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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Sep 04. 2024

의료파업의 여파 DNR 동의서 작성

지금의 병원으로 온 지 벌써 두 계절이 지났다. 그리고 그동안 엄마는 제법 잘 지내왔다. 가끔 가래가 심해지고 폐렴이 살짝 왔다가기도 했지만 대체로 금방 좋아졌고 그래서인지 내 마음도 덩달아 조금 편해지고 있었다.

TV에서 의료파업이니 응급실 뺑뺑이니 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예사롭지 않게 여겼다. 지금 시기에 엄마가 아프지 않아(위험한 상황에 있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일엔 나의 하루를 살고 토요일엔 엄마간병을 다녀오면 될 거라 생각했다.

월요일 점심시간.

회사 동기들과 순댓국을 먹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병원번호가 찍혀있기에 순간적으로 긴장감이 몰려왔지만 애써 태연한 척 통화버튼을 눌렀으나 왜 안 좋은 예감은 비켜가는 일이 없는 걸까. 주치의 선생님이었다.

엄마가 미열과 폐렴기가 보여 주말에 피검사 의뢰를 넣고 항생제를 쓰기 시작했는데 피검사 결과 간수치가 너무 높다는 것이었다. 항생제를 써서 그렇다고 보기엔 납득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수치라는 것.

 대체 간수치가 얼마나 안 좋은 거냐는 나의 질문에 주치의는 정상 범위가 30-50 이하인데 엄마는 800-900 정도 나왔다고 답했다.

현재 열도 없고 염증수치도 높지 않고 폐렴도 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치솟은 간수치에 주치의는 큰 병원 응급실로 옮기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 수치를 제외하고는 엄마 컨디션이 좋은데 바로 옮겨야 하냐는 내 질문에 주치의는 항생제를 바꾸고 간장약을 쓸 수 있지만 여기서는 각종 검사가 어려워 원인을 찾기 힘들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패혈증이 올 수도 있고 그러면 최악의 경우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다만 현재 의료파업 때문에 엄마가 다니던 대학병원 응급실로 들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 일단 받아준다는 3차 병원이 있는지 확인해봐 달라고 했지만 몇 시간 뒤, 엄마가 다니던 대학병원에서도, 다른 병원에서도 지금 엄마를 받기는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다시 전화가 왔다.

걱정스러웠지만 이런 상황에서 갈 병원을 정하지도 못하고 응급실을 돌 순 없다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수시로 가래를 뽑아야 하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누워만 있어야 하는 엄마가 그런 상황을 견디긴 힘들겠다 싶기도 하여 우선 아빠와 상의해 주치의에게 "우리는 조금 더 머물면서 이곳에서 받을 수 있는 치료를 받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그러자 주치의는 우선 항생제를 바꾸고 간장약을 쓴 다음 이틀뒤 다시 피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물론 그 사이 위험한 상황이 올 수도 있음에 대한 동의도 구했다.

그리고 수요일. 또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주치의는 검사결과가 간수치가 500대로 내려갔으나 그 수치 역시 여전히 매우 높은 수치이며 새벽부터 고열이 나기 시작해 해열제를 투여 중이라 했다. 결론은 치료를 위해서는 큰 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다는 의견.

답답하고 막막했다.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큰 병원에 가지 않고 여기서 좀 더 지켜보고 싶다고 하자 그럼 DNR 동의서(CPR 등을 하지 않는다는)를 받아야 할 것 같다고. 선뜻 그러겠노라고 바로 답변을 할 수가 없어 우선은 (의료파업이 이틀 만에 중단되어 갑자기 대학병원에서 엄마를 받아줄 리도 없건만) 다시 한번 응급실로 문의전화를 드려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이제 꽤 무뎌졌다고 나도 이제 많이 단단해졌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저 엄마가 그동안 괜찮았기에 나 역시 괜찮았 것이었다.

일단 문제해결부터 해야지 싶어 마음을 다잡고 근처 2차 병원 쪽과 수도권 쪽 3차 병원 목록을 검색해 두고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옮길 병원을 찾아봐야 한다는 내 말에 아빠는 그냥 DNR 동의서를 써주고 여기서 좀 더 지켜보자고 했다. 병원을 옮기는 게 엄마에게 더 힘든 일일 것 같다고. 병원을 옮긴다 한들 원인을 찾은들 지금 엄마가 수술이 가능한 상태이긴 하냐고. 우리는 지금까지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왔고 엄마도 그동안 충분히 힘들었다고.

모든 것이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내일 DNR동의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그러자 엄마를 내가 먼저 놓아버리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부터 밀려왔다. 엄마의 회복여부가 DNR동의서와는 직접적 상관관계가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이런 비논리적인 생각이 든다는 것이 한편으론 신기하기까지 다.


엄마가 쓰러진 지도 곧 만 2년.


그동안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은 우리 엄마. 하지만 내 바람과는 달리 큰 차도가 없이 누워서 세월을 보내야 하는 엄마 곁을 지키다 보니 '우리 엄마, 겁도 많은데 주무시다가 편안히 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했더랬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엄마에게 문제가 생기니  아직도 난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번만 좀 넘어가주면 안 될까?


참 어렵다.  보호자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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