1층엔 북카페, 2층엔 집, 이렇게 짓기에 충분할 거에요. 행복하게 살아 봐요, 우리.


영진은 아무 말없이 살짝 미소를 지었고, 아내는 그 표정에서 동의를 읽은 듯 영진이 차려 놓은 저녁밥을 먹기 시작했다.


트렁크 두 개에 옷과 소지품을 챙긴 영진의 가슴은 설레고 있었다. 답답한 집으로 날마다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으로 마구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지난 한 주간 미미와 함께한 시간은 천국에 있는 기분이었다. 장인이 말한 과일 통조림 같은 부부의 사랑은 영진에게 뚜껑을 열지 않았다. 영진은 육체적 감각 하나하나를 살아 꿈틀거리게 만드는 미미의 사랑 방식이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


영진은 정말 오래간만에 행복했다. 미미는 젊고 아름다웠다. 명석한 두뇌로 영진이 지시한 업무를 항상 기대 이상으로 수행해 주었고, 끼니 때마다 맛있는 식사를 차려 주었다.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 몸은 뜨거웠고 에너지로 가득했다. 아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행복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많이 어긋나 있을 것임을 영진은 직감했다. 미미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영진은 이데리움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미미는 완벽한 여자였다. 단 하나, 미미는 규정상 영진과 밤을 함께 보낼 수는 없다고 했다. 서로의 몸을 끝없이 탐닉하던 어느 밤에도 자정이 다가오자 미미는 서둘러 영진의 곁을 떠나갔다. 영진의 손가락 끝에서 떨어져 나간 미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은 쓸쓸했다. 결혼이란 그 쓸쓸함에 대한 대답이어야 옳은 것 같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코비 브라이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