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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Oct 10. 2022

엄마가 갑자기 쓰러졌다

아침 9시 10분. 울리는 휴대폰이 아빠다. 순간 불길한 예감에 얼른 사무실을 뛰쳐나가 전화를 받으니 엄마가 아침에 쓰러져 지금 병원이라고 했다. 응급실인 모양이었다. 엄마가 먹고 있는 약을 좀 알아봐 달라는 말에 일단 서울삼성병원에 전화해 엄마가 처방받아 드시고 계신 약을 확인하고 곧장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간호사에게 메모해둔 약 이름을 전해주고 나니 아빠가 다시 전화를 바꿔 받아선 엄마가 지금 뇌출혈인 것 같다고 했다. 일단 병원에 도착했으니 너무 걱정 말고 일보라는 아빠의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일단 출근은 했으니 오전까지만 근무를 하고 친정으로 내려가 보아야 하나 아니면 지금 바로 내려가야 하나 고민을 하던 차에 다시 전화가 울린다. 아빠다. 전화를 받으니 아빠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본인을 담당의사라고 했다. 옆에서 괜한 소리 말라며 말리는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담당의는 엄마의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니 거리가 좀 되더라도 당장 내려오는 게 좋겠다고 했다. 뇌출혈인데 동맥류가 터졌고 살아서 병원까지 온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지만 수술을 한다고 해도 꼭 산다는 보장은 없으며 현재 엄마의 의식 수준 또한 썩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의사의 설명을 듣고 나니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여기는 회사인데 이러면 안 되는데 마음을 아무리 다잡아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화장실로 뛰어가 눈물을 훔치고는 휴가를 써야겠다고 말했는데 팀장님이 무슨 일이 있느냐는 질문에 결국 눈물보가 터지고야 말았다. 울면서 사정을 간단히 이야기하고 꺼이꺼이 울면서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운전 조심하라는 팀장님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차를 몰면서도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엄마가 하늘나라로 갈까 봐 너무 무서웠다. 엄마가 없으면 이제 나는 어쩌나, 이제 나는 엄마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드니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분명 어제저녁에 설 연휴에 함께 가기로 한 보라카이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전화통화를 할 때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던 엄마가 왜 갑자기 오늘 아침에 그렇게 쓰러진 것인지 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행히도 집에 도착하니 남편은 이미 와있었다. 금요일 낮이었지만 고속도로에는 꽤나 차가 많았다. 남편도 마음이 조급했던 모양인지 평소 부드러웠던 운전이 오늘은 좀 거친 것 같았다. 


병원에 도착해보니 중앙수술실 앞에 아빠가 서있었다. 아빠는 생각보다 의연했다. 아침부터 정신이 하나도 없었을 텐데, 아빠도 많이 놀랐을 텐데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런 아빠 앞에서 내가 넋을 놓고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최대한 의연한 척을 하며 아빠에게 오늘 아침의 사정에 대해 물었다. 


갑자기 엄마가 화장실에서 힘이 없다 말하며 쓰러지기에 아빠가 얼른 가서 엄마를 받아 안았다고 했다. 조금 뒤 구토가 있어 119를 불렀고 곧장 경북대병원 응급실로 왔다고 했다. 그리고 의료진들이 여러 가지 검사를 한 뒤 동의서를 받아갔고 뇌출혈인데 상태가 좋지 않아 개두술을 할 것이라고 했다고 했다. 


뒤이어 아빠는 엄마가 쓰러지고 병원까지 오는 데에 시간이 고작 20분에서 30분도 걸리지 않았던 데다가 오늘은 공휴일이 아닌 평일이고 아침시간이라 의사들도 모두 병원에 있었으니 엄마도 우리도 모두 운이 참 좋은 거라고 덧붙였다. 갑작스레 엄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던 나는 아빠의 이성적인 사고와 긍정적 해석에 마음을 조금 잡을 수 있었다. 


"그래! 우리 엄마도 우리도 오늘은 운이 억수로 좋은 날인 거야. 하늘이 도운 거지. 그러니 지금은 수술이 잘 되기만 빌며 기다리자." 이렇게 말하며 나는 널뛰는 마음을 달랬다. 


일단 아침도 점심도 먹지 못하고 하루 종일 마음을 졸였던 아빠를 위해 남편과 함께 식사부터 하고 오시라며 아빠를 식당으로 보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아빠와 남편과 함께 한참을 더 기다리니 엄마의 보호자를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술은 대략 6시간 정도 걸린 것 같았다. 


수술이 끝나자마자 CT를 찍으러 간다고 했는데 그리로 가는 침상 옆에 달라붙어 엄마를 보니 상태가 몹시 좋지 않았다. 붕대로 감겨있는 머리 아래로 피가 굳은 머리카락 몇 올이 보였다. 얼굴 여기저기에 피가 굳은 흔적이 묻어있었다. 몸은 땡땡 불어있고 쇄골뼈 쪽엔 호수가 꼽혀있었다.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것도 같았다. 환자용 엘리베이터에서 엄마를 보며 고생 많이 했다고 여러 번 말해주었다. 엄마가 내 목소리가 들렸던 모양인지 손을 살짝 들었다. 엄마가 반응을 보이니 마음이 조금 놓이는 듯했다.


