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일단 쓰기 시작하면 뭐라도 쓰게 된다

by 유메이

“쉬는 시간에는 뭐 하세요?”

"주로 책 읽어요. “


짧은 대화가 끝나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한다. 하지만 나에게 책 읽기는 오래된 취미이자 가장 확실한 힐링의 방식이다. 책을 읽다 보면 만날 수 없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 들고, 평생 닿을 수 없는 세상에 도착한 것 같아서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이들과 신나게 놀고 잠깐 쉴 때도 아이들은 간식을 먹고, 나는 그런 아이들을 마주 보고 책을 읽는다. 길지 않은 시간이고 집중하기 어려워 에세이 한 챕터 혹은 두 챕터 정도를 읽는데 그것만으로도 지친 에너지가 차오르는 걸 느낀다.


읽는 건 좋아했지만 쓰는 건 그저 막막했다. 글쓰기란 특출한 누군가가 특별한 이야기를 전하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위시리스트에 글쓰기가 항상 있었는데도 회사를 다니느라, 아이들을 챙기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시도 자체를 계속 미뤘다. 지난봄, 휴직을 시작하면서 잠시동안 나만의 시간이 생겼다.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평일에 매일 글을 쓰는 챌린지에 참여했다. 솔직히 말하면 시작하기 전에는 ‘내가 매일 글을 쓸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냥 시작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시작하면 뭐든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나는 3개월 동안 꾸준히 글을 쓰며 챌린지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이에게도 슬쩍 권한다.
하루는 책을 읽고 하루는 글을 쓰며
한 달을 해보라고.
그러면서 자기가 정말 글쓰기를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지켜보라고."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글쓰기 챌린지를 시작한 이후로 여유 시간이 생길 때마다 뭔가를 쓰는 습관이 생겼다. 블루투스 키보드가 있으면 속도감 있게 쓸 수 있어서 좋고, 핸드폰 자판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면서 천천히 써 내려가는 것도 좋았다. 걷거나 운전할 때는 음성 인식 기능을 사용했다. 목소리가 텍스트로, 말이 글로 변하는 과정을 보는 게 새로웠다.


예전에는 쓰는 거 자체가 어려웠는데 이제는 그냥 쓴다. 너무 쓸 게 없으면 일단 날씨나 기분부터 써본다. 한 문장을 끝내고 나면 이어서 다음 문장을 쓴다.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듯 계속 쓰다 보면 어느새 한 문단이 완성된다. 어떤 날에는 술술 잘 써져서 30분 만에 다 쓰기도 하고, 또 다른 날에는 며칠을 써오던 글인데도 하루 종일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도 결국 완성하지 못했다. 쓰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쓰면서 점점 알게 되었다. 읽는 것만큼 쓰는 것도 즐겁다는 걸. 나는 글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2020년, 브런치에 매주 한 편씩 글을 발행하던 때가 있었다. 브런치는 글쓰기 플랫폼 중 가장 난이도가 높게 느껴졌는데 일주일 내내 쓰고 고치고 또 고치면서 1개의 글을 겨우 발행했다. 방문자가 많지 않았지만 한 사람의 "좋아요"와 한 줄의 댓글이 큰 힘이 되었다. 글을 통해 누군가와 연결된다는 설렘이 꾸준하게 글을 쓸 수 있도록 도와줬다.


다시 글을 쓰면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어제의 마음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안에 무언가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예전보다 편하게 내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게 되었고, 글을 다시 읽어보면서 스스로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읽는 사람, 기록하는 사람, 쓰는 사람. 나를 정의하고 표현할 수 있는 게 늘어나면서 내 인생의 반경도 조금씩 넓어지는 중이다.


모두가 잠든 새벽, 조용히 침대에서 일어나 서재로 향한다. 하루 중 가장 사랑하는 나만의 시간을 만나기 위해서.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까지 약 한 시간 동안은 오롯이 나뿐이다. 나는 오늘도 새벽에 책을 읽고, 짧은 글을 쓰며 하루를 연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부족하더라도 계속 쓰고, 계속 살아내다 보면 조금씩 더 나아질 테니까. 그렇게 나는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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