CT촬영이 끝나자 엄마는 곧장 집중치료실로 들어갔고 우리는 그 앞에서 수술 집도의와 주치의를 기다렸다. 30분 정도 시간의 흘렀을까? 수술복을 입은 집도의처럼 보이는 의사가 우리 엄마 이름을 부르며 보호자를 찾았다. 벌떡 일어나 쏜살같이 달려가니 집도의는 우리에게 수술은 잘되었지만 엄마의 머릿속을 열어보니 생각보다 혈관 상태가 심각해 여전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했다. 우선 머릿속에서 터져버린 동맥류는 클립으로 찍었지만 다른 혈관도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재출혈이 생길 가능성이 높고 그럴 경우는 최악의 상태까지도 갈 수 있다고 했다. 일단 수술은 최선을 다했고 잘되었으니 예의 주시하며 상태를 지켜보자며, 상세한 설명은 주치의가 해줄 것이라고 집도의는 담담히 말했다.


우리에게 잠시 기다려달라고 말한 주치의는 잠시 집도의를 따라 어딘가로 갔다가 다시 우리에게 왔다. 주치의는 집중치료실에서 엄마의 현 상태에 관한 의료영상을 보여주며 엄마의 현 상태는 어떤지, 수술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뒤이어 엄마에게 추가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몇 가지 위험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었는데 자세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수술 직후부터 하루 이틀은 재출혈이 일어날 수 있으며 엄마는 지금 다른 환자들에 비해 그 가능성이 조금 높은것 같았다. 만약 재출혈이 발생하면 그땐 바로 다시 수술에 들어가야 하며 그 상황이 발생하면 엄마가 많이 위험하다는 뜻인것 같았다. 그밖에도 한두 주 이내에 혈관이 좁아지는 뇌혈관 연축, 한 달 이내에 머리에 물이 차는 수두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는 듯 했다. 그 외에도 심장기능, 폐기능, 위장기능의 저하가 추가적으로 생길 수 있고 합병증도 생길 수 있다는 것 같았다. 마음이 너무 무거웠지만 지금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재출혈도 뇌혈관 연축도 수두증도 없이 무사히 엄마가 회복해 나가길 비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집중치료실은 2019년부터 계속 면회가 되지 않는다며, 필요물품이 있으면 그것만 사서 초인중을 눌러달라고 사전에 간호사가 안내해 주었는데 주치의가 서울에서 달려와 새빨간 눈으로 눈물을 꾹꾹 눌러 참으며 설명을 듣는 나의 표정을 정상 참작해주었던 모양인지 주말에 오시면 한 번씩 면회가 가능하도록 해보겠다며 주말 점심때 즈음해서 집중치료실에 연락해 자신과의 면담을 요청해달라고 이야기해주었다. 


혹시 그럼 내일도 가능하겠느냐는 말에 본인이 오늘 당직이니 내일 아침에도 병원에 있을 거라며, 어차피 내일 CT를 한번 더 찍어서 혈관 상태를 확인할 테니 그 이후 시간인 오전 10시쯤 집중치료실로 와서 면담을 요청해달라고 했다. 힘겨운 병원의 노동강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시간을 빼서 우리에게 상세하게 엄마의 상태와 추가적으로 있을 수 있는 위험상황을 설명해주고 면회까지 할 수 있도록 하는 주치의 측의 배려가 느껴져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알겠다고 감사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아빠는 급하면 어떤 조치를 해도 괜찮으니 어떻게든 잘 좀 부탁드린다며 정중하게 주치의에게 인사를 했다. 덤덤한 척 서 있기만 하던 아빠의 속 타는 마음이 보여 또 한 번 마음이 아팠다. 


일단 친정집 앞에다 주차를 해놓고 나니 내내 아무것도 먹지 않은 내가 걱정이 되었던 모양인지 아빠랑 남편이 계속 밖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가자고 나를 다그쳤다. 결국 죽집에 가기로 결정했다. 밥 생각도 없는 데다 무엇인갈 먹어도 소화가 잘 되지 않을 것 같아 죽 말고는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근처 본죽에서 따끈한 죽을 받아먹고 있는데 병원 전화번호로 보이는 번호로 휴대폰이 울린다. 급히 받으니 주치의가 다급한 목소리로 엄마가 폐부종 소견이 보인다며 떼냈던 인공호흡기를 다시 달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속이 탔지만 병원에서 잘 지켜보다 무슨 일이 있으면 다시 연락을 준다는 말에 알겠다는 말을 하곤 먹던 죽은 그냥 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들어오니 아침의 급박했던 순간이 그대로 보였다. 화장실에 널브러진 휴지와 수건들, 주방엔 아빠가 먹다만 아침상이 그대로였다. 뭔가 냄새가 이상해 나가보니 주방 베란다 쪽엔 가스불도 켜져 있었다. 엄마가 아침에 옥수수랑 고구마 같은걸 삶으려고 약불을 켜놓은 모양인데 하루 종일 켜져 있었던 모양이다. 다행히 약불인 데다 베란다 창문도 살짝 열려 있었고 주변에 인화 물질은 없었기에 불은 나지 않았고 냄비만 정말 새까맣게 탔다. 아빠 말대로 오늘은 운이 정말 좋은 날이 맞나 보다. 


정신없이 집을 치우고 있으니 다시 집중치료실에서 전화가 와 엄마가 기존에 먹던 약을 좀 가져다 달라고 했다. 얼른 가져다주겠다고 하고선 병원을 다녀왔더니 벌써 시계는 밤 10시가 넘어 있었다. 몸은 너무 고된데 무엇인가 다른 일을 하지 않으면 자꾸 엄마 생각이 나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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